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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에 이 신문 허엽 문화부장이 쓴 '그는 어떻게 공영방송을 장악했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일이지만 복기를 해야겠다.
KBS 정연주 사장 지키기를 ‘방송장악 저지’ ‘공영방송 수호’로 둔갑시킨 진보좌파진영의 주장이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연주의 ‘KBS 장악’ 행적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도 나섰고, 기자에게 정 사장에 대해 아쉬움을 표명했던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앞장서고 있다.
정 사장은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인 2003년 4월 취임했다.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언론고문을 지낸 서동구 전 사장이 9일 만에 물러난 뒤였다. 진보좌파진영은 서 씨를 낙하산이라며 반대했다. 노 대통령이 서운해할 정도였다.
정 사장은 한겨레 논설주간 시절 40여 편의 칼럼에서 반미 반보수(신문) 반이회창을 격하게 외쳤다. “빗자루로 쓸어버려라”고 선동도 했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 직후 한겨레에 들러 감사의 표시를 할 만했다. 정 주간의 글에 비하면 서 씨의 언론고문 활동은 티도 나지 않는다. 서 씨가 낙하산이면 정 사장은 ‘왕 낙하산’이다.
진보좌파진영이 서 씨를 반대한 이유는 자신들과 동지적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시 정 주간 등을 사장 후보로 무게 있게 고려하라고 이사회를 압박했다. 정 사장은 노 대통령과 KBS 노조위원장 등이 참석한 청와대 만찬에서 낙점됐다. 이날 밤늦도록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축배의 잔이 올랐다. 청와대 측도 참석했다. (서 씨는 나중에 정 사장의 추천에 힘입어 스카이라이프 사장이 됐다.)
정 사장은 취임 3일 만에 본부장급 임원들에게 일괄 사표를 받았다. ‘인적 청산’이란 말이 나돌았고 사표는 전격 수리됐다. 당시 지명관 이사장은 “혁명적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정 사장은 노조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동지애를 과시했다. 중견 간부들에 대한 인사 조치도 강행됐다. 한 심의위원은 숙청이라고 했다. 그만큼 신속하게 KBS를 장악한 사례도 없었다.
이후 정연주의 KBS는 ‘탄핵방송’ ‘송두율 프로그램’ ‘미디어 포커스’ 등에서 보듯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들고 편파 논란을 낳았다. 수신료 현실화를 엄두도 못 낼 만큼 신뢰를 잃었다.
2006년 9월 정 사장의 연임 과정도 낙하산과 억지의 합작품이었다. 노조는 정 사장의 연임에 반대했다. 정 사장 3년에 대한 평가였다. 하지만 사장추천위원회가 무력화됐고 정 사장은 재입성했다. 이사 2명이 사퇴했고, 정 사장은 한동안 노조 몰래 기습 출근해야 했다. 청와대는 “노조에 문제가 있다”며 정 사장을 편들었다.
그의 연임 뒤 KBS는 찬반 세력의 갈등으로 사분오열됐다. 경영 상태도 악화됐다. 정 사장은 올해 초 퇴진을 요구하는 노조위원장에게 “회사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협박까지 했다.
이처럼 간단히 살피더라도, 정 사장은 지난 정권의 낙하산이자 셀 수 없이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노조는 그를 적자의 귀재라며 경영 실패의 책임을 묻고 있다. 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에 대한 말 바꾸기는 아직 생생하다.
이런 정 사장은 진보좌파진영의 주장처럼 ‘공영방송 수호자’가 아니라 ‘방송 장악의 상징’이다. 정 사장 교체는 그것을 걷어내는 첫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KBS 사장 해임권 논란은 좌파진영의 주장에 말려들어 정 사장을 ‘희생양’으로 만들기 쉽다. 그보다 정 사장의 지난 행적을 따져보자. 답이 명확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