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한 달 만 23조 손실 … '수주 텃밭' 사우디 적자만 52조중국·인도 건설사 물량 공세 나설 듯 … 국내사 가격 경쟁력 흔들최대 시장 이란 非서방 국가에 우호적 … 중동 장기미수금 7000억
  • ▲ 중동지역의 한 석유시추시설. ⓒ연합뉴스
    ▲ 중동지역의 한 석유시추시설. ⓒ연합뉴스
    미국 이란 휴전으로 중동 재건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는 시선도 적잖다. 그 배경으로는 중동 산유국들의 재정 악화가 꼽힌다. 지난해 지속된 저유가와 상반기 전쟁 여파로 산유국들의 재정이 상당 부분 고갈되면서 저가 수주, 미수금 리스크가 커졌다. 가격 경쟁력과 정부 지원을 앞세운 중국, 인도 건설사들의 입찰 참여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악재로 꼽힌다.

    1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걸프 산유국과 이란 등을 포함한 중동 재건사업 규모는 어림잡아 580억달러(88조47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컨설팅업체인 라이스타드 에너지는 석유·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생산·저장시설 복구 비용만 340억달러(51조8670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현대건설을 필두로 △대우건설 △DL이앤씨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 △삼성E&A 등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에서 다수 인프라 공사를 수행하며 현지사업 경험을 쌓아왔다.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아람코와 카타르 카타르에너지 등 현지 국영 발주처와의 네트워크도 탄탄하다. 국내 건설사들이 재건사업 수혜 1순위로 거론되는 것도 이같은 현지 사업 수행 경험과 발주처와의 신뢰 관계 때문이다.

    반면 재건 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재건 프로젝트를 발주해야 할 산유국들의 재정난이다. 전쟁 전인 지난해 연말과 연초 국제유가는 글로별 경기 둔화 등으로 배럴당 50달러선까지 떨어졌고, 지속된 저유가는 산유국들의 재정 악화로 이어졌다.

    지난 2월 발발한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산유국 재정에 결정타가 됐다.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는 뛰었지만 원유 수출 길이 막혔고 방산 투자 등으로 인해 재정 지출이 수입을 앞질렀다.

    원자재 정보분석업체 케이플러는 걸프 산유국들이 전쟁 발발 한 달 만인 지난 3월 기준 151억달러(23조350억원) 규모 재정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했다. 전쟁이 이달까지 지속된 점을 감안하면 재정 손실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내 건설사들의 최대 텃밭인 사우디 경우 1분기 기준 재정 적자가 1260억리얄(52조6818억원)로 전년 동기 590억리얄(23조8000억원) 대비 2배 이상 급증하며 2018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산유국 재정 악화와는 저가 발주 및 수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발주처 입장에선 제한된 예산 탓에 재건 프로젝트 계약금을 최대한 낮게 제시할 공산이 크다.

    설상가상 이번 중동 재건시장 경우 중국과 인도 건설사들의 적극적인 공세가 예상되고 있다. 저가 수주도 마다하지 않는 중국·인도 건설사들의 물량 공세에 국내 건설사들이 가격 협상 주도권을 놓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재건시장 규모가 가장 큰 이란 경우 중국 등 비(非) 서방국가 건설사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이란 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계 건설기업 8곳 가운데 튀르키예 1곳을 제외한 7곳이 모두 중국계 기업이다.

    특히 이란 경우 2018년 11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는 등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A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이란 재건시장은 현재로선 불확실성이 너무 크고 걸프 산유국도 글로벌 경쟁사들이 계약금을 낮게 써내면 수주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물론 기존에 시공했던 인프라 시설일 경우 상대적으로 해당 건설사가 복구공사도 맡을 수 있겠지만, 그 외 사업은 추후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산유국 재정 악화로 인해 미수금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정난을 이유로 발주처가 밀린 공사비 지급을 미루거나, 기존에 합의한 계약금을 깎을 수 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전쟁 이전에도 미수금은 중동 건설시장의 고질적 병폐로 꼽혀 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종욱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국내 건설사가 해외에서 대규모 건설공사를 수행하고도 1년 이상 대금을 받지 못한 장기 미수금은 약 4억9492만달러(7283억원)로 집계됐다.

    특히 이 가운데 61%를 차지하는 3억439만달러(5061억원)가 중동 및 인근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란에서 생긴 미수금만 3339만달러(49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가 종전 대가로 재건 사업을 위한 3000억달러(457조6500억원) 규모 기금 조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미지수다. 구체적인 기금 운용 방식이나 사업 형태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B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애초에 중동 시장은 마진율이 높지 않은 편인데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 심화, 저가 수주, 미수금 등 요솎지 고려하면 재건사업 수주 후 본전도 못 찾을 수 있다"며 "다만 고유가 기조가 이어지고 지정학적 위기가 해소되면 중장기적으로 중동 사업도 다시 정상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화랑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란의 경제 제재 해제 동향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이란을 포함한 중동 재건 사업 선점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