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한·미 MOU에 없는 알래스카 개발 압박 수위 높여韓 정부, 대미 투자 200억 달러 속도조절 속 트럼프 압박 변수로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패권 확장과 한국의 환율 방어가 충돌 양상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에 '알래스카 가스관'이란 청구서를 던졌다. 원화 가치 급락으로 당초 약속한 대미 투자 집행 연기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대미 통상 압박과 외환 시장 안정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복귀 1주년인 지난 20일(현지시각) 백악관 브리핑에서 "아시아로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에 착수했다"며 "한국, 일본과 (무역) 합의를 타결하면서 우리는 전례 없는 수준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은 대미 투자액 3500억 달러 중 조선에 1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지만 나머지 2000억 달러 사용처는 지정하지 않았다. 이에 이번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대미 투자액을 '알래스카 가스전' 프로젝트라는 특정 사업에 투입하라는 노골적인 '청구서'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내세워 지역 민심을 결속하려는 정치적 포석인 셈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알래스카 가스전'에 대해 지속적인 참여를 종용해온 미국이 한국의 참여를 기정사실화 하며 압박 수위를 재차 높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로선 곤혹스런 상황이다. 트럼프 청구서가 날아드는 현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까지 오르고, 체감 환율은 이미 1500원대에 진입하는 등 고환율 현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원화 약세 국면에서 대규모 대미 투자에 나서는 것은 자칫 환율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정부는 환율 불안에 달러 유출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입장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미 투자가 상반기에 시작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것 같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초기 자금 유출 규모는 합의된 연간 한도인 200억 달러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며 "현재 외환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적어도 올해 안에는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블룸버그도 20일 한국 정부가 원화 약세로 2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집행 시점을 늦추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외환시장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투자는 미뤄야 할 것"이라며 현재의 불안정한 한국의 외환시장 여건을 지적했다. 다만 정부가 구체적인 환율 목표 수준을 정해두고 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실제 지난해 한·미가 체결한 대미 투자 관련 양해각서(MOU)에는 외환시장 불안 등이 우려되는 경우, 납입 시기나 규모 조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미국도 한국의 투자 여력 약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주 "원화 약세는 한국의 강한 경제 기초체력과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의 이례적인 '구두 개입성' 메세지는 고환율이 고착화될 경우 한국의 대미 투자 이행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경계심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투자금 사용처로 알래스카 가스관을 공개적으로 지목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정작 투자 주체인 한국 측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채 미국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깜깜이 투자'로 내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패권 확장에 열을 올리면서 한국의 환율 방어와 충돌하는 양상이다. 미국 내 대규모 인프라 확충을 위해 한국의 막대한 달러 투입이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과 환율 불안으로 달러 유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한국 정부의 이해관계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투자 스케줄에 끌려가 한국의 외환 시장이 영향을 받을 경우, 그 피해는 우리 실물 경제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우리로서는 최대한 시간을 벌며 속도를 늦추는게 상책으로, 자칫하단 고환율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다만 높은 환율로 투자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할 수는 있더라도 환율로 투자 자체를 못하겠다는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관세 협상 과정에서 대미 투자 규모를 200억 달러 한도로 설정해 둔 상황에서 상호관세가 15%로 낮아졌더라도 관세 부담으로 대미 수출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며 "달러 공급은 감소하고 달러 수요는 늘어나 환율이 상승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도, 한미 통화스와프조차 체결하지 못한 것은 정부 역량의 문제로 현재 시장의 힘만으로는 환율이 안정화될 여지는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