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농·축협 합병·지원 제한 동시 추진…연체율·고정이하여신 급증에 구조조정 가속임원 절반 교체·수의계약 금지·108조원 포용금융…고강도 자구안 꺼낸 농협쇄신 드라이브 속 지도부 수사·재판…연말 인사 앞두고 레임덕·줄서기 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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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오른쪽)ⓒ뉴데일리
농협중앙회가 부실 농·축협 합병과 임원진 대규모 교체, 108조원 규모 포용금융 공급을 묶은 고강도 쇄신안을 내놓고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경찰 압수수색과 억대 금품수수 의혹, 국정감사 집중 질타 속에서 정면 돌파 의지를 밝힌 뒤 조직 혁신 패키지를 꺼낸 것이다.다만 회장 본인이 수사 대상에 올라 있고 혁신 태스크포스(TF)를 이끄는 부회장도 형사 재판을 받고 있어 “정작 쇄신을 주도하는 지도부의 도덕성과 통제력이 검증 대상”이라는 비판과 함께 연말 인사를 둘러싼 레임덕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25일 상호금융 및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최근 경영 자립도가 낮은 지역 농·축협을 대상으로 합병을 권고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중앙회 차원의 각종 지원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조합원 수, 배당 여력, 사업 규모 등 지표로 일정 기준 미달 조합을 추린 뒤 자립 경영 가능성을 따져보고 자립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곳에는 합병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합병 등기 시 지급하는 기본 지원금을 늘리고, 합병 손실 보전 기간을 5년에서 7년으로 늘리는 등 인센티브도 확대한다.이 같은 구조조정 드라이브의 배경에는 상호금융 부문의 건전성 악화가 자리한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 농협중앙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1110개 단위조합 가운데 적자를 내는 조합은 2021년 3곳에서 올해 연말 손익 추정 기준 76곳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상호금융 대출잔액은 311조9546억원에서 올해 8월 367조2292억원으로 증가하는 동안, 연체율은 0.88%에서 5.07%까지 급등했다. 회수가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고정이하여신’(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잔액도 4조1717억원에서 21조21억원 수준으로 약 5배 불어났다.단위조합의 비위와 선거 부정도 쇄신 압박을 키웠다. 강원 강릉과 전북 전주 등 일부 지역 농협에서는 비상임이사 선출과 조합장 선거 과정에서 금품 제공 의혹이 불거져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농협은 사건·사고가 발생한 농·축협에 대해 수사·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자금 지원을 우선 중단하는 ‘선(先) 지원제한’ 원칙을 도입하고, 오는 2027년 제4회 전국 동시조합장선거부터 선거법 위반자에게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할 계획이다. 부정선거 신고센터 운영과 선거 전담조직 확대, 비용집행 가이드라인 신설 등을 통해 선심성 예산 집행과 금품·향응 제공 관행을 차단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지도부 인사와 지배구조 개편 수위도 높다. 농협은 이달 12일 ‘범농협 혁신 전담반(TF)’을 출범시키고 중앙회와 금융·경제 계열사의 대표, 상근 임원, 집행간부 중 절반 이상을 교체하는 인적 쇄신을 예고했다. 계열사 대표의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대표이사 문책을 명시한 책무 구조도를 도입하고, 수의계약은 원칙적으로 금지해 입찰·경쟁 절차를 강화하기로 했다. 성과가 미흡한 임원의 보수를 감액하고,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손실을 야기한 경우 성과급을 환수하는 클로백 제도를 전 계열사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강호동 회장의 ‘자정’ 메시지는 이 같은 고강도 패키지와 맞물려 있다. 강 회장은 최근 억대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해 경찰의 중앙회장실 압수수색과 출국금지 조치를 받았으며, 국정감사에서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스스로 쇄신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밝힌 바 있다. 이후 중앙회가 조직 쇄신과 경영 투명성 강화 방안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회장 본인이 정면 대응을 택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그러나 강 회장 자신이 그간 제왕적 인사권 행사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은 개혁 드라이브의 설득력을 약화시키는 대목이다.상무급 임원 상당수가 회장 선거 캠프 출신으로 채워졌다는 지적과 농협금융지주 비상임이사 인선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확정받은 인사가 선임되면서 ‘법망을 피한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강 회장 취임 직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도 중앙회가 자회사·손자회사 인선 시스템을 사실상 무시하고 개입했다는 논란이 불거져 금융감독원 검사를 자초했다는 평가도 남아 있다.지도부의 사법 리스크와 쇄신안이 동시에 진행되는 점도 논쟁거리다. 강 회장은 현재 억대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고, 농협은행 부당대출 사건과 관련해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지준섭 부회장은 중앙회 부회장직과 함께 혁신 TF 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수사·재판 대상이 된 회장과 부회장이 조직 혁신의 전면에 서 있는 구조가 “개혁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농협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현 집행부 핵심 라인이 차기 회장 선출 시점에 대거 교체될 것이란 인식이 퍼져 있어, 이번 연말 인사를 사실상 ‘막차’로 보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지금 자리를 지키려는 움직임과 동시에 차기 회장·조합장 후보군 주변으로 일찌감치 줄을 서려는 기류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또 다른 관계자는 “혁신안이 ‘임기와 상관없이 성과가 부족하면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면서 인사권을 쥔 현 회장 측과 차기 체제를 겨냥한 그룹 간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며 “연말 인사를 앞두고 어느 라인에 서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눈치를 보는 기류가 상당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