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경험하는 복수노조 체제에 적응 못해… 소수노조 신경쓸 것"변호인 측 "증거인멸, 도주우려 모두 없어… 보석 허가요건 충족"검찰 측 "수차례 소환 조사 불응"
  • ▲ ▲ 올해 2월 증여세를 회피하려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무죄를 선고받고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 ▲ 올해 2월 증여세를 회피하려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무죄를 선고받고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소수 노조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쓰면서 노사관계가 건전하게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조승우) 심리로 열린 보석 심문기일에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처음 경험하는 복수노조 체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허 회장은 수의를 입었던 지난 2일 공판 당시와는 달리 짙은 회색 정장차림으로 재판장에 섰다.

    허 회장은 황재복 SPC 대표 등과 함께 2021년 2월부터 2022년 7월까지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 지회 조합원 570여명을 상대로 노조 탈퇴를 종용하거나 승진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지시한 혐의로 지난 4월 구속기소 됐다.

    2019년 7월 파리바게뜨 지회장의 근로자 대표 지위를 상실시키기 위해 한국노총 산하 PB파트너즈 노무 총괄과 함께 PB파트너즈 노조 조합원 모집 활동을 지원한 의혹도 받고 있다.

    지난 2일 열린 2차 공판에서 허 회장 측 변호인은 “근로자를 대표하는 노조 와해 공작을 통해 노동3권을 형해화하고 노사 자치를 파괴한 사안이 아니다”라면서 “소수노조 불법시위에 대응해 일부 과도한 대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허 회장 변호인 측은 쟁점인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모두 없다며 보석에 대한 허가를 요청했다.

    변호인 측은 “그룹 회장의 지위를 이용해 (관계인들에게) 진술을 유도하거나 번복을 시도하려는 우려의 시각이 있는데 타당하지 않다”면서 “지금까지 관련자 진술을 유도하거나 번복을 시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간 조사한 내용이 충분히 있는데 진술이 번복된다고 해서 실체적 진실이 가려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제와서 관련자들의 말 한 두마디가 바뀐다고 해서 판단에 유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보석으로 풀려날 경우 황재복 SPC대표를 회유할 것이라는 가능성도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양측 진술이 다른 것도 아니며, 허영인 역시 황재복을 통해 파리바게뜨 지회 탈퇴 현황을 챙긴 것을 인정하고 있다”면서 “황재복이 재판장에서 밝힌 내용이 있는데 (진술 번복같은) 그런 행동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혹시라도 그런 우려가 남아있다면 사건 관련자 접촉 금지 등을 통해 우려 해소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방어권 보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변호인은 “수많은 녹취록 등 이 사건의 수사기록은 방대하다”면서 “대화를 글자로 볼 때 실제 의미와 반대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변호인들이 일일이 파악해 전후내역을 파악해 공판에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령으로 인한 건강 악화 우려도 언급했다.

    변호인 측은 “피고인(허영인 회장)은 만 75세의 고령으로 약 4~5년전 간헐적 심장 부정맥을 진단받았다”면서 “제대로 진단 및 치료받지 못하면 돌연사 위험도 있는 만큼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큰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검사에서도 심장 조기 박동을 확인해 정밀 검사하라는 진단을 받은 바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허 회장이 구속 전 수 차례의 검찰 소환 조사에 불응한 만큼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고 보석 불허를 요청했다. 재판에 성실히 임할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검찰 소환 조사 불응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참작할만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파스쿠찌’의 CEO 마리오 파스쿠찌가 방한해 관련 일정을 소화해야했다는 것이었다.

    당초 SPC그룹은 파리바게뜨의 이탈리아 진출을 위해 허영인 회장이 직접 이탈리아 출장을 다녀오려 했지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4개월 넘게 출국금지 조치가 돼 있어 결국 파스쿠찌 회장이 내한한 상황이었다.

    변호인 측은 “3년간 수사하면서 (출석)연락이 없던 검사 측에서 그 시점에 일주일 동안 세 번의 소환을 통보했다”면서 “파스쿠찌 회장이 돌아가고 그 날(3월 25일) 출석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심리 내용을 바탕으로 허 회장에 대한 최종 보석 여부를 추후 결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