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호, 회장 보좌역 … 재무·기획통 박학규 전면에사업지원 TF→室 격상, 그룹의 '컨트롤타워'로 전략·진단·인사 기능 단일화해 의사결정 속도↑삼성, "미래전략실부활 아냐" 선 그어
  •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GPU 지포스 출시 25주년 행사에서 단상에 올라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GPU 지포스 출시 25주년 행사에서 단상에 올라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사업지원 조직을 전면 재편하면서 명실상부 '삼성의 2인자'였던 정현호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가 8년간 이끌어온 사업지원TF는 상설 조직인 ‘사업지원실’로 격상됐고, 실무 지휘권은 박학규 사장이 넘겨받는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전략·진단·인사 기능을 단일 체계로 묶어 의사결정 속도와 내부 경영진단 역량을 강화하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맞춰 인적 쇄신을 단행, 그동안의 위기 관리 모드에서 이제 '혁신의 시대'로 나아가겠다는 이재용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묻어난다. '이재용 체제 2.0'이라 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7일 단행한 인사 내용을 보면,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이 회장 보좌역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5명 규모의 위촉 업무 변경이 이뤄졌다. 

    정 부회장의 후임은 사업지원TF 박학규 사장이 맡는다. 삼성전자 경영진단실장 최윤호 사장은 사업지원실 전략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사업지원TF 주창훈 부사장은 사업지원실 경영진단팀장으로, 사업지원TF 문희동 부사장은 사업지원실 피플(People)팀장으로 각각 이동한다.

    사업지원TF는 이번 조정을 통해 임시 조직에서 정식 조직인 사업지원실로 격상됐다. 새롭게 구성된 사업지원실은 전략·경영진단·피플 등 3개 팀으로 재편되며, 그룹 내 공통 기능을 단일 체계에서 다루는 구조가 마련됐다. 기존에 TF가 수행하던 전략 검토, 조직 진단, 인사 조정 기능이 상설 조직으로 흡수되면서 책임과 역할 구분이 명확해진 것이 특징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정현호 부회장의 퇴진이다. 회장 보좌역은 공식 의사결정 라인에서 벗어난 자리여서 정 부회장이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재계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1983년 삼성전자 국제금융과로 입사한 정 부회장은 입사한 이후 전략기획실, 무선사업부 등을 거쳤으며 2017년 사업지원 TF출범부터 조직을 이끌어왔다. 이재용 회장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 온 인물로, 사업지원TF를 통해 계열사 간 조율과 전략 기능을 수행했다. 그의 용퇴는 삼성전자가 최근 실적이 개선되는 등 사업이 정상화하는 시점을 맞아 후진 양성을 위해 결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신임 사업지원실장인 박 사장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좋아했던 박 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문과생이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S/W 관련 학과였던 KAIST(한국과학기술원) 경영과학과 대학원으로의 진학을 선택했다.

    1988년 입사한 그는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DS부문과 경영지원실장 등 재무 및 관리 분야의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친 재무통으로 평가받는다. 작년 말부터는 사업지원TF장을 맡아 반도체를 포함한 주요 사업의 지원 업무 전반을 총괄해왔다. 삼성 안팎에서는 오랫동안 ‘정현호 이후’를 이을 유력 인물로 분류돼왔다. 


  • ▲ 왼쪽부터 삼성전자 정현호 회장 보좌역(부회장), 박학규 사업지원실장 사장, 최윤호 사업지원실 전략팀장 사장.
    ▲ 왼쪽부터 삼성전자 정현호 회장 보좌역(부회장), 박학규 사업지원실장 사장, 최윤호 사업지원실 전략팀장 사장.
    사업지원 조직의 상설화는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진 최근 경영환경과 맞물려 있다. 메모리 호황과 인공지능(AI) 전환이라는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그 어느 때보다 빠른 판단과 대응이 필요하다는 위기 의식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와 전자 계열사 간 전략 조율과 공통 기능을 수행해온 사업지원TF는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신설된 조직이다. 그간 계열사의 중장기 전략, 인수합병(M&A), 투자 검토 등 핵심 의사결정 지원을 맡아왔다. 그러나 의사결정 과정이 계열사 단위로 분산되는 경우가 많았고, 대규모 투자나 신사업 검토에서도 기준과 절차가 일관되지 못하다는 한계가 지적돼왔다. 

    이번 재편으로 사업지원 기능의 체계가 명확해지면서 사업지원실의 역할은 향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전략·재무·진단·인사 기능을 그룹 차원에서 일원화하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일 수 있고 책임 소재도 명확해진다. 게다가 대규모 투자와 신사업 검토에서 기준과 절차가 일관되면 재무 건전성과 투자 효율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조직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데도 유리하다. 

    다만 삼성전자는 과거의 구조조정본부나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 개념이 부활하는 것과는 거리를 뒀다. 과거 미전실과 달리, 법무와 홍보, 대관 등의 조직이 별도로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업지원TF가 오랜 기간 TF로 머물러 있던 만큼 이제는 TF를 떼고 조직을 안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예전부터 이 같은 방안을 검토해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