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전 회장 발언 옹호… 금융사고 보고누락 합리화에 급급""엄정한 내부검사 통해 적극 조치했어야"… 배임 가능성 시사은폐 시도에 강한 의심 드러내… "당국‧수사기관에 의뢰했어야"
  • ▲ ⓒ금융감독원 제공.
    ▲ ⓒ금융감독원 제공.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에 대한 현 우리금융 경영진의 대응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복현 원장은 20일 임원회의에서 "우리금융이 보이는 행태를 볼 때 더는 신뢰하기 힘든 수준"이라며 사건이 드러난 이후에도 책임회피를 위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이 원장은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 대출 의혹과 관련해 우리은행은 친인척 대출에 대해 몰랐었다는 전직 회장의 발언을 옹호하면서 심사소홀 등 외에 뚜렷한 불법행위가 없었다며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은 것을 합리화하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이번 부당대출 사건이 드러나기 전부터 우리금융의 대응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꼬집으면서 사실상 고의적 은폐와 현 경영진의 배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우리은행 부당대출 건은 제왕적 권한을 가진 전직 회장의 친인척에게 수백억원의 부당대출이 실행되고 그 결과 대규모 부실이 발생한 사안"이라면서 "은행 내부 시스템을 통해 사전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어야 하며 엄정한 내부감사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조치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관 자체의 한계 등으로 문제점을 밝혀내지 못할 경우 계좌추적권, 검사권 등이 있는 금융당국이나 수사기관 등에 신속히 의뢰해 진상을 규명해냈어야 했다"며 우리금융의 보고누락을 문제 삼았다. 

    앞서 금감원은 제보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지난 6월 현장검사에 착수해 우리은행이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법인 등에 총 42건, 616억원의 대출을 한 사실을 적발하고 지난 11일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1~3월 중 자체검사를 통해 부당대출을 발견·조사하고 4월에 해당 대출과 관련된 본부장을 면직했지만 금감원이 현장검사에 착수하기 전까지 보고나 홈페이지 공시를 하지 않았다. 

    ◇ 3월 18일 보고 받은 임종룡… 어디까지 파악했나

    우리은행은 올해 1~3월 중 자체검사를 통해 부당대출을 발견·조사했다. 이어 4월 해당 대출과 관련된 본부장을 면직하고 5월부터 2차 검사를 진행했다.

    적어도 징계를 확정한 4월에는 부당대출에 대한 결론을 낸 것으로 보이지만 금융감독원이 제보를 받아 현장점검에 나선 6월까지 관련 내용을 보고하거나 홈페이지에 공시하지 않았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에게 이번 부당대출에 대한 내용이 보고된 것은 지난 3월 18일이었다.

    법조계에서는 현 경영진이 손 전 회장의 친·인척과 관련한 수백억원의 부당대출을 인지했음에도 회수 등 신속한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 

    한 현직 변호사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를 위반해서 손해를 일으켰을 때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알고도 시간을 미루거나 임무를 해태(책임을 다하지 않음)해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면 별도의 배임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 경영진이 손 전 회장 친‧인척이 연루된 대출의 존재를 어느 시점에 인지했느냐에 따라 임기 중 취급된 대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변호사는 “가정이지만 추가 대출이 임기 하에 있었는데 알면서도 조건이 안되는 대출이 반복되게 묵인했다면 전임 회장과 똑같은 위치가 되는 것”이라면서 “이로 인해 회수를 어렵게 했다면 업무상 배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대출 616억원 중 350억원 규모는 서류 진위 확인 누락, 담보·보증 부적정, 대출 심사 절차 위반 등 통상의 대출 기준과 절차를 따르지 않고 부적정하게 취급된 것으로 파악됐다.

    부적정하게 취급된 대출은 상당 부분 부실화되기도 했다. 지난 9일 기준 단기 연체(1개월 이상 3개월 미만)되거나 부실 대출화(3개월 이상) 된 금액은 198억원에 달한다. 

    ◇손태승 연루 몰랐다는데… 5월 자체검사에선 ‘친인척 여신’ 타깃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 제67조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소속 임직원이 또는 이외의 자가 금융업무와 관련해 기망, 권유, 청탁 등을 받아 위법‧부당행위를 함으로써 손실을 초래하거나 금융질서를 문란하게 한 경우 이를 지체없이 금감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우리은행 측은 67조에 명시된 보고 예외 사항을 근거로 고의적인 보고 누락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해당 규정에는 '금감원 검사에서 적출된 금융사고는 보고대상에서 제외하며 여신심사 소홀 등으로 인해 취급여신이 부실화된 경우에는 이를 금융사고로 보지 않는다'고 돼 있다. 

    1~3월 자체 검사에서 파악한 내용은 ‘여신심사 소홀’일 뿐 금융사고가 아니고, 금감원이 현장검사에 돌입한 6월 이후부터는 보고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다. 특히 우리은행은 이번 부당대출이 손 전 회장 친‧인척과 관련됐다는 것을 2차 자체검사와 금감원 현장검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국 금감원이 현장검사에 착수한 6월전 우리은행이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우리은행은 금감원의 발표로 부당대출 사건이 알려진 뒤 지난 12일 첫 관련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1차 자체검사 과정 중 발견된 특이 자금거래 동향 및 여신 감리 등을 기초로 ‘친‧인척 관련 여신’ 전체를 대상으로 2차 자체검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5월 시작된 2차 자체검사의 타깃이 애초에 ‘친‧인척 관련 여신’이었다는 점은 6월 착수한 금감원 현장검사 과정 등에서 손 전 회장이 연루된 사실을 알게 됐다는 최근 해명과는 배치되는 부분이다.

    ◇ 수백억 부실난 부당대출을 ‘단순 심사 소홀’ 자체 판단

    부당대출 규모가 350억원에 이르고 부실까지 발생했는데 단순 심사 소홀로 판단한 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금융사고 보고에 관한 규정은 ‘위법 또는 부당한 업무처리로 금융기관의 공신력을 저해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도 지체없이 당국에 보고토록 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자체조사를 통해 지난 4월 경기 용인의 한 지점에서 상가 분양자들에게 272억원의 담보대출을 내줄 때 임대업 이자상환비율(RTI)을 실제보다 높게 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업무상 배임 금융사고 발생’ 사실을 당국에 보고하고 홈페이지에 공시했다. 

    이 지점은 임대소득 증빙 서류의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작업에 소홀하거나 차이를 묵인해 과다 대출을 실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국민은행은 해당 대출에서 연체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여신심사 소홀’이 아닌 ‘배임’으로 판단해 금융사고 보고와 공시를 진행했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우리은행은 자체검사에서 발견된 여신심사 소홀로 인한 부실 여신은 보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금감원 입장에서는 사문서 위조 등 금융사고 보고 누락 여부에 대해 살펴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