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숙·임주현 모녀 1월 OCI그룹과 통합계약 체결 이후 경영권 갈등 지속3월 정기주총서 임종윤·종훈 형제 승리 … 지지부진 주가에 신동국 회장 등돌려대주주연합의 임시주총 소집 청구에 소액주주 포섭 전쟁박재현 한미약품 대표 독자 임원인사 발령 … 임종훈 대표 '전무 강등' 조치
  • ▲ 한미약품. ⓒ최영찬 기자
    ▲ 한미약품. ⓒ최영찬 기자
    한미약품 이사회가 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송파구 한미타워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난 6월18일 한미약품 임시 주주총회에서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사내이사로, 신동국 한양정밀 대표가 기타비상무이사로, 남병호 헤링스 대표가 사외이사로 새롭게 이사회에 합류한 이후 76일만이다.

    임종윤 이사는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의 대표이사 해임을 이사회 안건으로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미사이언스를 넘어 한미약품에서도 경영권 주도권을 놓고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1월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간 경영권 분쟁으로 촉발된 갈등이 계열사 전문경영인으로까지 확대 양상을 보이면서 이를 지켜보는 임직원과 주주 모두 피로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약 8개월간 이어지고 있는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간 다툼 양상을 되짚어봤다.

    ◆시작은 '상속세' … OCI그룹과 합병 추진이 '트리거'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이 이우현 회장의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하면서 임종윤·종훈 형제와 갈등이 불거졌다.

    2020년 8월 한미약품그룹 창업주인 고 임성기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한 이후 부담해야 하는 상속세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송영숙·임주현 모녀는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했다.

    오너일가는 임성기 회장 타계 후 5년 동안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상속세를 분할 납부하기로 했지만 보유 중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상당부분을 주식담보대출로 활용하고 있어 주식 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송영숙·임주현 모녀는 지난 1월12일 보유 중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일부를 OCI홀딩스에 매각해 상속세를 해결하고 OCI홀딩스가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하는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OCI그룹과 통합 합의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모녀는 "자체적인 자금 조달만으로는 연구·개발(R&D)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만큼 OCI그룹과 통합은 과감한 투자와 사업 확장을 위한 단단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임종윤·종훈 형제는 이러한 통합 계획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즉각 반발하고 수원지방법원에 한미사이언스의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며 경영권 분쟁이 본격 시작됐다. 형제는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은 중간지주사로 전락해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3월 정기주총서 형제 승리

    형제는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총에서 모녀를 제치고 한미약품그룹 경영권을 확보했다. 당초 형제가 모녀에 비해 열세라는 평가를 완전히 뒤집은 결과였다. 

    형제는 지난 1월 기준 보유 지분이 28.42%로 모녀의 35%에 뒤처졌다. 여기에 7.66%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기금이 모녀를 지지해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정기 주총을 앞두고 12.15%의 지분을 보유한 개인 2대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일부 친인척, 소액주주연대가 지지한 데 힘입어 극적으로 승리했다.

    임종윤 이사는 정기 주총을 마친 뒤 "어머니(송영숙 회장)와 여동생(임주현 부회장)은 이번 결과에 실망했겠지만 저는 같이 가기를 원한다"고 말하며 가족 간 화합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모녀와 형제는 정기 주총이 열리기 전까지 경영권 차지를 위한 정당성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치열하게 상호 비방전을 벌여 갈등 봉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송 회장은 정기 주총을 앞두고 입장문을 통해 "해외자본에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지만 두 아들의 선택은 해외 자본에 아버지가 남겨준 소중한 지분을 일정 기간이 보장된 경영권과 맞바꾸는 것이 될 것"이라며 "1조원 운운하는 투자처의 출처를 당장 밝히고 아버지의 뜻인 '한미가 한국을 대표하는 토종 기업으로 영속할 수 있는 길'을 찾으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민국 제약 발전에 버팀목이 되는 한미를 만들자던 50년 전 남편과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라며 "이번 사태를 돌아보며 임성기의 꿈을 지켜낼 수 있는 자녀는 오직 임주현뿐이라고 확신하게 된 만큼 임성기의 이름으로, 한미그룹 회장이자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로서, 장녀 임주현을 한미의 확고한 승계자로 세우고자 한다"고 밝혔다.

    반면 임종윤 이사는 기자간담회에서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 통합 방향을 보면 법적 분쟁 소지가 많고 거버넌스가 굉장히 불투명해 보인다"면서 "1조원 이상 투자를 유치해 바이오공장을 짓고 위탁개발(CDO), 위탁연구(CRO) 사업을 확대해 순이익 1조원을 올리는 회사로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지지부진한 투자유치와 주가 부양 … 신동국 회장의 변심

    형제의 정기주총 승리의 1등 공신이었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모녀 측과 연대하며 경영권 갈등이 재촉발됐다.

    신동국 회장은 지난 7월3일 송영숙·임주현 모녀로부터 한미사이언스 지분 6.5%(444만4187주)를 약 1600억원에 매수하는 동시에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도 체결해 '혈맹'을 맺었다.

    이로써 형제 측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29.07%를, 대주주연합(신동국-송영숙-임주현)은 48.19%를 보유하게 됐다.

    임종윤 이사 측은 신동국 회장의 변심을 놓고 "모녀의 지분 일부 매각으로 시장이 우려하는 상속세 문제를 해결했을 뿐 경영권 분쟁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고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는 입장을 냈다.

    업계에서는 형제 측이 경영권을 확보한 이후 1조원 투자유치 약속이 이뤄지지 않은데다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면서 신 회장이 이에 불만을 품고 연대 파트너를 모녀로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신동국 회장이 모녀와 지분 매수 계약을 체결한 지난 7월3일 기준 한미사이언스 종가는 3만1150원으로 정기주총일(3월28일) 대비 29.8% 하락했다. 모녀와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의 불씨로 작용한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통합계획이 발표된 지난 1월12일 종가(3만8400원)와 비교해도 18.9% 떨어졌다. 사업사인 한미약품의 주가도 같은 기간 각각 18%, 20.5% 하락했다.

    신동국 회장은 모녀와 지분매수계약을 체결한 뒤 법무법인 세종을 통해 "한국형 선진 경영체제 도입을 통해 한미가 글로벌 제약사로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역할을 다하고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기존 오너 중심 경영 체제를 쇄신하고 현장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로 재편해 사업 경쟁력과 효율성 강화를 통해 경영을 안정화하겠다는 의미다.

    대주주연합은 지난 7월29일 한미사이언스에 이사회 구성원을 현재 10명 이내에서 12명으로 늘리기 위해 정관을 변경하는 것과 사내이사 2인 및 기타비상무이사 1인 등 신규 이사 3인을 추가 선임하는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임시주총을 소집해 줄 것을 요청했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형제 측 인사 5명(임종윤 사내이사, 임종훈 대표이사, 권규찬 기타비상무이사, 배보경 기타비상무이사, 사봉관 사외이사)과 모녀 측 인사 4명(송영숙 사내이사, 신유철 사외이사, 김용덕 사외이사, 곽태선 사외이사) 등 9명으로 구성돼 있다.

    대주주연합이 이사 3명을 추가로 이사회에 진입시키면 형제 측 인사 5명 대 모녀 측 인사 7명으로 바뀌게 돼 경영권이 다시 한번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소액주주 포섭 나선 임주현·임종훈 남매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주총회가 다시 열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소액주주를 우군으로 확보하기 위한 대주주연합과 형제 측의 기싸움이 시작됐다.

    대주주연합이 이사회 정원을 늘리기 위해 정관을 변경하려면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주주가 출석한 상황에서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즉 형제 측보다 2배 이상 많은 지분을 모아야 한다.

    공시에 따르면 형제 측은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29.0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있지만 친인척 4명의 지지를 추가로 얻어 32.13%의 지분을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제 측이 임시주총 현장에서 33.34%의 지분만 확보하면 대주주연합 측의 정관변경 안건을 저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2일 기준 소액주주연대가 온라인 주주연대 플랫폼을 통해 확보한 2.24%의 지분 향방은 형제 측에는 확실한 승기를 줄 수도, 대주주연합 측에는 끝까지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미사이언스 소액주주연대는 지난 4월18일 임종윤·종훈 형제에게, 7월 임종윤·주현·종훈 삼남매에게 각각 내용증명을 보내 주주와 소통할 것을 요청했다. 경영권 갈등이 다시 불거지면서 지지부진한 한미사이언스 주가를 부양시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임주현 부회장이 가장 먼저 소액주주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7월 26일 경기 화성에 있는 한미약품 연구센터에서 이준용 한미사이언스 소액주주연대 대표와 만나 앞으로의 비전 및 그동안 한미약품그룹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설명했다.

    임주현 부회장은 "신동국 회장을 주축으로 회사를 가장 빨리 안정화시키고 최적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면서 "신약 개발이라는 한미약품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지적을 참고해 경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임종훈 대표는 지난달 13일 서울 송파구 한미타워에서 이준용 대표와 만나 정기주총 이후 대표를 지내면서 느낀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임종훈 대표는 "투자를 유치하면 오버행과 마진콜 이슈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R&D 재원까지도 확보할 수 있다"면서 "글로벌 시장 영향력이 크고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한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게 되면 '글로벌 한미'로 도약하는 데도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준용 대표는 임주현 부회장과 면담 이후에는 "말만 하고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어 임종윤·종훈 형제 측에 실망했다"면서 "소액주주연대가 결정할 사안은 아니지만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능력있는 오너일가가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해 임주현 부회장을 지지하는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임종훈 대표와 간담회 이후 "임시주총이 열리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면서 "주가 부양 의지가 높은 쪽을 선택하겠다"라고 말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박재현 대표의 한미약품 독립 경영 추진 … 임종훈 대표 맞대응 양상

    임종훈 대표는 대주주연합과 경영권 갈등이 다시 불거지면서 이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대외활동에 나서고 있다.

    형인 임종윤 이사와 달리 소액주주연대 대표와 간담회를 가졌으며 언론과 직접 소통, 홈페이지 공고 등을 통해 한미약품그룹 경영을 위한 비전과 대주주연합에 대한 아쉬운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이사가 지난달 28일 임종훈 대표의 명시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인사팀과 법무팀을 신설하자 그간의 신중한 태도에서 적극적인 대응으로 맞섰다. 임종훈 대표는 박 대표가 조직 개편과 함께 일부 임원인사를 강행하자 당일 박 대표의 직위를 사장에서 전무로 강등시키고 업무범위도 팔탄공장 제조업무로 제한했다.

    한미약품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가 박 대표의 사장 직위를 전무로 강등한 것은 아무 실효성이 없다"면서 "오히려 원칙과 절차 없이 강행된 대표권 남용 사례로 지주사 대표의 인사발령은 모두 무효이며 대표로서의 권한 및 직책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박재현 대표도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는 그동안 전문경영인 체제를 존중하고 지지하다고 밝힌 만큼 이번 한미약품의 독자경영 방침을 존중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지주사 대표의 승인을 거친 뒤 인사팀을 통해 인사발령을 내는 절차가 세계적인 선진 경영체제와 배치된다고 주장하면서 "고 임성기 선대회장께서 오랜기간 주문해 오신 전문경영인 체제가 한미약품부터라도 확고히 서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투명하고 독립적인 경영을 해 나가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미사이언스와 지속적으로 협력할 부분이 있으면 소통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임종훈 대표는 한미사이언스 보도자료를 통해 박 대표가 지주사 체제를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의 최대주주인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임종훈 대표 지시를 따르는 것이 당연함에도 박 대표가 한미사이언스가 아닌 특정 대주주의 입장에 있는 인물을 신규 임원으로 선임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가 임원인사 발령을 낸 이승엽 경영관리본부 인사팀 팀장 겸 컴플라이언스 팀장 전무이사와 권순기 경영관리본부 법무팀 전무이사가 송영숙·임주현 모녀의 자문사 역할을 맡았던 사모펀드 라데팡스파트너스(라데팡스) 측 인물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임종윤·종훈 형제는 2022년 라데팡스가 개입한 이후 경영권 분쟁 구도가 심화됐다고 지목한 바 있을 정도로 라데팡스와 불편한 관계에 있다.

    이와 관련해 한미약품 측은 "대주주연합도 한미사이언스 과반 수준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라면서 "같은 논리로 한미약품의 독자경영을 지지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박재현 대표 해임안 통과여부 따라 후폭풍 불가피

    이날 열리는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박재현 대표이사 해임 안건이 통과된다면 임종윤·종훈 형제의 한미약품그룹 내 장악력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대로 박 대표의 해임 안건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해임 안건을 올린 임종윤 이사의 입지가 축소되는 것은 물론, 박 대표가 추진하는 한미약품 독립경영 추진 행보도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약품 이사회는 박재현 대표이사와 박명희 국내사업본부 전무이사, 황선혜 감사위원(사외이사), 김태윤 감사위원(사외이사), 윤영각 감사위원(사외이사), 윤도흠 사외이사,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 임종윤 미래전략 사내이사, 임종훈 그룹지원 사내이사, 남병호 사외이사 등 총 10명으로 구성됐다.

    이 중 임종윤·종훈 형제 측 인물로는 지난 6월18일 임시주총을 통해 이사회에 진입한 형제와 남병호 사외이사 정도가 꼽히고 있어 형제들은 기존 이사들을 얼마나 회유하느냐가 이사회 승패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