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무장관 "한일 투자금 7500억달러 원전 건설에 우선 사용"국내 원전주 일제히 상승 … 세계 주요국도 신규 원전 건설 발표한국만 거꾸로 … 李정부 출범 후 신규 원전 사실상 '올스톱'김성환 기후장관 "올해 안에 신규 원전 2기 건설 문제 판단"
  •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주요 정책과 현안을 설명하고 있다. 2025.12.02. ⓒ뉴시스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주요 정책과 현안을 설명하고 있다. 2025.12.02. ⓒ뉴시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이 투자하기로 한 7500억달러를 가지고 원자력발전소부터 짓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국내 원전 관련주들이 일제히 상승하며 들썩였다.

    반면 이재명 정부의 원전 정책은 갈팔질팡하며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최근 신규 대형 원전 2기 건설 계획에 대해 "연내 공론화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2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확정됐는데도 백지화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원전 건설은 세계적인 추세인데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2일(현지 시간) 한국 2000억달러, 일본 5500억달러의 대미 투자금 사용처에 대해 "미국 내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우선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에 '원자력 무기고(nuclear arsenal of generation of power)'라 할 만한 전력원을 갖춰야 한다"며 "그래서 일본과 한국이 자금을 대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원전) 시설을 지을 것"이라고 했다. 

    러트닉 장관이 한일 대미 투자금의 우선적인 사용처로 원전을 특정해 지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의 이런 방침에 원전 관련주는 강세를 보였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원전 대장주인 두산에너빌리티가 이날 4.53% 급등한 7만8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 처리 기술을 보유한 비츠로넥스텍이 같은날 20.66% 상승했고, 원자력 기기 제작사 일진파워(9.27%)와 원전 핵심 계측기를 국내에서 독점 공급하고 있는 우진(8.84%) 등 관련주들이 줄줄이 상승했다.

    미국은 현재 원전 94기를 가동 중인데, 1979년 발생한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30년 넘게 자국 내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해 추가된 대형 원전이 3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AI 산업 급성장으로 전력 수급계획에 비상이 걸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하면서 2030년까지 신규 대형 원자로 10기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2050년까지 현재 100GW 수준인 원전 용량을 4배인 400GW까지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은 또 기존 원전의 수명을 최대 8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날씨와 계절 등 기후 변화에 민감한 재생에너지와 달리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원전을 AI 시대에 대응할 최적의 전력공급원으로 판단한 것이다.

    미국 외에도 세계 주요 국가들도 폭증하는 AI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 건설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민간 원자력 로드맵 2050'을 발표하며 2050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24GW까지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중국은 현재 5% 수준인 원전 발전 비중을 2035년까지 신규 원자로 150개를 건설해 10%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도 원전 운전기한인 60년을 실질적으로 연장하는 것을 허용하는 'GX 탈탄소 전원법'을 제정하며 '원전 제로'에서 '원전 허용'으로 전환했다. 

    유럽 탈원전 1호 국가인 이탈리아는 지난해 7월 탈원전 폐기를 선언하고, 지난 3월 원자력 기술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을 승인했으며, 지난 2017년 국민투표를 통해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한 스위스도 지난해 8월 탈원전 폐기를 발표했다. 

    1985년부터 탈원전 정책을 도입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공급을 고수해온 대표적인 친환경 국가인 덴마크도 최근 40년만에 차세대 원자력 발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2003년 탈원전법을 만들었던 벨기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최신 원전 2기의 수명을 10년 연장했다. 탈원전 국가인 스웨덴은 지난 5월 신규 원전 4기와 소형 모듈 원자로(SMR) 건설을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2045년까지 원전 설비를 최대 10기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반면 한국은 이런 세계적인 흐름과는 정반대다.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사실상 멈춰섰고, 국가 에너지 정책은 재생에너지 전환에 초점이 맞춰졌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출입 기자 간담회를 열고 "조만간 12차 전기본 킥오프 회의를 마친 뒤 신규 대형 원전 2기 건설 문제를 어떻게 판단할지 프로세스를 결정하겠다"며 "프로세스는 올해를 넘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계획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처음에는 경제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공부해보니 세계적으로 신시장인 측면이 있다"며 "설계·허가·설치 등을 거쳐 2035년께 발전을 해보겠다는 것이 현재 계획"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한 대형 원전 건설은 보류하더니 기술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SMR로 탈원전 비판을 면해보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다만, 김 장관은 표면적으로 '원전 30%, 재생에너지 30%'라는 에너지믹스 구상을 밝히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AI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추가 원전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발전 단가가 비싸고 기후 변화에 취약 재생에너지 위주로 전력 수급 계획을 세우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 할 것"이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국가 에너지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반대로 뒤집어져 혼란스럽다"며 "한국 원전 기술은 세계적으로 우수성이 입증이 됐는데, 정치 논리에 매몰돼 '탈원전 시즌2'가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