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입장만 전달하더니 결론은 정반대… '직업병 논란 종지부' 급물살툰자크 유엔 특별보고관 "인과관계 없는데도, 삼성 적극적 문제 해결 노력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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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둘러싼 직업병 논란을 조사했던 유엔 보고관이 말을 바꿨다.

    직업병 의심환자와 가족을 차례로 만나본 뒤, 삼성에 날을 세웠던 그가, 1년여만에 갑자기 삼성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반도체와 직업병 사이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못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하루 전날인 11일 '환경적으로 안전한 관리 방안과 유해화학물질·폐기물 처리에 관한 인권 영향과 방한 결과에 대한 특별보고관 보고서'를 자신들의 사이트에 올렸다.

    이번 보고서는 유해물질에 따른 국내의 인권 침해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한국을 방한한 바쉬쿠트 툰자크(Baskut Tuncak)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이 11개월에 걸쳐 작성한 문서다.

    그는 보고서를 완성하기 위해 한국을 직접 찾았다. 당시 2주간 한국에서 머물면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는 데 이어 직업병 논란과 관련된 시민단체 사람들을 쉴 틈 없이 만나고 다녔다.

    툰자크 보고관은 유엔을 돕는 일종의 자문기구에서 일하고 있다. 유엔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자신들이 전부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자문기구를 두고 있다.

    하지만 툰자크 보고관은 이 기간 동안 이례적인 돌출 행동을 보였다.

    사실관계 확인이라는 본연의 직무를 뛰어넘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와 같은 시민단체 입장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지나치게 인권단체의 얘기만 듣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올림은 삼성에 직업병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300일 넘게 강남역 주변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을 떠나기 하루 전날 연 마지막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시민단체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등 인권단체 입장만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는 삼성전자를 인권보다 이윤추구가 우선인 기업으로, 우리 정부를 유해물질과 관련한 인권보장에 소홀한 국가로 표현하며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상 반올림과 한목소리를 낸 셈이다.

    그의 한국행을 주도한 것도 반올림과 연관된 국내 한 진보단체인 것으로 전해졌다.

    툰자크 보고관이 당시 내뱉은 발언들은 일부 해외 매체들을 통해 세계 전역으로 여과없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1년 후 툰자크 보고관의 태도가 완전히 돌변했다. 시민단체가 아닌 삼성을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반도체와 직업병 사이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삼성이 보상안을 발표하고 사고 예방책을 발빠르게 세우는 등 꼬인 실타래를 푸는 데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일부 시민단체의 대변인 역할을 자청했던 그가, 정작 보고서 내용은 정반대로 쓴 것이다. 반도체와 직업병 간 인과관계를 찾지 못하면서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자산업 현장에서 350명의 근로자가 각종 질병에 걸렸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연구소이 벌인 역학조사를 비롯해 과학적 조사결과에서는 유의미한 발암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 유엔 역시 이 같은 조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툰자크 보고관은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보고서에서 "퇴직자들에게 적절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그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삼성이 취한 내부적 변화와 노력을 인정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과학적 인과관계와 무관하게 수십종의 질병에 대해 퇴직 후 10년까지 보상을 진행하고 있다. 직업병 의심 환자 중 보상금을 타간 숫자가 현재 120여명에 달한다.

    사고 예방책에 대해서도 삼성전자는 반올림, 가족대책위와 함께 '옴부즈만 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옴부즈만 위원회는 앞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 대한 종합진단을 실시하고 개선안을 도출하는 작업을 펼칠 예정이다.

    유엔의 이번 평가는 직업병 논란을 마무리 짓는 결정적 계기가 될 전망이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사무소의 높은 위상 때문이다. 이 기관의 평가 자체가 세계 인권단체 등에 규범으로 쓰일 가능성도 큰 것으로 전해졌다.

    툰자크 특별보고관은 "삼성이 전직 근로자 110명에게 보상을 실시하는 동시에 CEO가 직접 작성한 사과편지를 전달했다"면서 "삼성전자가 예방과 개선 방안을 권고하는 옴부즈만 위원회 설립을 위해 다른 협상 참여자와 합의한 점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는 오는 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