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3구·용산구 아파트 전체 허가구역으로 묶어 … 전례 없는 초강수해제한 지 35일 만에 번복 … '시장 침체 가능성' 예상 빗나가국토부, 집값 상승 우려했으나 사전협의 없이 발표 전 설명 들어
  • ▲ 서울 아파트단지 전경.ⓒ뉴데일리DB
    ▲ 서울 아파트단지 전경.ⓒ뉴데일리DB
    서울시가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지정 해제를 한 달여 만에 번복하면서 논란이 이는 가운데 국토교통부는 토허구역 해제에 우려를 표명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 정책이 시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인 데다 앞선 문재인 정부에서도 부동산 정책을 이념적으로 접근해 시장을 망가트렸던 만큼 정책 변경 과정에서 절차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40만 가구 갭투자 차단 … 구(區) 단위 지정 '초강수'

    국토부와 서울시,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는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강남·서초·송파·용산구 아파트 2200개 단지 40만 가구를 토허구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과 압여목성(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동) 등 특정지역, 단지 거래만 제한했던 기존 토허제보다 규제 강도가 더 세졌다. 토허구역을 특정 구역이나 동(洞)이 아닌 구(區) 단위로 한꺼번에 지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정 기간은 일단 오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6개월이다. 필요하다면 기간 연장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이달 24일부터 체결된 아파트 신규 매매계약분부터 적용되며, 서울 아파트 40만 가구에 대해 전세보증금을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가 원천 금지된다.

    ◇오세훈 "심려 끼쳐 송구"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토허구역 지정 브리핑에서 "먼저 지난달 12일 토허구역 해제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가 지난 5년 간이나 유지되면서 매수자는 선택의 제한을 받고, 매도자는 재산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며 "토허구역 주변 지역으로 수요가 몰리는 이른바 '풍선효과'로 반포 등 일부 지역의 집값이 급등하는 부작용도 있었다"고 앞서 토허구역을 해제했던 배경을 설명했다.

    토허구역은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상가·토지 등을 사고팔 때 담당 지방자치단체장(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부동산 투기 방지를 위해 2년간 실거주하거나 직접 운영할 목적이 아니면 사들일 수 없도록 설정한 구역을 말한다.

    토허제는 본래 신도시 등 개발 예정지에서 투기적 토지 거래를 막기 위한 제도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때부터 집값 잡기에 쓰이며 사실상 '주택거래허가제'로 변질했다.
  • ▲ 서울 아파트 거래건수 및 거래가격 변동률.ⓒ서울시
    ▲ 서울 아파트 거래건수 및 거래가격 변동률.ⓒ서울시
    ◇'잠삼대청' 해제 이후 집값 들썩

    이날 오 시장은 시장 불안 요인을 차단하기 위해 토허구역을 확대 재지정하면서도 토허제가 불합리한 규제라는 신념을 고수했다. 토허제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많아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토허제는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 형성을 유도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자유거래를 침해하는 반시장적 규제"라며 "시장 기능을 왜곡할 수 있는 '극약 처방'에 해당하기에 한시적으로 제한된 범위에서만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연장선상에서 전문가들이 이번 토허제 확대 재지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지정에 따른 시장영향은 제한적·국지적"이라며 "이번에 (5년간 적용됐던) 토허제가 해제되면서 가격이 변동되는 것을 봤으니 다음에도 그러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시장심리라는 것을 감안하면 재지정이 바람직하진 않다"고 말했다.

    관건은 정책 변경의 타이밍이다. 오 시장은 "(토허구역 지정에 따른) 문제를 고려하던 중 규제철폐 시민 대토론회에서 토허구역 해제에 대한 요구가 다시 제기됐다"며 "당시 주택 가격은 (하향)안정세였고 거래량도 급감하며 시장 위축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이에 정상적인 거래를 활성화하고 매수·매도자 간 자유로운 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토허구역을 해제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단기간에 다소 집값이 오르더라도 감내할 만한 수준일 것이고, 6개월쯤 지켜보면 가라앉을 거로 예상했다.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거래 건수는 지난해 9월 3053건에서 10월 3651건으로 늘었다가 11월 3245건, 12월 3007건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거래가격 변동률도 9월 0.2%, 10월 0.0%, 11월 0.1%, 12월 -0.3%로 하락세였다.

    하지만 올 1월 기준으로는 거래 건수 3204건, 거래가격 변동률 0.2%로 반등했다. 서울시가 이 신호를 간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리, 대출규제 등 집값 상승에 영향을 줄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공교롭게도 규제 완화 후 부동산 시장은 서울시 예상보다 더 과열됐다. 부동산원이 지난 13일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10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0.2% 올랐다. 2월 둘째 주 상승률은 0.02%였는데, 한 달 만에 상승률이 10배로 껑충 뛰었다. 강남 3구가 상승세를 주도했다. 송파구는 전주와 비교해 0.72% 가격이 뛰었다. 2018년 2월 첫째 주(0.76%) 이후 7년 1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강남구(0.69%), 서초구(0.62%)도 아파트값 상승률이 2018년 1월 이후 최고였다.

    규제 해제와 관계없는 마포·용산·성동구 등으로도 가격 상승세가 번졌다. 노도강(노원·도봉·강북), 금관구(금천·관악·구로)의 집값도 회복 조짐을 보여 상승세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왔다.
  • ▲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관련해 발언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연합뉴스
    ▲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관련해 발언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연합뉴스
    ◇국토부, 집값 상승 우려했으나 사전협의 없어

    지난달 12일 조남준 서울시 도시공간본부장은 토허구역 해제 발표 브리핑에서 "구역 지정 시 가격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 효과가 2, 3년 뒤면 상당 부분 사라지고 지정 기간이 장기화할 경우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를 억제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연구용역 결과가 있었다"고 부연했다. 시는 부동산 시장이 하향 안정화 추세여서 규제를 풀 적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국토부 생각은 달랐다. 세종관가 소식통에 따르면 국토부는 당시 서울시의 토허구역 해제 결정에 반대 의견을 전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 시장 상황을 전반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부처 실무라인이 토허구역 해제 시 집값 상승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허구역 지정·해제 권한을 쥔 시는 국토부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 시장은 브리핑에서 "부동산은 시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고 언급했지만, 부동산 정책 주무 부처와 서울시 간 협의 절차는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토부 관계자는 "(토허구역 해제 관련) 협의는 없었다"면서 "발표 전 시 담당 과장으로부터 개략적인 설명은 들었으나 이미 결정된 내용을 전해 듣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사실상 일방적인 통보였던 셈이다.

    국토부는 지난 1월 14일 오 시장이 시청에서 열린 '규제 풀어 민생 살리기 대토론회'에서 "강남권에 지정된 토허구역 해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내심 서울시와의 협의를 원했으나 기관 간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시 내용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집값 상승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부동산 관계기관 회의를 하고 대책을 내놓으며 공동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민감한 정책 변화를 앞두고는 협의 과정이 전무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