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삼성바이오와 송도 LGL 구축 … 초기 바이오텍 30곳 육성로슈, 5년간 7100억원 투자 … 글로벌 임상·오픈이노베이션 확대노보홀딩스, 국내 PEF 첫 출자 … 제조·진단·의료생태계 주목
  • ▲ 바이오 연구. ⓒ연합뉴스
    ▲ 바이오 연구. ⓒ연합뉴스
    글로벌 빅파마들이 한국 바이오산업에 잇따라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송도에 초기 바이오텍 육성 거점을 설립하고 로슈는 글로벌 임상과 오픈 이노베이션 확대를 위해 투자에 나섰다. 노보노디스크의 지주사인 노보홀딩스도 국내 바이오헬스 펀드에 출자하며 한국 시장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한국이 최근 신약 후보물질 발굴, 바이오텍 육성, 임상시험 진행, 진단·의료 플랫폼 투자까지 아우르는 전략 거점으로 위상이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일라이 릴리, 로슈, 노보홀딩스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올해 들어 국내 바이오 생태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일라이 릴리다. 릴리는 지난 3월 보건복지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올해부터 향후 5년간 총 5억달러(약 7500억원) 규모를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손잡고 인천 송도에 릴리게이트웨이랩스(Lilly Gateway Labs, LGL) 국내 거점을 구축하기로 했다. LGL 국내 거점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제2바이오캠퍼스에 2027년 준공 예정인 오픈이노베이션 센터 'C랩 아웃사이드'에 들어설 예정이다.

    LGL은 릴리가 운영하는 초기 바이오텍 지원 플랫폼이다. 입주기업에는 연구시설과 장비, 과학적 자문, 연구개발 협력, 멘토링, 직접 투자 및 외부 투자 유치 지원 등이 제공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릴리는 C랩 아웃사이드 입주기업 30개사 선발과 육성을 공동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릴리가 한국을 LGL 거점으로 선택한 것은 국내 바이오텍 생태계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릴리 측은 한국의 과학 경쟁력, 빠르게 늘어나는 초기 바이오텍 풀, 정부의 생명과학 지원 정책 등을 주요 배경으로 꼽았다. 이는 글로벌 빅파마가 한국을 단순 시장이 아니라 초기 기술을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는 생태계로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릴리의 행보는 오픈이노베이션에 그치지 않는다. 릴리는 지난해 에이비엘바이오와 총 26억200만달러 규모의 혈뇌장벽(BBB) 셔틀 플랫폼 기술이전 및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과 함께 1500만달러 규모의 전략적 지분투자도 단행했다. 

    올해 들어서는 한미약품과 희귀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소네페글루타이드에 대한 총 12억6000만달러 규모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으며 GC녹십자의 미국 관계사 큐레보를 최대 15억달러 규모에 인수하기도 했다.

    로슈도 한국 바이오헬스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로슈와 대한민국 바이오헬스 산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로슈는 향후 5년간 총 7100억원을 투자해 다빈도·난치성 질환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분야 글로벌 임상시험을 국내에 유치하고 연구개발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또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국내 바이오헬스 유망기업 발굴과 신속성장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 협약은 한국의 임상시험 경쟁력을 글로벌 R&D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복지부는 한국이 아시아 지역의 전략적인 글로벌 임상시험 거점으로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로슈 역시 정부와의 협력이 한국 바이오헬스 산업의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보노디스크의 지주회사 겸 투자회사인 노보홀딩스도 국내 바이오 시장에 진입했다. 노보홀딩스는 지난 4월 아시아 장기 투자 전략의 일환으로 한국 헬스케어·생명과학 생태계와의 협력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사모펀드 운용사 프리미어파트너스를 통해 한국 바이오헬스 시장에 투자한다. 노보홀딩스가 국내 사모펀드에 출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투자 규모를 밝히진 않았지만 프리미어파트너스가 조성 중인 1조1000억원 규모 펀드 중 해외에 배정된 몫인 약 10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노보홀딩스는 한국이 첨단 제조, 생명과학 도구 및 진단, 혁신 기반 의료 플랫폼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국의 헬스케어·생명과학 생태계의 깊이와 정교함이 아시아 시장 내에서 두드러진다는 점을 투자 배경으로 제시했다.

    글로벌 빅파마인 이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국내 바이오산업에 접근하고 있다. 릴리는 초기 바이오텍과 혁신 플랫폼을 직접 발굴하는 오픈이노베이션에 나서고 있으며 로슈는 한국의 임상시험 수행 역량과 R&D 인프라를 활용하기로 했다. 노보홀딩스는 펀드 출자를 통해 국내 바이오헬스 투자 생태계에 진입했다.

    이는 한국 바이오산업의 글로벌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로 분석된다.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항체, ADC, RNA, 비만·대사질환, 희귀질환, BBB 플랫폼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글로벌 기술이전 성과를 만들어왔다. 

    여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수준의 CDMO(위탁개발생산) 역량, 임상시험 인프라, 정부의 바이오헬스 육성 정책이 맞물리면서 글로벌 빅파마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빅파마의 투자가 곧바로 산업 전체의 수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초기 단계부터 데이터 완성도, 지식재산권, 임상개발 전략, 자금조달 능력 등을 까다롭게 검증한다. 릴리 역시 LGL 입주가 투자나 기술이전 계약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빅파마들의 국내 바이오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중국 등 경쟁국과의 격차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빅파마들이 한국 바이오기업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것은 맞다"며 "글로벌 제약사들이 특허 만료와 후속 파이프라인 확보 경쟁에 직면한 상황에서 새로운 후보물질과 플랫폼을 공급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 중국, 일본 등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중국은 이미 임상 개념검증(POC) 데이터를 바탕으로 글로벌 딜을 성사시키고 있다"며 "한국도 전임상 데이터 등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파일링해온 점은 긍정적이지만 실제 빅파마들이 오픈이노베이션을 얼마나 본격화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