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비정규직 "진짜 사장 현대제철 나서라"삼성전자·SK하이닉스·HD현대 등 제조업 '타격'IT·서비스업종도 시끌… 하청노동자 요구 봇물'사용자' 정의 기준 모호해… 현장 혼란 불 보듯
  • ▲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투쟁선포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투쟁선포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청인 현대제철에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법 2·3조 개정안)이 통과되자마자 하청노조의 요구가 본격화하고 있다.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25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짜 사장 현대제철은 비정규직과 교섭하라”고 주장했다. 전날 노란봉투법이 여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로 다음 날 기자회견에 나선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 주도로 표결 처리됐다. 이 법안은 하청업체 등 간접고용 근로자도 안전과 같이 실질적 지배력이 미치는 의제와 관련해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행은 6개월 뒤부터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대제철이 아닌 하청업체와 근로 계약을 맺고 현대제철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다. 이들의 교섭 대상은 하청업체지만, 노란봉투법 통과로 이들도 원청인 현대제철과 교섭할 권리를 갖게 됐다.

    현대제철은 산하에 ITC(설비·생산보조), ISC(운송하역), IMC(환경), IEC(설비) 등의 분야에 협력업체를 두고 있다. 비정규직 지회는 이들 소속 근로자들을 아우르면서 현대제철 측에 ‘직고용’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지회 측은 최근 법원의 현대제철 사내협력업체 관련 판결과 노란봉투법 입법 등과 맞물려 선전활동을 준비해왔다. 실제 지난달 현대제철과 한화오션의 사내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원청 사용자의 지위를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는 27일에는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선전전을 벌이고, 현대제철이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고소에 참여하는 인원은 약 1900명으로 알려졌다.

    노란봉투법 통과로 하청노조의 원청에 임금·복지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사례가 전 산업으로 확산할 전망이다. 특히 제조과정에서 적게는 수백 개, 많게는 수천 개의 하청업체가 관여하는 반도체나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의 산업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삼성전자 협력사인 이앤에스 노조는 통상임금 지급 문제로 사측과 갈등을 빚던 중 지난 6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가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최근 임금 체불 문제까지 삼성전자가 나서라며 요구 범위를 넓혔다.

    국내 주요 조선소 사업장 노조로 구성된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지난달 HD현대·한화오션 등 원청에 공동 교섭을 촉구하기도 했다. LG전자 가전 유지·보수 자회사 노동자들도 “진짜 사장인 LG전자와 교섭하겠다”며 직접 교섭을 요구 중이며, SK하이닉스는 SK에코플랜트 협력사에서 해고된 노조원들로부터 부당해고를 해결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IT, 서비스업종에서도 근로 계약 개선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네이버 산하 6개 자회사 노조는 원청인 네이버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집회를 27일 경기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열 계획이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도 원청인 롯데쇼핑·신세계·현대백화점 등도 업무 전가와 휴일 도입 등 문제를 원청이 직접 해결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의 모호한 규정에 기업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협력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재정의했는데, 기준이 모호하다보니 원청과 직접적인 계약을 맺지 않은 하청업체도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거나 파업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법 조항의 모호성 때문에 노동자와 사측 간 법정 다툼이 늘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로선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고용부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든다고 해도 노동위원회와 법원 판례가 쌓이기 전까지는 현장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