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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8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KBS 정연주 사장과 MBC PD수첩,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를 지키겠다며 ‘방송장악·네티즌 탄압 저지 범국민행동(국민행동)’이 지난주 출범했다. 이 단체에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참여연대, 민주노총, 민언련, 민변 같은 세력이 망라돼 있다. 핵심은 민주당, 참여연대, 민언련이다. 상임위원장을 맡은 성유보 씨는 민언련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 때 차관급인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그와 함께 ‘국민행동’ 주요 멤버로 참여한 정동익 씨도 민언련 의장을 지낸 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주요기관 감사를 번갈아 역임한 ‘좌파정권 관변인사’다.
‘국민행동’에서 시민단체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참여연대도 앞서 두 정권에서 권력의 단맛을 듬뿍 빨아먹었다. 두 정권 10년 동안 참여연대 전·현직 임원 416명 중 36%인 150명이 청와대와 정부기관에 진출했다는 보고서도 있다.
KBS 정 사장은 민주당 의원들이 사장실로 찾아가 “혹시 탄압은 없었느냐”고 묻자 뚱딴지 같은 말을 했다. 그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KBS 사장 해임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본다”고 말한 데 대해 “그렇다면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 해임권도 (대통령에게) 있다는 말이냐”고 반발했다. 방송공기업 사장이 헌법에 6년 임기가 보장돼 있고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를 밟는 대법원장, 헌재소장과 비교한 것은 가당찮다.
돌이켜보자.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박권상 KBS 사장은 임기를 채우지 않고 사표를 제출했다. 노 대통령은 곧바로 대선캠프 언론고문이던 서동구 씨를 KBS 사장에 내정하고 “이사회에 내 뜻을 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노조의 저항으로 서 씨가 낙마하자 노 대통령은 국회 국정연설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KBS 사장 임면권(任免權)은 대통령에게 있다”며 강하게 유감을 표시한 뒤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출신의 정연주 씨를 새 사장으로 내세웠다. 이처럼 KBS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면권’을 강조한 노 대통령에 의해 임명돼 코드편파방송을 일삼은 정 사장이 대법원장과 자신을 동격화한 것은 한 편의 코미디다.
정 사장은 “외국 공영방송 사장은 임기가 보장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처럼 편파방송과 적자경영으로 공영방송을 만신창이로 만들고도 온전한 선진국 공영방송 사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