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기술추월과 공급과잉에 韓 산업계 초토화 위기감미국·EU 등 주요국들도 '경각심' 대중 관세 등 선제 조치韓도 대응 서둘러야… "R&D지원 등 정책적 노력 병행 필요"
  • ▲ 중국 배터리 (PG) ⓒ연합뉴스
    ▲ 중국 배터리 (PG) ⓒ연합뉴스
    중국발 공급과잉이 한국경제에 공포감을 키우고 있다. 장기화하는 중국 내수침체로 수요부진이 지속되자 해외로 밀어내는 저가 출혈수출이 이어진다. 전기차, 배터리 등 신산업 분야는 물론 석유화학, 철강 등 전통 제조업까지 우리 산업계를 뒤집어놓을 거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중국의 첨단기술 중심 산업재편과 우리 제조산업을 능가하는 기술 추월로 국내 시장을 초토화하는 상황이라 이런 중국발 '쌍(雙)위협'이 더 가속화되기 전에 경제적 '다층(多層)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8일 일본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최근 보도한 '2023년 주요 상품·서비스 시장점유율 조사 결과'에서 핵심기술 품목 71개 중에 중국 기업이 1위인 품목은 17개에 달했다. 차량용 리튬이온 배터리(CATL), 이동통신 인프라(화웨이), 냉장고·세탁기(하이얼)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한국은 D램 반도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낸드플래시 반도체, 초박형 TV(이상 삼성전자) 등 4개 품목에서만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1위 품목은 2022년에는 6개였지만 1년 만에 2개가 줄었다.

    CATL, 화웨이와 같은 중국 기업들의 기술 진보가 전례없는 속도를 보이며 우리나라는 이제 중국의  추월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과거에 싼 맛에 찾던 '싸구려'가 아니며, 이른바 '대륙의 실수'로 웃어 넘길만한 문제도 아닌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 ▲ 국내 주요 산업별 중국 공급과잉 영향 ⓒ나이스신용평가
    ▲ 국내 주요 산업별 중국 공급과잉 영향 ⓒ나이스신용평가
    중국의 공급 과잉 문제도 심각하다.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등 신산업 분야뿐 아니라 철강, 석유화학, 조선과 같은 전통 제조산업까지 가리지 않는다. 국내 산업계는 중국의 공급과잉률이 현재 세계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를 넘어서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철강 산업은 열연강판과 후판 등 강종에서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가격 하락을 야기하면서 국내 철강사들이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가 중국산 수출 공세에 국내 제철소들이 문을 닫는 사례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국내 석유화학도 유례없는 장기 불황에 처하며 기업들의 차입부담이 확대되는 추세다. 국내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의 합산 영업이익률은 2021년 10.6%에서 지난해 1.7%로 하락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이보다 낮은 1%를 기록했다.

    중국발 공급과잉이 석유화학 산업 전반에 발생하면서 국내 업체의 원가경쟁력이 약화된 점, 전방 수요 또한 중국의 이구환신(투자 및 소비 진작) 정책 본격화와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 미국과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신용평가는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 가운데 기초화학 비중이 높은 업체들이 업황 둔화에 대한 방어력이 낮다고 진단했다. 영업과 재무위험이 모두 높은 업체로는 롯데케미칼과 SKC, 여천NCC, SK어드밴스드, 효성화학이 지목됐다. 

    이같은 문제 인식에 국내 주요 기업들도 비상이다. LG그룹은 지난 25일 구광모 회장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CEO, 사업본부장 등 40여명의 최고 경영진이 참석한 그룹 사장단 워크숍에서 '중국 위협 보고'가 주요하게 논의됐다. 중국 기업들이 단순히 원가 경쟁력이나 SCM(공급망 관리) 측면뿐 아니라 기술력이나 디자인에서도 빠르고, 위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상황을 '위협'으로 본 것이다.  

    중국 업체들이 가전뿐 아니라 석유화학,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LG의 핵심 사업 분야에서 위협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그룹 최고 경영진들은 LG가 어떤 측면에서 중국과 차별화를 꾀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 집중 토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도 위기 의식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동시에 발빠른 조치로 중국의 공급 과잉에 따른 저가 출혈수출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반덤핑과 상계관세 조치를 통해 수입 상품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물리치고 있으며, EU도 과도한 정부 보조금에 기반한 저가 중국산 전기차 등 여러 품목들이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면서 상계 관세 부과를 논의 중이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정부가 위기 의식을 갖고 머리를 맞대 미국·EU처럼 선제적이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맞춤형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경제가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 공급 과잉 및 기술 추월이 '두려움'이 된 만큼 '다층전략'을 마련해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산업본부장은 "기초 소재부터 첨단 산업까지 기술과 공급에서 중국이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다"며 "특히 중국의 공급과잉 문제로 우리 제조업 등 첨단 산업의 경쟁력은 밀리면 안 된다. 이를 위해 일반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