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법 개정 '내역요구권' 신설…빌라·오피스텔 관리비 감시관리 사각지대 42만가구 편입…주차비 등 전가 '풍선효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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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리와 고물가의 긴 터널을 지나는 가계에 관리비가 새로운 복병으로 부상했다. 대출 이자와 장바구니 물가 부담에 이어 매달 날아오는 고지서는 계절성 지출을 넘어 임대료 못지않은 고정비로 고착화된 사실상의 '제2의 월세'가 됐다. 

    특히 아파트와 달리 감시 체계가 부재한 오피스텔과 빌라 등 비아파트 관리비는 임대료 인상을 우회하는 통로로 변질된 실정이다. 이에 정부가 '깜깜이 관리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칼을 빼 들었다. 다만 규제의 틈새를 노린 '항목 쪼개기'와 행정력의 한계라는 과제도 있어 과연 해결할 수 있을지 정책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도 높다.

    법무부는 지난 26일 오후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사전 브리핑을 통해 비아파트 관리비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아파트와 달리 오피스텔·연립·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는 관리비 부과 기준과 내역 공개 의무는 명확하지 않아 '깜깜이 관리비'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월24일 국무회의에서 관리비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 대통령은 "수도 요금이 100만원밖에 안 나오는데 임차인들에게 200만원을 받아 100만원만 내고 나머지는 자기가 가져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임대료를 제한하니 관리비를 올리는 경우로 내역을 숨기고 바가지를 씌우는 것은 사실상 범죄 행위에 가깝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통령이 질타를 쏟아낼 만큼 비아파트 관리비의 '깜깜이' 구조는 민생 물가를 위협하는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의 즉각적인 제도 개혁 지시에 따라 정부는 오피스텔과 상가 등 집합건물의 관리비 14개 항목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전격 발표했다.

    이번 조치로 전국 6100개 단지, 약 42만 가구가 새롭게 관리비 공개 대상에 포함된다.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단독·다가구 주택에서 임차인에게 부과되는 관리비는 자가 거주자보다 무려 10.7배나 높았다. 일부 집주인이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해 올리지 못한 임대료를 관리비 명목으로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행태를 조직적으로 단행해온 결과다.

    특히 상가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 마포구의 한 소상공인은 임대료 인상이 막히자 임대인이 관리비를 10만원에서 40만원으로 4배 올리는 전형적인 꼼수를 경험했다.

    이에 법무부는 거주자가 임대인 또는 관리인에게 관리비 내역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집합건물법을 각각 개정한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에는 이미 유사 규정이 마련돼 있으나 주택 임차인에게는 내역 요청 근거가 없었다는 점을 보완한 조치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단독·다가구주택 임대인의 관리비 내역 제공 의무를, 집합건물법에는 모든 집합건물 관리인의 제공 의무를 신설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부는 관리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관리인 선임 절차를 완화하고 지자체장에게 50가구 이상 건물에 대한 행정조사 권한도 부여하기로 했다. 기존 서면 통지 외에 전자적 방식을 도입해 의결 요건을 완화하고, 관리위원회 위원 자격을 소유자에서 임차인 등 실거주자까지 확대해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했다. 

    이번 대책으로 상가 임차인 역시 임대인에게 관리비 세부 내역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이 같은 갑질에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권이 생기게 됐다.

    문제는 정부가 항목을 세분화해 규제하더라도 이를 비껴가는 항목 쪼개기 풍선효과는 이미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관리비가 규제되면 비규제 항목인 주차비나 시설 이용료를 신설해 수익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은 차량 미소유자에게도 주차장 유지비를 부과하는 사례도 있다. 이에 실질적으로 이를 단속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관리비 내역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임대인이 항목 명칭을 바꿔 비용을 전가하는 편법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며 "임대인이 임의로 책정하기 쉬운 비규제 항목들에 대해서도 지역별·규모별 표준 단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보다 더 큰 사각지대는 50가구 미만 소규모 주택과 상가다. 정부는 지자체의 행정조사 권한을 50가구 이상으로 한정했다. 정작 바가지 관리비의 주 타깃이 되는 대학가 원룸촌이나 영세 상가 밀집 지역은 대다수가 50가구 미만이라 이번 대책의 강력한 감시망에서 비껴나 있다. 지자체 역시 수만 곳에 달하는 원룸 영수증을 일일이 대조할 인력이 전무해 사실상 사각지대로 방치될 우려가 크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적 계약 영역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관리비를 통한 우회 인상을 탈세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부당 징수 적발 시에는 징벌적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집행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만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