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증권 시총 수준 유증으로 주주들 분통… 의구심·비난 확산'거래 정지' 테라사이언스, 주가 5분의 1 수준 유증 결정 '뒤통수'이수페타시스·고려아연 등 주주권 침해 유증 지속…"소액주주 보호 대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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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내 증시에서 주주권에 역행하며 개미 투자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주주배정 유상증자가 잇따르고 있다.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에 쐐기를 박으며 국내 주식 투자 비관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소액주주 보호 방안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8일 현대차증권은 전 거래일 대비 13.07% 급락한 7650원에 마감하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현대차증권의 주가를 끌어내린 건 시가총액(27일 기준 2426억원) 수준에 육박하는 대규모 유상증자 공시다. 현대차증권 이사회는 지난 26일 전체 상장주식 수의 약 95%에 달하는 약 3012만주를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증 계획을 공시했다. 

    1주당 신주발행가액(예정치)은 전날 종가 대비 25% 할인된 6640원으로 총 모집액은 약 2000억원이다. 지금까지 발행한 주식 수만큼의 주식을 낮은 가격에 새로 발행하겠다는 의미다. 조달 자금은 차세대 원장 시스템 개발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일반적으로 유상증자는 주식 수가 늘어나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희석돼 주식시장에선 악재로 받아들인다. 특히 특정 인물이나 기관 등이 주식을 받고 자금을 지원하는 제3자배정과 달리 이번 증자는 주주배정 후 실권주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점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주식이 배분된다. 

    이미 주가 수준도 처참한 수준이다. 현대차증권의 주가는 2021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으로, 주가순자산비율(PBR)도 0.23배에 그칠 정도로 주식가치가 낮다.

    시장에선 현대차증권의 유증 배경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올 3분기 기준 현대차증권의 이익잉여금은 6215억원으로 이번 유상증자 조달금액의 3배가 넘는다. 때문에 현대차증권 지분 25.43%를 보유한 현대차가 현대차증권 지분을 저가 매입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하루 평균 5개도 채 올라오지 않았던 현대차증권의 종목토론방도 비난 글이 쇄도했다. 공시가 본격적으로 주가에 반영된 지난 27일에만 400개에 가까운 글들이 올라왔다. 

    한 개인 투자자는 "현대차의 유보금이 수십조원인데 제3자 배정이 아닌 일반 주주 주머니를 턴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자조가 커지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의 이번 결정은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현재 주가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발행가액으로 유상증자에 나선 회사도 있다. 

    지난 3월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주식거래가 정지된 테라사이언스는 지난 7일 운영자금 약 3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주당 발행가액은 139원으로, 신주 2158만2733주(보통주)가 발행된다. 주당 발행가액은 거래 정지 전 주가(654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기존 주주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유상증자는 최근 시세(주가)의 10% 이상을 낮추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현재 거래 정지 상태인 테라사이언스는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개인 주주들은 경영권 분쟁 중인 테라사이언스 경영진이 헐값에 회사를 매각하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번 유상증자의 납부가 완료되면 테라사이언스의 최대 주주는 기존 권순백(지분율 2.87%→2.35%) 블루밍홀딩스 대표에서 서진판지(18.42%)로 변경된다. 

    현대차증권과 테라사이언스를 제외하더라도 올해 국내 주식시장에선 소액주주들의 뒤통수를 치는 유증이 넘쳐났다. 

    경영권 분쟁 중인 코스피 상장사 고려아연은 지난달 30일 주당 83만원 공모주 청약에 참여한 투자자들에게 주당 67만원 유상증자 결정으로 뒤통수를 쳤다. 금융당국의 제동에 결국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유상증자 결정을 철회하며 상황을 정리했지만 개인투자자들을 비롯한 시장 참여자들을 아연실색하게 한 일이었다. 

    이수페타시스는 지난 8일 오후 4시 55분 신규 공장 신설 투자 계획을 발표해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시간외 거래에서 급등했다. 주가 상승 후 1시간께 이후인 오후 6시 5498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기존 투자자의 보유 주식 가치가 희석될 수 있어 시장에선 악재로 여겨지는 유상증자 공시 시점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같은 '올빼미 공시'로 악재에 대응할 수 없어 피해를 입었다는 투자자가 많았다. 

    주주가치 훼손 논란을 낳고 있는 유증 발표가 이어지자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국내주식 회의론'이 퍼지고 있다. 

    글로벌 증시 대비 나홀로 역주행을 이어가며 가뜩이나 위축된 국내 증시 투심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주주 권리 확대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개인주식투자자 권익보호 비영리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정의정 대표는 "현대차증권 등을 포함해 주주 피해를 일방적으로 끼치는 행위가 이사회에서 의결되는 것은 문제"라면서 "주주 권리를 무시하고, 소수 주주 권리를 짓밟는 행태가 만연돼 있지만 이걸 제재할 방법이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그간 기업이 일방적으로 보호돼 왔다면 이젠 주주 민주주의가 도입돼야 할 시기"라면서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 증시의 문제적 추세를 바꾸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