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019년 32개 제조·판매업체 24개 백신 짬짜미조달청 발주 170건 중 147건 낙찰, 낙찰가율 100%↑검찰서 먼저 인지해 공정위 통보… 이미 재판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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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국가예방접종 사업 백신 24개 품목의 가격을 담합한 광동제약, 녹십자 등 32개 업체가 공정당국으로부터 409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에스케이디스커버리 등 3개 업체는 과거 백신 담합으로 제재를 받았음에도 다시 담합에 참여하는 대담함을 보였다.공정거래위원회는 20일 광동제약과 녹십자 등 32개 업체가 지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에서 낙찰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한 후 투찰할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짬짜미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09억 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제재를 받은 업체는 백신제조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백신판매회사(총판)인 △광동제약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유한양행 △에스케이디스커버리 △한국백신판매를 비롯해 신세계케미칼 등 25개 의약품도매상이다.해당 담합은 검찰에서 먼저 인지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공정위는 지난 2019년 9월 결핵(BCG) 백신공급과 관련해 한국백신 등을 시장지배적지위남용행위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백신 관련 입찰담합을 인지해 공정위에 고발요청을 한 후 관련 자료를 공정위에 제공하면서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이와 관련해 백신 제조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와 백신총판 6개사는 이미 검찰에서 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며, 의약품도매상의 경우 입찰방해죄 등으로 유죄 선고를 받아 형이 확정된 상태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별도의 고발조치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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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담합한 대상 백신은 모두 정부 예산으로 실시되는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대상 백신으로 인플루엔자 백신, 간염 백신, 결핵 백신, 파상풍 백신, 자궁경부암 백신인 서바릭스, 가다실, 폐렴구균 백신인 신플로릭스, 프리베나 등 모두 24개 품목에 이른다.입찰담합의 경우 낙찰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 섭외, 투찰가격 공유 등을 위해 담합 참여자들간의 협의가 필요하지만, 해당 담합은 장기간에 걸쳐 담합이 이뤄지면서 협의가 매우 쉬웠다. 낙찰예정자는 전화 한 통으로 들러리를 쉽게 섭외할 수 있었고, 서로의 역할이 정해지면 투찰가격에 대한 별도의 논의도 하지 않았다.굳이 가격을 논의하지 않아도 낙찰예정자는 최대한 높은 수준에서 낙찰받기 위해 정부가 조사한 시장가격인 기초금액 100% 수준으로 투찰하고, 들러리는 그보다 높은 금액으로 투찰해 탈락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면 됐다.하지만 정부가 지난 2016년 입찰방식을 바꾸면서 이전에는 의약품도매상만 참여하던 담합에 백신총판까지 뛰어들었다.2016년 이전에는 정부가 전체 백신 물량의 5~10% 정도였던 보건소 물량만 구매하고 나머지 병의원 사용물량은 보건소 입찰결과에 따라 공급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인 '제3자단가계약방식'으로 진행됐다. 2016년부터는 정부가 보건소 외에 병의원 사용 물량까지 전체를 구매하는 '정부총량구매방식'으로 입찰방식이 바뀌었다.이 과정에서 백신제조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서바릭스와 신플로릭스 총판인 유한양행과 광동제약을 위해 직접 의약품도매상을 들러리로 섭외하기도 했다.이들 업체는 조달청이 발주한 170건 중 147건을 낙찰받았으며, 이 중 117건에서 낙찰률이 100% 이상으로 나타났다. 통상적인 최저가 입찰에서 낙찰률이 대부분 100% 미만인 것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의 낙찰률이다.특히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에스케이디스커버리 등 3개사의 경우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지난 2011년 공정위 제재를 받았음에도, 또 담합에 참여했다. 다만 공정위는 최근 5년간의 불법 행위만 살펴보기 때문에, 10여 년이 넘은 담합 건에 대해 가중처벌하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공정위는 담합에 참여한 32개 업체에 대해 총 409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가장 많은 과징금을 부과받은 업체는 의약품도매상으로 에이치원메디 115억5200만 원이다. 다음으로는 △한국백신판매 71억9500만 원 △정동코퍼레이션 43억400만 원 △에이치엘비테라퓨틱스 40억6500만 원 △새수원약품 34억5500만 원 △녹십자 20억3500만 원 △송정약품 16억9700만 원 △팜월드 10억4100만 원 △에스케이디스커버리 4억8200만 원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3억5100만 원 △광동제약 3억4200만 원 △유한양행 3억2300만 원 △보령바이오파마 1억8500만 원 등이다.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백신제조사, 백신총판 그리고 의약품도매상 등 국내 백신 시장에서 수입, 판매 및 공급을 맡은 사업자들이 대부분 가담한, 장기간에 걸친 입찰담합의 실태를 확인하고 백신입찰 시장에서의 부당한 공동행위를 제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국민 건강에 필수적인 백신 등 의약품 관련 입찰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행위가 적발되는 경우 엄정한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