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 후 원자력·AI 등 연구·기술협력 등 제약국가신뢰도 저하·美관세 협상카드 활용 우려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에도 부정적 영향 전망리더십 공백기로 현 대행체제선 협상력 한계정부 "해제까지는 물리적으로 시간 걸릴 듯"
  • ▲ 미국 에너지부 전경. ⓒUPI/연합뉴스
    ▲ 미국 에너지부 전경. ⓒUPI/연합뉴스
    미국이 지난 1월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데 따른 제한조치가 15일부터 공식 발효된다. 원자력,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미 간 기술협력이 당분간 제약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관세 협상에서 민감국가 해제를 '지렛대'로 사용할 경우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관계당국 등에 따르면 미 에너지부(DOE)는 미 동부시간 기준 15일 0시부터 이른바 민감국가 리스트(SCL)에 한국을 포함해 관리한다. DOE는 국가 안보나 핵 확산방지 또는 테러지원 등의 우려가 있을 경우 해당 국가를 민감국가 리스트에 올리고 또 이들과 연구 협력, 기술 공유 등에 대해 제한을 둔다. 

    북한 등 테러지원국, 중국·러시아 등 위험 국가가 우선적으로 포함된다. 한국이 포함된 기타 지정 국가는 테러지원국이나 위험 국가에 비해 우려 수위가 낮은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리스트상 최하위 범주지만, 한미 협력 과정에서 제약이 있는 만큼 서둘러 해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14일 열린 국회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의에서 "지난 3월 20일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에너지부 장관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앞으로 신속하게 협의한다는 합의가 있었고 그 이후 실무협의가 진행 중"이라면서도 "미 에너지부 내부 절차에 따르는 것이어서 민감국가 해제는 물리적으로 좀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부는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 1월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한 것을 2개월이 지나도록 파악하지 못하다 3월에서야 뒤늦게 알게 됐다. 이후 미국 측에 민감국가 지정 해제 필요성을 설명하는 등 즉각 교섭에 나섰지만 실질적인 진전을 보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에 따른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은 에너지부가 관할하는 원자력과 핵무기 기술, AI 등 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감국가 지정 효력이 발효되면 한국 출신 연구자는 미국 연구소를 방문하기 최소 45일 전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별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 에너지부 직원이나 소속 연구자가 한국을 방문할 때도 추가 보안 절차가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기 당시에도 선 제재로 기선을 제압한 뒤 협상으로 외교적 우위를 점한 것과 같이, 민감국가 해제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해 협상 우위 전략을 가져갈 것으로 내다봤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연구소 교수는 "민감국가 지정 해제가 되지 못한 것은 미국 입장에서는 지정 이유가 변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자 한국을 계속 컨트롤 할 수 있는 하나의 지렛대로 삼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이어 "민감국가 카드는 사실상 관세·방위비 협상 등과 얽혀있는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협상안이 나와야 해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한국이 더 양보하고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놓인 셈이 됐다"고 우려했다. 
  • ▲ 2023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한미동맹70주년 기념 특별전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펄럭이는 모습. ⓒ뉴시스
    ▲ 2023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한미동맹70주년 기념 특별전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펄럭이는 모습. ⓒ뉴시스
    국가 신뢰도 저하에 따른 악영향과 첨단 기술 협력 제동에 따른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현재도 트럼프발 관세전쟁으로 인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데 민감국가 지정 효력이 발효되면 한국 경제에 더 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원자력 등 전략물자 기술협력에 있어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고, 만일 민감국가 지정이 장기화되면 국가 신뢰도가 계속적인 부정적 영향을 받아 금융시장 불확실성을 높여 원달러 환율을 자극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권성훈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 에너지부의 명시적 제한 외에도 국가 신뢰도 저하나 연구자 간 협력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이 협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민감국가 지정 사유가 원자력 분야에 있다면 이 분야의 한미 협력이 전반적으로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감국가 지정 효력은 미 에너지부와 그 산하기관에 국한되는 것이므로 외교·안보 분야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에는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가 리더십 부재 상황인 만큼 현 체제에서의 통상당국의 협상 전략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을출 교수는 "한국은 권한대행 체제로 리더십 공백기인 만큼 협상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큰 양보를 얻어내 중국, 캐나다 등과의 관세협상에서 구겨진 체면을 세우려 할텐데 관세협상에 민감국가 해제 협상까지 더해져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빨리 해소되어야 한다"며 "결국은 외교 문제인 만큼 대책을 마련해 민감국가 지정을 해제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을 두고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곤 동아시아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은 "민감국가 지정은 공개적으로 기준과 사유를 밝히는 테러지원국 지정과 달리 미국 에너지부 내부지침 수준으로 보인다"며 "제도적, 물리적 제약이 가해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바이든 행정부 당시 결정된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협상에 쓸 의미있는 카드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민감국가 지정에 따른 원자력 산업 부문에 대한 영향에 선을 그었다. 정 교수는 "일단 산업적 영향은 없다"면서 "연구개발(R&D)에는 연구소 출입 등에 일부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민감국가 지정과 상관없이 원래도 정부출연연구기관 방문 45일 전에 방문 신청하는 등 동일한 적용을 받아왔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