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1.4조 재산분할' 항고심 파기환송"盧비자금 공동재산 아냐" … 불법원인급여 명시지배구조 개편 힘 받나 … AI·반도체 사업재편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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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노소영 아트나비센터 관장과의 이혼 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데일리DB
대법원이 이른바 '세기의 이혼'으로 불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상고심에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2심에서 인정된 1조3808억원 규모의 재산분할 판결이 재심리 대상이 되면서 ‘김옥숙 메모’의 신빙성과 분할 규모의 적정성 논란이 다시 재판대에 오를 전망이다.16일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은 이혼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고 선고했다. 최 회장이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한 지 8년 3개월 만, 지난해 7월 대법원으로 사건이 넘어온 지 1년 3개월 만이다.핵심 쟁점은 재산분할 규모와 위자료였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는 ‘특유재산’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노 관장이 혼인 기간 동안 SK의 기업가치 상승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인정할지가 관건이었다. 특히 2심에서 재산분할액이 급격히 늘어난 배경에는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김옥숙 메모’가 있었다. 이 문건은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직 중 수령한 뇌물성 자금 일부를 최 회장의 부친 고(故) 최종현 회장 측에 지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대법원은 이른바 ‘김옥숙 메모’를 근거로 재산분할 비율을 높인 2심 판단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대법원은 “노태우의 금전 지원은 대통령 재직 중 받은 뇌물로,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이어 “불법의 원인으로 급여된 재산은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민법 제746조(불법원인급여) 조항을 명시하며 “노 관장이 그 자금을 재산분할 기여로 주장하더라도 불법성은 절연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비자금은 재산분할의 근거로 삼을 수 없으며, 이를 기여로 인정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했다고 봤다.또한 대법원은 최 회장이 혼인 파탄 전 기업 경영과 관련해 증여·기부·급여 반납 등으로 처분한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포함시킨 원심의 판단도 잘못이라고 봤다. 최 회장은 2014년부터 2018년 사이에 친인척에게 SK㈜ 주식 약 329만 주를 증여하고, 최재원 부회장에게 증여세를 대납했으며, 재단 기부와 급여 반납 등으로 약 900억원을 처분했다.대법원은 이에 대해 “이 같은 처분은 SK그룹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기업 운영을 위한 경제활동의 일환으로 볼 여지가 크다”며 “혼인 파탄 전 경영활동과 관련된 처분은 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혼인관계가 파탄된 이후에도 부부공동생활과 관련된 재산 처분이라면 분할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한 것이다.이번 대법원의 결정으로 2심 판결은 효력을 잃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환송심에서는 2심의 법리 오해가 지적된 재산분할액 산정 기준과 ‘김옥순 메모’의 증거 능력이 다시 검토될 예정이다. 환송심 결과에 불복하면 양측이 다시 상고할 수 있지만, 대법원이 이미 판단 방향을 제시한 만큼 사실상 최종 결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SK그룹은 6공 시절 ‘비자금 성장’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항소심은 노 전 대통령이 1991년경 최종현 회장에게 약 300억원을 지원했다고 적시하며 이를 SK 성장의 기반으로 평가했지만, 대법원은 “그 출처가 불법 자금으로 확인되는 이상 재산분할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실제 SK그룹은 과거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당시 정치권의 특혜 논란이 불거지자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한 바 있다. “특혜는 없었고, 오히려 손해를 봤다”는 게 SK 측의 일관된 입장이다. 최 회장은 대법원 상고 과정에서도 “사실이 아닌 주장으로 그룹 명예가 훼손됐다”며 “법원이 바로잡아주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재계에서는 과도한 분할액과 불투명한 증거를 바로잡을 기회가 열린 만큼, SK그룹이 다시 본업인 반도체와 에너지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앞서 2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1조원이 넘는 분할금을 마련하기 위해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17.7%) 일부를 매각해야 할 것으로 예상됐다.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SK㈜ 지분율은 25.57%이지만 지분 매각 시 경영권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게다가 지배력에도 균열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SK는 SK텔레콤(30.57%), SK이노베이션(52.09%), SK스퀘어(32.03%), SKC(40.6%) 등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 회장의 지분율은 SK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축이다.지배구조가 안정되면서 그룹의 경영 연속성과 투자 안정성도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 회장은 8년 넘게 이어진 소송 과정에서 출석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나 출석하는 등 법적 절차에 성실히 임해왔다. 그러면서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경제계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고, SK그룹의 리밸런싱(사업구조 재편) 작업도 진두지휘해왔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증으로 인한 반도체 전쟁에서 SK하이닉스의 투자 등 굵직한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향후 재산분할액이 줄어들면서 SK그룹 전반의 투자심리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배구조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SK㈜와 주요 계열사의 밸류에이션 회복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향후 투자 심리 전반의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재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비공식 자료나 불법자금이 재산분할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사례”라며 “법리 재검토로 SK그룹이 불확실성을 덜고 반도체·에너지 등 핵심 사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