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 노조, 고공농성 이어 무기한 전면 파업12일 울산조선소서 집회… 임금 교섭 장기화 조짐 정부는 '정년 연장·노정교섭' 등 노동계 숙원 공감정부·노조 협공에 산업계 우려… 경영 리스크 확대
  • ▲ HD현대중공업 노조가 3일 임협 난항으로 올해 7번째 부분 파업을 벌였다. 조합원들이 울산 본사 조선소에서 집회하는 모습. ⓒ연합뉴스
    ▲ HD현대중공업 노조가 3일 임협 난항으로 올해 7번째 부분 파업을 벌였다. 조합원들이 울산 본사 조선소에서 집회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통과에 이어 양대 노총을 잇따라 찾아 노동조합 권리 강화를 약속하며 노동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와 함께 HD현대중공업 노조는 고공농성에 이어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 투쟁 강도를 높이는 형국으로 기업은 임금 협상 교착 속에서 더욱 수세에 몰리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은 올해 임금 협상 난항으로 이날 오전 8시부터 전면 파업을 시작했다. 올 들어 11차례 부분 파업을 벌여온 노조가 총파업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노조는 회사 측이 전향적인 협상안을 제시할 때까지 무기한 전면 파업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앞서 백호선 HD현대중 노조지부장은 사측의 결단을 촉구하며 조선소 내 40m 높이 턴오버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에 돌입하고 총파업을 선언했다. 턴오버크레인은 선박 구조물을 뒤집는 데 사용하는 설비다. 노조는 2021년 7월에도 임단협 교섭 과정에서 전면 파업하며 이 크레인에 오른 바 있다.

    백 지부장은 “회사는 미포조선을 합병하고,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실현 구상으로 세계적 선박 건조 기업으로의 위상을 높이는 가운데에서 그것을 이루어낸 구성원들과 조합원에 대한 예우와 보상은 찾아볼 수 없다”며 “올해 임금요구안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고 기업의 지불 능력에 비교해서 과하거나 유별나지 않다”고 말했다.

    HD현대중 노사는 올해 5월 20일 상견례 이후 23차례 교섭했다. 지난 7월 18일에는 기본급 13만3000원(호봉승급분 3만5000원 포함) 인상 등을 포함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지만,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됐다. 이후 여러 차례 더 교섭을 진행했으나 임금 인상 규모와 방식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노조는 각종 수당의 기준이 되는 기본급을 중심으로 인상을 요구하는 반면, 사측은 수주 상황과 글로벌 경제 요인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격려금(일시금)을 늘리려는 입장이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합병 이후 예상되는 직무 전환 배치, 싱가포르 법인 설립 이후 전망되는 이익 배분 문제 등도 쟁점이다.
  •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양대노총 위원장과의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양대노총 위원장과의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HD현대중 노사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파업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노조는 오는 12일에는 HD현대 계열사 노조 조합원들이 울산 조선소로 모이는 집회를 열 계획이다.

    파업 참여율이 높을수록 생산 차질 영향도 클 전망이다. 조선 건조 현장은 자동차 생산라인처럼 일부만 파업해도 전체가 멈추는 컨베이어 시스템이 아닌 공정별 체계로, 조합원 대다수가 일손을 놓지 않으면 한꺼번에 모든 생산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노란봉투법(노동법) 통과 등 노동 친화 정책과 함께 산업계의 파업이 확산할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근무시간 단축,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년연장 등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정책이 그간 노동계 숙원사업이었단 점에서 노조 파업도 힘을 얻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날 취임 후 두 번째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을 만나 노봉법의 당위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노총의 핵심 요구사항인 ‘노정교섭’에도 긍정적 견해를 밝히는 등 노조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김영훈 장관은 한국노총을 만난 자리서 ‘조지아주 사태’를 언급하며 “노란봉투법은 원·하청 상생법이고 노사교섭 촉진법이며 중대재해 예방법이다. (조지아에) 구금된 하청노동자들이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악법이 아니라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사실을 같이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방문한 민주노총과는 ‘노정교섭’ 요구에 긍정적 견해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정교섭은 노조가 정부를 상대로 근로조건, 노동정책, 고용 문제 등 노동 관련 사안에 대해 직접 교섭하는 것이다. 노사정이 한 자리에 모이는 사회적 대화와 별개로 정부가 직접 노동계 요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노조의 협공 속 기업 경영환경은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노봉법은 ‘사용자’ 범위를 넓혀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노조나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사용자 범위가 모호해 법적 분쟁 발생 여지가 큰 데다, 대체근로 허용 등 사용자의 방어권이 전무한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한편 보수성향 변호사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전날 여러 중소기업을 대리해 헌법재판소에 노봉법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노봉법 시행 시 원청 기업은 법적 리스크를 피하려고 사업 축소, 해외 이전, 자동화 등을 택할 것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 협력업체 연쇄 도산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이들은 “노봉법이 사용자 범위를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확대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하고 형사처벌 위험을 증가시켜 경제활동의 자유, 계약 및 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봉쇄하고 이미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도 소급해 재산권을 박탈하고 재산청구권을 정면으로 부정했다”며 “동일한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노동조합에만 특혜를 부여한 평등권 침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