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실력행사 중 첫 사망자 발생 … 산업별 유사 갈등 격화 조짐노동부 "노봉법과 별개사안" 입장 … "모호한 기준에 예견된 참사"與, 개정협의체 제안에 '묵묵부답' … 野, 노조법 개정안 당론 추진
  • ▲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 발생한 갈등과 입법 공백으로 인한 혼란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AI이미지. ⓒ코파일럿
    ▲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 발생한 갈등과 입법 공백으로 인한 혼란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AI이미지. ⓒ코파일럿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교섭 현장 혼란이 현실화되면서 당정의 '보완 입법' 필요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화물연대 집회 현장에서 사망 사고까지 발생하며, 법적 미비 상황이 갈등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22일 노동계와 경영계에 따르면 전날 오전 진주 물류센터 앞에서 노조 파업으로 대체 투입된 2.5t 물류차 출차 중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차량을 막아서는 과정에서 50대 노조원이 숨졌고, 2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고 후 집회 현장에서는 경찰과 노조가 몸싸움을 벌이며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오후 1시33분경엔 노조 측 차량이 방패를 들고 있는 경찰 경력 바리케이드를 친 뒤 센터 정문으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20대 경찰 기동대원이 머리에 타박상을 입었다. 

    이번 사고의 배경이 된 노사 갈등은 근본적으로 원·하청 교섭 문제에서 비롯됐다. 노란봉투법의 핵심 쟁점인 '실질적 지배력' 기준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두고 노사 갈등이 심화된 것이다.

    노동계는 원청이 실질적으로 운임과 물량을 결정하는 만큼 교섭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화물연대 소속 기사들이 개인사업자라는 점을 들어 노란봉투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법 적용 범위를 둘러싼 해석 충돌은 단순한 법리 논쟁을 넘어 현장 충돌로 번지고 있다. 

    이 같은 혼란은 특정 사업장을 넘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하청·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 요구가 잇따르며 유사한 갈등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법 시행 한 달 만에 하청 노조 14만여명이 368개 원청사에 교섭을 요구하며 작년 한 해 수준의 시정 요구가 쏟아졌다. 

    포스코 등 대기업은 연중 교섭의 늪에 빠졌고, 법안 간 충돌은 치명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하청 안전을 관리하면 노란봉투법상 사용자로 간주돼 교섭 의무를 지고, 이를 피하면 사고 처벌을 받는 모순에 직면했다. 충분한 논의 없는 입법이 산업 현장을 사각지대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 기업 현장에선 법적 책임을 피하려 외주 인력을 줄이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리더스인덱스 분석 결과,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소속 외 근로자는 2023년 약 72만명에서 법안이 공포된 2025년 약 66만명으로 8.2% 급감했다. 같은 기간 전체 근로자가 2.8%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건설(-23.4%), 석유화학(-34.8%), 2차전지(-33.5%) 등 주요 업종의 감소 폭이 컸다. 경기 부진 영향도 있으나, 노란봉투법 입법 과정에서 원청의 법적 부담이 커지자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인력 구조를 조정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노란봉투법이 '사용자 개념 확대'라는 방향성은 제시했지만, 이를 현장에서 적용할 구체적 기준이 부족해 사실상 제도 공백 상태가 발생한 만큼 노사 간 해석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노조 측에선 진주 물류센터 사태와 같이 '실력 행사'를 사실상의 교섭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이 21일 경남 창원시 경남경찰청 입구에서 청장 면담을 요구하며 청사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이 21일 경남 창원시 경남경찰청 입구에서 청장 면담을 요구하며 청사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집단행동이 갈수록 강경해질 경우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화물연대의 CU 물류센터 출입구 점거에 따라 충청권 등 지방을 중심으로 일선 편의점 내 상품 공급이 차질을 빚으며 막대한 경제적 손실마저 생기고 있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노란봉투법과 별개 사안"으로 규정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만, 고용노동부가 법 개정 당시부터 기준의 모호성과 후속 입법 필요성이 제기됐음에도 구체적 보완 없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예견된 참사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적잖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지난 13일 대정부 질의에서 "정부의 사용자성 인정에 대해 법적으로 보완돼야 할 상황이 있는 것 같다"며 미비점을 시인한 바 있다. 법 시행 전후로 불거진 '실질적 지배력'의 모호성이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마저 인정할 만큼 심각한 수준임을 시사한다. 

    이에 야권에선 현장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노란봉투법 개정협의체를 제안했으나, 여권에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자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결국 노란봉투법이 갈등을 조정하는 해결사가 아니라 오히려 갈등 증폭기가 돼버린 것"이라며 노란봉투법을 뒤집는 노조법 개정안을 마련해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도 정부의 입법 취지와 달리 노란봉투법이 노사 간 대립각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경영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도입으로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사용자성과 교섭 부문에서 불확실성을 안고 가게 됐다"며 "노동계로선 도 넘은 실력 행사를 하도록 여지를 남겨준 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