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장 사용연한 지난 배터리서 불꽃 … 작업자 실수 가능성도ESS 화재 위험성 다시 부각, 재생에너지 수용성에 악재 우려정부 2035년 재생에너지 160GW 목표 … 안전 대책 시급
  • ▲ 27일 오전 대전 유성구에 있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불이 나 초진이 완료된 모습.ⓒ뉴시스
    ▲ 27일 오전 대전 유성구에 있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불이 나 초진이 완료된 모습.ⓒ뉴시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에서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권장 사용연한을 넘긴 노후 배터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고는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재생에너지·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 전략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밤 국정자원 대전 본원 전산실에서 불이 난 무정전 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는 2014년 8월 설치돼 이미 권장 사용연한(약 10년)을 1년 이상 초과한 상태다. 해당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에서 생산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다른 업체가 UPS를 제작해 납품한 것으로 전해졌다.

    UPS는 정전이나 전원 이상이 발생했을 때 일정 시간 전력을 공급하는 핵심 설비다. 사용연한이 지난 배터리는 즉각 결함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화재나 고장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다만 국정자원이 지난 6월 실시한 정기 점검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당시에는 작업자 13명이 5층 전산실의 배터리를 지하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소방당국은 ‘전원이 차단된’ 배터리 1개에서 불꽃이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UPS는 직류 전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운반·취급 전 반드시 전원을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 전원이 연결된 상태에서 케이블을 분리할 경우 순간 전압이 치솟아 화재나 감전 위험이 커진다. 이에 일각에서는 전원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소방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경찰과 함께 합동 감식을 예고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조사를 시작하지 않았다”며 “전원이 차단된 상태였는지 여부를 포함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확인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 화재는 진화까지 22시간이 소요됐다. 소방당국은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를 완전히 진화할 수 있는 방법은 대량의 물을 뿌리거나 수조에 담가 냉각시키는 것뿐”이라며 진화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번 사고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고, 간헐성을 보완할 수단으로 초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8년까지 23GW 규모 장주기 ESS가 필요하다고 보고, 2029년까지 2.22GW 규모를 구축할 계획이다. 또한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수립하면서 2030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100GW, 2035년 최소 130~160GW 이상으로 목표치를 상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고려대 연구진은 2036년까지 전력 부문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4.4% 감축하려면 ESS 용량을 2023년 기준 4.4GW의 6배 이상인 30GW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지난해 COP29에서 전 세계 ESS 용량을 2030년까지 2022년 대비 6배(250GW→1500GW)로 확대하는 ‘에너지 저장 및 전력망 서약’에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이런 정책 추진에 주민 수용성 저하라는 새로운 장벽을 세울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미 태양광·풍력 발전은 반사광, 저주파 소음, 경관 훼손 등으로 지역사회 반발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위험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ESS 설치를 둘러싼 사회적 저항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3년 6월까지 국내 ESS 화재는 총 55건이 발생했다. 전체 배터리 화재도 2020년 292건에서 2024년 543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296건이 보고됐다.

    정부와 소방당국은 합동 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한 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그러나 ESS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경우,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 자체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