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바이오도 멈출까 … 전략산업 덮친 '파업 리스크'적자엔 침묵, 흑자엔 성과급 요구 … 선넘는 위력과시삼전·삼바 노사 충돌 격화 … 공급망·투자·물가 '삼중 충격'
  • ▲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대규모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성진 기자
    ▲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대규모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성진 기자
    [편집자 주] 정권 교체 1년, 대한민국 산업 현장이 '노조'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 합리적 대화와 상생의 가치가 사라진 자리에 하청 노조의 무분별한 교섭 요구, 거대 노조의 도 넘은 성과급 투쟁, 그리고 물리력을 앞세운 폭력 시위가 난무하고 있다. 본지는 <노조에 포획되는 나라> 긴급진단 시리즈를 통해 법치주의와 시장 경제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현주소를 짚고, 법치 확립의 시급성을 제언한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인 반도체와 바이오 산업이 노사 갈등의 격랑에 휩싸였다. 자동차·조선·철강을 넘어 국가 전략산업의 핵심 생산기지까지 파업 위기에 놓이면서 산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와 바이오는 수출, 투자, 고용을 떠받치는 양대 축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개별 기업 노사 갈등을 넘어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각각 성과급 확대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시장에서는 "생산라인이 멈추는 순간 기업 실적을 넘어 한국 경제 성장률과 글로벌 공급망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 ▲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대규모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성진 기자
    ▲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대규모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성진 기자
    ◇반도체·바이오까지 번진 파업 전운 … 공급망도 흔들린다

    23일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는 조합원 4만여명이 집결했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과반 노조 지위를 확보한 이후 처음 연 대규모 집회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재원으로 한 성과급 지급과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준으로 하면 요구 규모는 수십조원에 달한다. 노조는 다음 달 2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주주단체까지 맞불 집회에 나서면서 갈등은 노사를 넘어 주주와 노동계의 정면 충돌로 번지는 양상이다.

    문제는 생산 차질로 공급망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노조는 18일 파업 기간 동안 최소 20조원에서 30조원 규모의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은 한번 멈추면 재가동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반도체 웨이퍼는 일정 시간 안에 후속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폐기될 수 있고, 클린룸 환경 역시 한번 흔들리면 설비 손상 가능성이 커진다. KB증권은 삼성전자 파업이 18일간 이어질 경우 생산 정상화에만 추가로 2~3주가 필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메모리 공급 차질도 불가피하다. D램은 3~4%, 낸드는 2~3% 수준의 공급 감소가 예상된다.

    해외 주요 언론도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로이터는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에서 생산 차질이 현실화할 경우 AI 데이터센터와 자동차, 스마트폰 등 글로벌 IT 공급망 전반에 병목 현상이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만 디지타임스 역시 반도체가 한국 수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들어 "파업은 치명적, 칩 가격 변동과 한국 세수 감소는 물론 장기 투자 계획까지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닛케이 아시아는 "삼성전자와 노조와의 분쟁이 장기적으로 시장 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상황은 비슷하다. 바이오의약품 생산 역시 파업으로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배양과 정제 공정은 24시간 연속 운영이 필수로 공정이 중단되면 원재료를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조는 5월 1일부터 창사 이후 첫 파업을 예고하며 임금 14% 인상과 격려금, 자사주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송도 사업장 집회에는 2000여명이 모였다. 이에 법원은 전략 산업 특성 상 전면 파업이 초래할 파장을 감안해 세포주 변질과 부패 방지를 위한 핵심 공정의 중단을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지만 파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조 '70조 성과급' 요구 … 미래 투자 잠식하는 성과급 경쟁

    산업계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주요 기업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규모가 70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기업의 현금 흐름과 투자 여력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주주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는 평택 현장에서 "반도체 공장은 주주의 자산"이라며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비판했다. 미래 투자 재원이 과도한 성과급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의 막대한 이익은 단기간의 노동 투입만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5년간 240조원이 넘는 시설투자와 140조원 이상의 연구개발, 그리고 AI 메모리 슈퍼 사이클이 맞물린 결실이라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발생한 이익 상당 부분이 다시 차세대 공정과 생산능력 확충에 투입돼야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막대한 선행 투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분야로 단기 성과 배분이 장기 투자를 잠식할 경우 경쟁 우위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

    업계에선 전략 산업의 파업은 노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생산 차질은 고객사 납기 지연과 협력사 피해, 수출 감소,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며 국가 경제 전체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동권은 존중돼야 하지만 국가 핵심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 역시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대규모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성진 기자
    ▲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대규모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성진 기자
    ◇비용 인상 인플레·양극화 우려

    더 큰 문제는 파장이 개별 기업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해 1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은 1.7%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반도체 기여도가 절반을 웃돌았다. 반도체 생산 차질은 곧 성장률 둔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의 대규모 임금 인상은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원청과 하청의 인건비가 동시에 상승하면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 기업은 정규직 노조뿐 아니라 하청 노조와의 교섭 부담까지 안게 됐다. 이는 외주 축소, 자동화 확대, 협력 업체 생태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성과급을 둘러싼 이번 갈등은 노동권 보장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나온다. 최근 대법원은 경영 성과급이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 아니라 경영 성과의 사후적 분배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임금 인상과 달리 경영 성과 배분 방식을 둘러싼 분쟁을 위해 국가 핵심 산업의 생산라인을 멈추는 것이 과연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와 바이오는 한국 수출과 성장의 핵심 축"이라며 "전략산업 생산라인을 협상 카드로 삼는 관행이 확산되면 국가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권 보호와 기업 경쟁력의 균형을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