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법안 서명 … 中 CRO-CDMO-유전체기업 등 제재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에스티팜 등 K-바이오 반사이익 기대'세계의 약국' 인도-'美 생산시설 확보' 일본 등과 中 공백 두고 경쟁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속 … 데이터 관리-보안 강화 및 정부 지원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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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오 이미지. ⓒ연합뉴스
중국 바이오기업과 거래를 금지하는 미국의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이 하원과 상원을 일사천리로 통과했다.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오는 가운데 '세계의 약국'으로 불리는 인도나 미국 현지 생산시설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과의 경쟁이 한층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게다가 해당 법안이 단순한 '탈중국 선언'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시스템 재정비까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22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생물보안법이 포함된 국방수권법안에 서명했다. 해당 법안은 앞선 10일 찬성 312, 반대 112로 하원을 통과했다. 이어 상원에서도 찬성 77, 반대 20으로 문턱을 넘었다.생물보안법은 미국 정부가 안보와 관련해 우려되는 생명공학기업과 계약하거나 보조금 등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은 미·중 바이오 패권 경쟁과 연관돼 있다.대상에는 중국 임상시험위탁기관(CRO), 위탁생산개발(CDMO) 기업, 유전체기업 등이 대거 포함된다. 구체적으로 CDMO기업인 우시앱텍과 우시바이오로직스, 유전체기업인 BGI지노믹스 그리고 BGI에서 분사한 MGI테크 등이 해당한다.중국 기업이 타깃인 이유는 중국 바이오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데이터 수집 요구와 중국인민군과 중국기업간 협업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행위를 '간첩행위(espionage)'로 간주하고 있다.생물보안법은 지난해 12월 상원에서 표결이 불발됐다가 1년 만에 대통령 서명을 받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관세 정책 등 미·중간 무역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 내 생물보안법 통과에 대한 의지는 이전보다 커진 영향이라는 해석이다. 이 법안은 공포 절차를 거쳐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당장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의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중국 바이오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축소하면서 국내 CDMO 기업들이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또 바이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우시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CDMO 시장에서 약 10%의 점유율을 보유한 업체로, 국내 대표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3·4위를 다투는 곳으로 꼽힌다.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이날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미국 메릴랜드주 락빌(Rockville)에 위치한 휴먼지놈사이언스(Human Genome Sciences, HGS)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 인수계약을 체결하면서 미국 내 첫 생산거점을 확보한 만큼 중국 대형 CDMO로부터 이탈한 고객들을 유입할 가능성을 높였다.상대적으로 생산 규모가 작은 에스티팜이나 이제 막 CDMO 사업 진출을 선언한 셀트리온 역시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미국 중소형 바이오기업의 약 80%가 중국 CDMO와 계약을 맺고 있는 만큼 반사이익 체감 측면에서는 오히려 유리하다는 평가도 있다.글로벌 CDMO 생태계 재편에 따른 경쟁 심화 우려도 있다. 중국이라는 대형 경쟁자의 영향력은 축소되지만, 그 틈을 노린 일본과 인도 등 유력 주자들의 공세가 한층 매서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무조건 수혜를 입는다기보다 새로운 경쟁 환경에 직면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에도 기회지만, 일본·인도 등에게도 기회"라며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
- ▲ 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이 배양기를 점검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한국바이오협회 보고서 '인도의 의약품 CDMO 투자 및 산업동향'을 보면 현재 중국 CDMO산업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8%이며 인도가 2.7%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보고서는 생물보안법이 통과될 경우 중국 제조 점유율을 인도가 차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같은 전망의 배경에는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이 있다. 인도 CDMO는 세계적 수준의 시설과 미국이나 유럽 대비 35~40% 낮은 비용상 이점을 갖고 있다. 인도는 현재 제네릭 의약품의 40%를 미국에 공급하고 있으며 CDMO, 합성의약품산업에서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보고서는 인도 CDMO시장이 2023년 196억달러(약 27조원)에서 2028년 446억달러(약 61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리서치회사 '모르도르 인텔리전스' 조사에서 2023년 인도 CDMO업계는 156억달러(약 21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연간 매출성장률은 향후 5년간 11%를 웃돌 전망이다.CDMO 경쟁력에 중요한 원료의약품(API) 경쟁력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API는 핵심 약효 성분으로, 원제의약품 품질을 좌우한다. 거래량 기준 인도의 세계 API 시장점유율은 20%로, 중국(44%)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API 제조설비는 미국 다음으로 인도에 가장 많이 집중됐다. 한국에서도 2023년 연간 API 등록건수 488건 가운데 국산은 44건(9%)이지만 인도산은 227건(46.5%), 중국산은 110건(22.5%)을 차지했다.뿐만 아니라 인도는 2월 11개 위탁연구개발생산(CRDMO)기업이 참여하는 산업 단체인 혁신제약서비스기구(IPSO)를 출범시켰다. CRDMO는 바이오의약품 CRO와 CDMO 분야를 비롯해 약물 발굴, 연구, 제조까지 전과정을 한 번에 진행하는 사업이다. IPSO는 인도의 바이오·제약 산업 발전을 목표로 제약 및 의료 혁신 육성에 전념할 방침이다.바이오업체 A사 관계자는 "인도는 내수로도 충분히 운영할 수 있는 기술과 규모를 갖추고 있다"며 "미국 현지 공장 인수, 정부 지원에 힘입어 점차 점유율을 확대해 중국의 빈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일본의 경우 우수한 품질 만큼 높은 가격과 부족한 현지 대형시설이 약점으로 꼽혔지만, 최근 적극적인 미국 생산시설 구축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후지필름이 9월 노스캐롤라이나주에 북미 최대 규모의 세포 배양 바이오의약품 제조시설을 준공한 것이 대표적이다.미국 현지 시설은 물론, 규모 측면에서도 경쟁자들 못지않은 생산력 구축을 목표로 공격적 확장을 진행 중이다. 실제 약 4조5000억원을 투자한 노스캐롤라이나 공장의 생산능력을 연내 32만ℓ까지 확대하고, 2028년까지 항체의약품 생산능력을 현재의 5배 수준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고토 테이이치 후지필름홀딩스 대표는 10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바이오재팬 2025' 개막식 기조강연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생산역량을 바탕으로 일본 바이오산업의 선순환 생태계를 완성하겠다"면서 "후지필름은 글로벌 기업의 CDMO 사업을 인수해 글로벌 생산능력을 확보했으며 2028년까지 75만ℓ의 생산용량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B바이오 관계자는 "생물보안법으로 인한 중국 업체들의 피해가 국내 기업들의 수혜로 연결될 것이라는 분석 자체는 충분히 합리적"이라면서도 "다만 중국기업들을 대체할 사업영역이 방대한 만큼 유연한 대처가 이뤄지지 않으면 오히려 신규 경쟁자들에게 기회를 내어줄 수 있다는 경각심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간의 긴밀한 협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무엇보다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하며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글로벌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과 인프라 투자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또한 정부는 국산·비BCC(중국계 바이오기업) 장비와 시약의 대체 생태계를 조성하고 인증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 연방 조달·보조금 규정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외 조달 대응센터를 통해 법제·제약·기술 가이드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바이오경제연구센터 관계자는 "생물보안법은 단순한 무역제재가 아니라 바이오산업을 안보산업 범주로 편입시키는 조치"라며 "한국 기업에도 데이터 관리·보안 측면의 강화가 요구될 것"이라고 분석했다.그러면서 "미국이 공급망 신뢰성과 정보보호를 기준으로 산업 파트너를 재편하고 있는 만큼 한국 기업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규제 대응력과 생산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국내 제약업계가 의약품의 품질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자체 노력과 더불어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에 대한 약가 우대 확대와 제조 혁신이나 연구개발 지원에 대한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