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4차 가격도 동결…휘발유 125원·경유 628원 인상 억눌러최고가격 종료 시 유가 폭등에 경제 충격 한꺼번에 밀려올 수도4개 정유사 2주간 1조원대 손실…정부 손실 보전 예산 곧 고갈지방선거 앞두고 靑·與 눈치?…정부 "정치적 중립의무 준수"
  • ▲ 26일 서울시내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나타나있다. 정부가 정유사 공급가 상한을 연이어 동결한 것과 달리 주유소의 소비자 판매가격이 2000원을 넘어서는 등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 26일 서울시내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나타나있다. 정부가 정유사 공급가 상한을 연이어 동결한 것과 달리 주유소의 소비자 판매가격이 2000원을 넘어서는 등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중동 전쟁에 따른 국민 부담 최소화를 위해 도입된 석유 최고가격제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시한폭탄'으로 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가 급등 초기에는 서민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 효과를 거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정 부담과 시장 왜곡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석유최고가격제가 종료 되면 억눌렀던 가격과 경제 충격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8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2주 단위로 국제유가 변동률을 반영해 정유사의 출고 가격 상한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최고가격제를 운용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4일 0시를 기해 리터당 공급가를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으로 하는 4차 석유 최고가격을 고시했다. 이번 2·3차 가격과 같은 수준으로 4차 가격도 동결한 것이다. 

    석유최고가격제 덕분에 국내 유가는 상당 수준 억제됐다. 산업부에 따르면 그동안 인상 미반영분을 고려했을 때 4차 최고가격은 리터당 휘발유 2059원, 경유 2551원, 등유 2103원으로 결정돼야 했다. 각각 휘발유 125원, 경유 628원, 등유 573원의 인상 요인을 정부가 억누른 것이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이보다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휘발유는 리터당 2200원, 경유는 2800원 수준까지 상승했을 것으로 추산되지만, 실제 가격은 이보다 낮게 유지되고 있다.

    국제 유가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정유사들은 손실도 누적되고 있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석유최고가격제가 시행된 3월 3, 4주 차(3월 16∼29일) 2주간 국내 주요 4개 정유사가 입은 손실액은 1조267억원으로 추정된다.

    향후 석유최고가격제가 종료될 경우 이 차액이 한꺼번에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가능성이 커 유가 급등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외 사례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파키스탄은 2022년 2~5월 석유 가격을 동결하는 정책을 폈다가 해제 후 휘발유 가격이 66% 급등한 바 있다. 헝가리 역시 2021~2022년 가격 상한제 종료 이후 급격한 가격 조정을 겪으며 시장 혼란을 겪었다. 국내 역시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물가 전반에 미치는 충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 문제는 제도를 계속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정유사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국내 석유 제품 일일 소비량이 약 100만 배럴 이상에 달하는 상황에서 리터당 100~200원 수준의 가격 차이를 보전할 경우 월 수천억원에서 최대 1조원대의 재정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쟁 장기화로 이러한 부담이 누적되면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정부는 정유업계 손실을 보전해 주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으로 4조2000억원을 마련했다. 그러나 중동 전쟁이 장기화되고 고유가가 지속되면 손실 보전 예산이 6월을 넘기지 못하고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부가 가장 강력한 카드인 석유최고가격제를 너무 빨리 시행한 측면이 있다"며 "중동 전쟁이 장기화 되면 재정 부담으로 인해 결국 최고가격제 대신 유류세 인하라는 완화된 정책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유가 상승에 따른 국민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지난달 26일 휘발유(7→15%)와 경유(10→25%)에 대한 유류세 인하 조치를 확대·연장(5월31일까지)했고, 지난 23일엔 부탄에 대해서도 추가 인하 조치를 내놨다.

    최고가격제의 정책 효과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면서 오히려 석유 소비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고가격제 시행 2주째인 3월 4주 차(23~29일)의 경우 기름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8.9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나머지 기간엔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감소했다. 

    정부 역시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최고가격을 인하하지 않고 동결했는데, 이는 출구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가격을 서서히 현실화해 누적된 인상 억제분을 줄임으로써 제도 종료 시 충격을 분산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석유최고가격제 종료 시점을 묻는 질문에 "최고가격제를 언제까지 할 지 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당분간 종료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전쟁이 종료되거나 국제유가가 안정되면 최대한 이른 시일 내 최고가격제를 종료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최고가격을 인상하거나 섣불리 종료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도 여러 해석이 나온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부가 청와대와 여당의 '포퓰리즘' 논리에 스스로 편승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최고가격은 중동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민생경제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한시적으로 도입하여 운영하는 제도"라며 "담당 공무원들은 국가공무원법 상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준수하면서, 서민경제, 정부 재정부담, 수요관리, 국제유가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고가격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