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량 화물 운송 차질에 변압기·전선 납기 부담 확대사우디·UAE 신규 발주는 속도 조절…기존 사업은 유지전쟁 장기화 땐 복원력 중심 재설계 수요 커질 듯
  • ▲ LS일렉트릭이 글로벌 시장에서 초고압 변압기 공급 계약을 잇따라 수주하고 있다. 자료사진 ⓒLS일렉트릭
    ▲ LS일렉트릭이 글로벌 시장에서 초고압 변압기 공급 계약을 잇따라 수주하고 있다. 자료사진 ⓒLS일렉트릭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이 한 달을 넘어서며 국내 전력기기 업계의 중동 사업도 '속도 지연' 리스크가 현실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지정학적 우려 수준에 머물렀던 공급망 문제가 최근 들어 해상 운송 지연과 현지 발주 보수화로 이어지면서 업계 긴장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사우디의 3월 비석유 PMI가 48.8로 떨어지며 2020년 이후 처음 위축 국면에 진입한 점은 이런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지 기업들의 신규 주문과 수출 주문이 동시에 둔화했고, 물류 병목이 발주 의사결정 자체를 늦추고 있다는 평가다.

    6일 국내 업체들이 가장 예민하게 보는 지점은 초중량 화물의 납기다. 변압기와 초고압 케이블은 일반 산업재와 달리 우회 운송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호르무즈 리스크가 길어질수록 선적 일정이 밀리고 설치·시운전 일정까지 연쇄적으로 늦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글로벌 제조업 전반에서도 3월 들어 운송 지연과 투입 원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났고, 이는 에너지 가격보다 공급망 왜곡이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현 시점에서 중동 사업을 '위축'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사우디와 UAE의 전력망·변전 인프라 프로젝트는 대부분 국가 주도 장기 사업으로, 이미 착공된 사업은 예산 우선순위가 높아 쉽게 철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신규 발주의 의사결정과 착공 순서가 재조정되는 흐름에 더 주목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존 프로젝트는 유지하되, 신규 증설은 전황과 물류 여건을 보며 속도를 조절하는 분위기다.

    국내 기업들의 중동 레퍼런스는 이미 두텁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전체 매출 4조795억원 가운데 20.9%를 중동에서 거뒀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8526억원 수준이다. 효성중공업 역시 지난해 중공업 부문 매출 4조1483억원 가운데 약 20% 안팎을 중동에서 올린 것으로 추산돼 약 8300억원 수준으로 분석된다. LS일렉트릭은 전체 매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중동 법인을 핵심 거점으로 운영 중이다. 

    전선 업계에서는 LS전선의 중동 레퍼런스가 대표적이다. LS전선은 쿠웨이트·카타르·사우디 3개국에서 총 1억1000만달러 규모 전력 케이블 프로젝트 수주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쿠웨이트가 1억700만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사우디와 카타르에서도 각각 144만달러, 136만달러 규모 수주를 확보했다. 대한전선 역시 사우디 초고압 케이블 공급 경험을 확보하고 있다.

    이번 공급망 리스크는 신규 사업보다 기존 굵직한 레퍼런스 사업의 납기 관리 능력을 시험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우디와 UAE의 송배전 인프라 사업은 대부분 국가 주도 장기 프로젝트 성격이 강해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은 쉽게 철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현지 기업들의 향후 12개월 경기 기대는 여전히 플러스 구간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존 프로젝트는 유지하되 신규 증설과 추가 발주의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는 흐름에 더 주목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사업 기회가 커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해당 지역에서 석유화학·유틸리티 시설이 공격 대상에 오르며 단순 증설보다 복원력(resilience) 중심의 전력망 재설계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향후 발주가 예비 변압기, 우회 송전선, 지중·해저 케이블 다중화 등 고부가 프로젝트로 이동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단기 납기 리스크는 부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의 기술 경쟁력이 더 부각될 수 있는 구조가 될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