[황보연 서울시립대학교 교통공학과 교수 인터뷰]이명박 시장 시절 서울시 대중교통 개혁 실무자서울 버스 준공영제 도입 '산파'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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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연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57)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서울시에서 1급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이명박 시장 시절 대중교통 개혁 실무책임자로 일하며 2002년부터 2006년까지 4년 간 시내버스 준공영제 도입 및 초기 진행 과정을 현장에서 모두 지켜보았다. 전임 박원순 시장 시절 도시교통실장을 맡았고, 현 오세훈 시장 당선 뒤에도 최고 요직인 기획조정실장으로 내정돼 시장의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능력을 인정 받았다. 서울 시내버스 준공영제 도입의 산파 역할을 맡았던 황 전 교수로부터 준공영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버스 준공영제와의 인연이 궁금하다.1993년 서울시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2002년에 복귀했는데 마침 이명박 시장이 민선 3기로 당선돼 청계천 복원과 교통개혁을 추진하던 시기였다. 이 시장은 국토개발연구원 출신의 교통전문가인 음성직 씨를 교통정책보좌관으로 임명해 교통개혁 업무를 맡겼다. 음 실장은 서울시 직원들 가운데 일을 맡길 사람으로 나를 발탁했다. 기획 및 언론 담당 경험, 영국 유학 경력 등을 고려했던 것 같다. 음 실장은 매주 토요일마다 나를 비롯해 직원들을 앉혀 놓고 강연을 했는데, 듣는 내용이 모두 새로운 것들이었다. 기존 얘기들은 하나도 없었다. 미국에서 도시 및 교통계획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답게 생각이 앞서 있었고, 아이디어도 풍부했다.◆당시 열악한 조건에서 교통개혁에 성공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는 평가를 들었는데.시내버스 개혁의 핵심은 노선과 운영체계였다. 법원은 소송에서 버스 노선을 특허권으로 인정해줬다. 사적 재산으로 자식에게 상속까지 가능한 상황이었다. 서울시가 버스 노선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려 해도 법적, 제도적 근거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장거리노선, 중복노선이 비일비재했다. 공익적으로 재편하려면 법을 바꿔야 하는데 건설교통부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버스 사업자들이 스스로 노선을 내놓을 리 만무했다. 해법은 의외의 과정에서 나왔다. 서울시가 노선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버스사업조합 임원들이 '그럴 거면 운행 비용과 적정 이윤을 보장하라'고 요구한 데서 힌트를 얻었다. 법적 근거 마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공동운수협정을 바탕으로 서울시장과 버스단체 간 협약을 맺는 것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최근 일각에서는 준공영제가 문제가 많다며 완전공영제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2002년 당시에도 완전공영제를 적극 검토했었다. 완전공영제로 가려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관련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전혀 없다며 '불가' 입장을 밝혔다. 완전공영제를 추진했던 일본 동경도 도영버스 사례도 판단에 영향을 끼쳤다. 특별법을 만들어 민간의 버스 운영권을 모두 사줬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버스 운행을 맡길 곳은 기존 업체들 말고는 없었다. 결국 의사결정권만 확보하고 기존 업체들에게 버스 운행을 다시 맡겼다. 그 작업에 무수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 것이다.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해외사례에서나 완전공영제는 답이 아니었다.◆경기도에 도입된 노선입찰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도입 초기이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속가능성 면에서 해답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알짜 노선은 민간에서 내놓을 리 없고 수익성이 낮은 노선만 입찰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선정된 업체가 이것저것 투자를 많이 한 상황에서 3년 뒤 면허를 내놓으라고 하면 쉽게 수긍이 되겠는가. 다만, 서울과 달리 경기도는 인구가 계속 늘어나니까 현 시점에서 어느 정도 완충되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핵심은 경기도민들의 출퇴근 전쟁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부분적인 보완책 정도의 역할은 몰라도 노선입찰제가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버스조합 이사장들과 노조가 준공영제에 모두 합의한 것은 작은 '노사대타협'으로 봐도 될까.사실 모두 합의했다고 보긴 어렵다. 57개 업체 가운데 알짜노선을 가진 7개 업체의 사장들은 마지막까지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전체 노선 중에서 흑자인 노선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수익이 나지 않는 나머지 노선의 업체들은 준공영제가 내심 반가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버스조합 내에서도 찬성이 우세하고, 노조도 찬성하고, 시민사회까지 수용을 압박하니 마지못해 노선을 내놓은 것이다. 실제로 준공영제를 끝까지 반대하기 위해 소송도 검토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변호사들이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들었다. 버스 업계를 설득하는 데는 시민사회단체와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했던 버스개혁시민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했다.◆알짜노선 업체들은 많이 억울했을 것 같은데.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사안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경험상 정말정말 어렵다. 다만, 이런 부분도 작용했다고 본다. 수익이 나던 업체들도 준공영제에 합의하지 않았으면 결국엔 손해를 봤을 것이다. 당시 버스 서비스가 열악하니 지하철과 승용차의 수송분담율이 계속 상승하던 추세였다. 시민들이 버스를 외면한 것이다. 그 결과 100개가 넘던 버스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해 6년만에 57개로 줄어들었다. 한 마디로 악화일로, 공멸의 길을 걷고 있었던 셈이다. 시민들이 외면하는데 흑자 노선이라고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었겠는가.◆버스 준공영제는 장점이 많은 제도이지만 보완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준공영제로 버스 업체들을 묶을 때 모두 우수한 업체는 아니었다. 우리가 보기에 일부는 방만하고 부도덕한 업체도 있었다. 이들은 준공영제가 아니었으면 파산으로 갔을 것이다. 준공영제를 초기 세팅할 때 이런 업체들까지 끌어안은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우수한 업체들로 흡수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경영능력이 없는 좀비 업체들로서도 파산으로 길거리에 나앉는 것보다는 팔고 나가는 게 훨씬 수지맞는 장사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후 흐름은 우리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인센티브 및 페널티를 강화해 우수 업체 중심으로 재편되면 좋았을텐데 실비정산 등 모든 업체가 버틸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서 업체 수가 지금 65개로 오히려 더 늘어났다. 인사 등으로 서울시 담당자들이 교체되면서 초기 원칙이 흐지부지된 사례로 볼 수 있다.◆민간 사모펀드(PEF)의 버스시장 진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처음에는 좀 우려스럽게 봤다. PEF 특성상 원하는 수익률이 안 나오면 발을 뺄 가능성도 있으니까. 하지만 민간 자본이 들어오면 버스시장에 규모의 경제, 새로운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장점도 있다. 지금처럼 서울시가 정기적으로 요금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요불급한 예산만 집행하면 버스시장의 업그레이드는 기대하기 어렵다. 상향평준화로 가야 하는데 하향평준화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비리 발생 업체, 만년 하위권 업체가 도태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이런 업체들은 우수 업체에 합병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런던의 경우 버스 9000대를 17개 업체가 운영하는데 서울은 7400대를 65개 업체가 운영한다.◆일각에서는 PEF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업체 대형화를 통한 효율화 달성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서울시가 예산지원을 충분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금이 풍부한 민간을 활용하는 것도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지 않게 민간자본의 진입 및 퇴출 기준 마련 등 제도적 보완은 필요해 보인다. 버스업체 간 양도·양수 이전에 서울시가 사전검토를 통해 노선 개편, 양수업체 회사평가 결과 등 서비스 개선 가능성을 평가한 후 승인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 성과평가 우수업체가 업체 양수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민간차고지를 시가 매입해 공영차고지로 제공해 주거나 차고지 양수를 위한 자금대출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시내버스 준공영제가 나아가야 할 길은?준공영체계의 법적 안정성 보장과 교통체계 발전을 위한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 2004년 준공영제 도입 당시 법적 기반이 매우 부족했다. 서울시가 버스개편에 따른 정부 보조금이나 융자지원을 받지 못하고 시 조례를 근거로 시 자체 보조금 규정을 마련해 버스개편을 추진한 것은 당시의 법적 한계 때문이었다. 대중교통이 지자체만의 문제인 지도 생각해 볼 부분이다. 수도권 시·도 경계를 넘는 역외통행은 급격히 증가해 버스, 도시철도 등 대중교통 운영 사무가 개별 지자체 권한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럼에도 중앙정부 차원의 대중교통 재정지원은 극히 제한적이다. 현재 준공영제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근거가 불충분해 서울 시내버스에 대한 정부지원은 약 10% 수준에 머물고 있다. 30~40%를 중앙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런던, 파리 등 해외 선진도시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기재부 등 대중교통 요금 인상 억제를 정부가 권고할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중앙정부 차원의 재정 보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서비스의 지속가능성, 안전성이 담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