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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문학평론가인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가 기고한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구촌의 텔레비전 시대를 예고한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가 메시지다"고 말한 것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은 이미 오래다. 더욱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TV의 위력은 인간 의식을 지배할 만큼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 매체가 아무리 편리한 문명의 이기(利器)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잘못 사용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오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공산주의를 경험했다가 실망한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권위적인 독재자에 해당되는 '대형(Big brother)'이 등장하는 '1984'에서, 발달된 정보 매체는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전달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체제를 고착하기 위해 도청은 물론 국민을 세뇌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했다.
올 들어 KBS는 '해방 전후사'를 편향된 시각으로 형상화한 대하드라마 '서울 1945'를 제작·방영해 역사 왜곡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KBS는 이 드라마 제작 목표를 '기성세대의 편견과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물론 '신세대에게 올바르게 그 시대를 새로이 평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빨치산'에 의해 테러로 가족을 잃었거나 살던 집을 불태웠던 많은 사람, 그리고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이것이 참된 역사물이 아니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이 드라마가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는 몽양(夢陽) 여운형의 살해 배후로 이승만을 지목하며,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을 도덕적으로 훼손한 것은 옳지 못하다. 또 이승만이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좌익정치 지도자들과 달리 공산주의의 실체를 일찍 파악한 인물로 그의 국제 정치적 식견에 대한 적절한 평가 없이 분단의 모든 책임을 그에게로만 돌리면서 도덕성을 상실한 누추한 자본주의자로 낙인찍은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서울 1945'가 방영된 이후 '역사 왜곡'에 대한 반대 여론이 비등하지만, 제작진과 그 주변 사람들은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으로 쓰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콜링우드가 말했듯 역사는 유토피아를 목표에 두고 역사적 상상력을 갖고 선택적으로 기술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제적인 사실에 기초를 두어야만 한다. 픽션인 드라마도 이와 같은 문맥에서 역사적 상상력을 사용할 수 있으나 '서울 1945'처럼 작품의 배경을 위해 역사적인 실제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압박으로 노벨상 수상을 거부해야만 했던 러시아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닥터 지바고'를 보자. 이 작품은 이념의 갈등 속에 희생되는 인간의 고통을 주제로 해 영화화까지 됐지만, 그것에 사용된 역사적 배경은 있는 그대로 두고 픽션 부분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형상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가 "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통해 해방 전후사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완전히 바꾸려는 것은 자가당착이며, 좌파적 정치이념에 대한 선전이 되고 있다.
'서울 1945'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그간에 방영된 내용으로 보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적지 않게 흔들게 될 것이다. 급변하는 국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일을 준비하는 일보다 불행한 과거를 파헤쳐 다시금 낡은 이념을 위한 논쟁에 빠지게 되면 국가의 미래가 상처를 입는다. 왜곡된 역사를 담은 이 드라마가 픽션이라도 공영 방송을 타게 되면 많은 국민은 무비판적으로 그것을 진실로 믿어버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KBS가 더 늦기 전에 공영방송으로서 그 기능과 책임을 다시금 깨닫고 잃어 버린 신뢰와 위엄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