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어떻게 되찾은 세상인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이회창 진영을 막론한 전체 보수 정파들의 정치적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진영은 집권한 지 3개월도 채 못 돼 좌파와 우파의 협공을 동시에 받고 있다. 박근혜씨와 이회창 진영은 광우병 괴담과 관련해 공격의 표적을 좌파보다는 이명박 정부에 돌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주전선(主戰線)이 어디 있는가가 흐려진 이념적 혼미(昏迷)라 할 수 있다.

    우선 이명박 진영은 '여의도식(式)' 정치를 배척하는 나머지, 광범위한 협력체제(coalition building)를 위한 정치의 순(順)기능까지 외면했다. 언행의 즉흥성, 경박성도 드러냈다. 각료 인선, 공천 과정, 총선 후 정쟁, 쇠고기 파동에 대한 대처방식 등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국민들, 특히 이 정부를 탄생시킨 '애국 보수층'이 자신들의 그간의 '이명박 지지'를 급속히 철회했다. "어떻게 되찾은 '10년 만의 대한민국'인데 이 정부가 이렇게밖엔 못하는가?" 하는 질타가, 한 원로(元老) 집회의 노기(怒氣) 서린 분위기였다.

    이명박 진영의 이런 죽 쑤기의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한마디로 '철학 없는 실용주의' '인문(人文) 소양 없는 실용주의' '몰가치적 실용주의'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재주만 있으면 된다"로 잘못 해석한 것 같다. 실용주의는 원래 미국의 초창기 개척정신을 반영한 철학이었다. 그들 미국 개척자들은 '재주만 있으면 된다'가 아니라, 목숨을 던진 신념의 소유자들이었다. 자유, 민주, 공화(共和), 극기(克己), 경건(敬虔), 희생, 용기 같은 덕목들을 일관되게 지켜낸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러나 예컨대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 한승수씨 같은 이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가 5공의 훈장을 받은 것을 시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만한 공(功)을 세웠기에 그만한 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국무총리 인준 청문회 때 "훈장을 반납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것을 즉각 반납해 버렸다. 일 잘하고 재주는 있지만, 이(利)를 위해선 그 어떤 구속력에도 얽매이지 않는 지극히 편의주의적인 처신. 실용주의란 결코 이런 게 아닐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에는 이런 유형의 인물들이 너무나 많다. 학계, 문화계, 미디어, 교육계, 경제계에도 이런 전천후 얌체들이,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평생 대운(大運)'을 누리고 있다. 이런 무원칙한 기회주의 보수로는 목숨을 던지는 좌파와 게임이 될 수 없다. 그들에게는 보신(保身)과 영달(榮達)만 있을 뿐, 일신을 던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따위는 없다. 그들은 설령 김정일이 내려온다 해도 여전히 예쁜 표정으로 생글거릴 만년 이기주의자들일 뿐이다.

    광우병 괴담, 삼성(三星) 사태, 투기(投機) 의혹자들의 요직 등용(登用)을 지켜본 반(反)대한민국 세력은 이명박 정부와 '보수'의 바로 그런 문화적, 도덕적 결함을 파고들며 일대 세(勢) 결집에 나서고 있다. 이것이 '촛불'의 또 다른 측면에 도사리고 있는 저들의 상투적인 전술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씨와 자유선진당은 '촛불'의 '일반적 이명박 반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반(反)대한민국 세력의 그런 전술에는 함구한 채 현 사태를 즐기고만 있다. 박근혜씨는 쇠고기 파동을 "이념적으로만 볼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반(反)이명박 촛불문화제를 통해 대중들의 투쟁에 불을 붙인다… 이를 통해 5·31에는 전국 각지에서 투쟁을 폭발시켜 이 흐름으로 이명박 정부를 쓸어 버리고 6·15에 민족통일대축전을 성사시킨다"는 일부의 '계획서'는 이념인가 아닌가?

    이렇듯, 무임승차로 '땡잡은' 범(汎)집권 측은 진짜 절실한 싸움을 회피하면서 땅 따먹기나 하고 있다. 참 자격 없는 사람들이다. "한국 개고기가 미국 쇠고기보다 더 위험하다"고 한 김문수 경기지사가 그래서 돋보였다. 이명박, 박근혜, 강재섭, 정몽준을 능가할 '혁신 우파' 도전자들은 과연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