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법 결국 무산… 업계 반발에 '사후 규제'로 전환애플·구글 등 빅테크의 시장지배 확대 속 규제 구멍 우려단, 국내 대형플랫폼 성장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란 시각도
  • ▲ 공정거래위원회 ⓒ뉴시스
    ▲ 공정거래위원회 ⓒ뉴시스
    시장을 좌우하는 거대 온라인 플랫폼을 미리 독과점으로 묶어 끼워팔기나 우대와 같은 불공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이른바 사전지정제 도입이 무산됐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세계 곳곳에서 사전지정제를 바탕으로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에 대한 반(反)독점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경쟁당국만 이러한 추세를 역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 과징금 폭탄 맞은 애플·구글 … 빅테크 겨냥 규제 강해질 듯

    11일 유럽사법재판소(ECJ)은 10일(현지시간) 애플이 아일랜드 정부로부터 불공정 조세 혜택을 받았다며 EU가 부과한 130억 유로(약 19조원) 과징금이 부당하다고 제기한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EU 반독점당국은 2016년 애플이 1991년부터 2007년까지 세무 당국에 납부한 실질 법인세율이 0.005%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애플에 총 130억유로의 체납 세금과 이자를 포함해 총 143억유로를 납부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같은 날, 구글도 EU 반독점당국을 상대로 한 24억유로(약 3조5000억원) 규모의 과징금 소송에서 패소했다. ECJ는 2017년 구글 쇼핑에 대해 EU가 부과한 반독점법 위반 과징금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원심에 불복한 구글의 항소를 기각했다. 집행위는 구글이 쇼핑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경쟁업체 서비스보다 자사 서비스로 불공정하게 유도했다고 판단했다.

    애플과 구글은 유럽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구글이 디지털 광고 부문에서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반독점 위반 혐의를 제기했다. 지난해 12월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구글의 앱 마켓인 플레이스토어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애플도 앱스토어의 배타적 정책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지난 3월부터 재판 중이다.

    이번 계기로 향후 빅테크에 대한 시장 지배력 남용을 겨냥한 규제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서 EU는 지난 3월부터 디지털 시장법(Digital Market Act, DMA)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고 공정 경쟁을 촉진하며 개인정보 보호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최대 10%가 과징금으로 부과되며, 반복 위반 시 20%로 늘어난다. DMA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를 게이트키퍼로 지정해 특별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알파벳·애플·메타 등이 대상이다.

    일본·영국·호주 등도 EU의 DMA와 유사한 법안을 도입하고 있다. 영국은 디지털 시장 경쟁 소비자법(DMCC)을 올해 말 시행할 예정이다. 일본과 인도는 애플과 구글 등 거대 디지털 기업을 규제할 법안을 추진 중이다. 규제 대상에는 구글과 애플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 ▲ 네이버, 카카오 ⓒ각 사 제공
    ▲ 네이버, 카카오 ⓒ각 사 제공
    ◇ 사전지정서 사후규제 전환 … 글로벌 추세 역행 vs 규제 과잉

    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9일 거대 플랫폼 업체의 자사 우대 및 끼워팔기 등 독과점 남용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발표했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지정하는 새로운 플랫폼법 제정 대신,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사후규제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법을 새로 제정해 EU의 DMA와 유사한 대형 플랫폼 사전지정제를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정보통신(IT) 업계의 과잉규제라는 반발로 연기한 뒤 결국 사전지정제를 제외시킨 것으로 보인다. 대신 공정위는 플랫폼 업체에 입증 책임을 부과하고, 임시 중지 명령과 과징금 상향 등을 통해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방침이다.

    공정위가 지배적 플랫폼 사후 추정 기준은 시장점유율, 직간접 연매출 4조원 이상 등이다. 기준을 적용하면 구글·애플·메타·네이버 등이 규제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에 규제 실효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독과점 여부를 판단하려면 개별 사건마다 규율 대상 기준을 충족하는지를 계산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빅테크에 대한 시장 지배력 남용을 겨냥한 글로벌 규제 강화 추세에 역행하는 셈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전날 성명서를 통해 "이미 수많은 논의와 토론을 통해 적절한 대안이 아니라고 평가가 끝난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돌연 후퇴했다"며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지정규정을 전면으로 후퇴시킨 졸속 수정이자, 규율 대상도 없이 규제 규정을 도입하겠다는 논리적 역설로 얼룩진 누더기"라고 혹평했다.

    일부에선 지배적 플랫폼에 대한 사전 지정제를 철회하고 사후 규제로 전환한 공정위의 방침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사전 지정제가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로 내비칠 수 있고, 자칫 글로벌 빅테크에 비해 협소한 국내 대형 플랫폼 성장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거래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거래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은 이미 공정거래법이 처벌하고 있다"라며 "중복규제를 방지하기 위한 가장 최선의 대책은 불필요한 규제를 함부로 도입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