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특허 만료·범용 기술, 규제 실익 없어"기업 82.4% 해제 찬성 …"수출 지연 손실 연 1000억"국가핵심기술 지정 과정에서 투명성 부족, 규제포획 논란 있어 메디톡스·휴젤 등 "해지 반대 … 보호 필요"
  • ▲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조희연 기자
    ▲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조희연 기자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규제를 받고 있는 보툴리눔 톡신의 경쟁력 확대와 해외 진출 활성화를 위해 지정을 해제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승현 건국대 의대 교수는 29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보툴리눔 톡신 기술은 이미 외국에서 먼저 시작됐고 관련 특허가 만료돼 누구나 쉽게 균주를 들여와 사업화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 고유의 독보적인 기술이 아닌데 해외 유출을 걱정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국가핵심기술이란 국가 안보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희소성과 전략성이 높은 기술을 대상으로 한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수출 시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이 국가핵심기술에 속한다.

    보툴리눔 톡신은 지난 2010년 '보툴리눔 톡신 생산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 이후 2016년 '보툴리눔 톡신 균주'도 국가핵심기술로 추가 지정됐다. 

    이 교수는 보툴리눔 톡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것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개발도상국에서도 보툴리눔 균주를 상업화해 시판하고 있으며 기술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다는 것이다. 또 국내 대다수 기업이 사용하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 홀 균주'는 특정 기업이 독점하지 않고 특허권 제약 없이 여러 기업이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만약 이것이 보호받아야 할 독점적 기술이라면 한 회사 외에는 아무도 쓸 수 없어야 상식인데, 모두가 쓰는 기술을 핵심 기술로 지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보툴리눔 톡신 공정 기술 역시 난도가 높지 않아 신생 벤처가 기존 업체보다 더 효율적인 제제를 개발할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국방부가 '생물학 전공자라면 충분히 톡신 정제가 가능해 바이오 테러에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할 만큼 접근성이 높다"고 밝혔다.

    현재 보툴리눔 톡신은 대외무역법, 생화학무기법, 감염병예방법, 약사법, 테러방지법 등 최소 7개 법령과 5개 부처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수출 승인이나 연구개발 과정에서 불필요한 절차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이 교수는 "중소·벤처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인한 연간 수출 지연 손실이 900억~1000억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이상수 한국시민교육연합 상임대표는 보툴리눔 톡신에 대한 국가핵심기술 지정이 투명성 부족과 규제 포획 논란이 있다고 밝혔다. 지정 및 심의 절차에서 사전 공고와 업계 의견수렴이 미흡했고, 회의록이나 위원회 구성 역시 비공개로 운영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부 위원이 장기간 동일 직책을 유지하면서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고 지적했다.

    시민교육연합에 따르면 국내 주요 톡신 기업 1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4곳(82.4%)이 보툴리눔 톡신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에 찬성했다. 메디톡스, 뉴메코, 휴젤은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에 반대 입장을 표했다.

    ◆메디톡스, 휴젤이 '국가핵심기술' 해제 반대하는 이유는
  • ▲ 메디톡스(왼쪽) 관계자와 휴젤 관계자가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조희연 기자
    ▲ 메디톡스(왼쪽) 관계자와 휴젤 관계자가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조희연 기자
    토론회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메디톡스와 휴젤 관계자는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 반대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메디톡스 대리인(박정수 변호사)은 "생산 기술은 면밀한 심사를 거쳐 오랫동안 국가핵심기술로 유지돼왔고, 최근 소송과 수사에서도 기술 침탈 사례가 확인됐다"며 "해제 논의가 진행 중인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툴리눔 톡신은 전 세계 소수의 기업과 국가만 상업화해 판매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로, 국가 안보와 경제적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며 "해제는 곧 기술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휴젤 역시 국가핵심기술 지정이 수출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기술 유출을 방어하는 장치라고 주장했다. 휴젤 대리인은 "지난해 북한 해커의 침탈 시도에서 국가핵심기술 보호체계 덕분에 방어할 수 있었다"며 "무분별한 유출이 발생하면 톡신 시장도 디스플레이처럼 보편화돼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휴젤은 당초 중립적이었지만 해킹 위협을 겪으며 지정 유지 필요성에 공감하게 됐다"며 "세계 시장 진입 경쟁이 치열한 만큼 국가 차원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과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늘 논의가 단순한 제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법·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