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의 촛불 운동 탄압에 맞선다며, 구속자 석방·촛불 운동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한국 촛불 운동 방어를 위한 국제적 호소>에 13개국 143명이 서명한 호소문이 발표되었다. 노암 촘스키나 하워드 진과 같이 대표적인 미국의 좌파 지식인이 포함되어있어 친노좌파 매체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 14개국 중에 눈에 띄는 두 나라의 지식인 혹은 시민운동가가 포함되어있어 눈길을 끌었다. 필리핀의 허버트 도체나(남반구초점 활동가)와 방글라데시의 바드룰 알람(방글라데쉬 크리속 연맹 회장)이다. 대체 이 두 명의 인물이 그간 무슨 민주화 활동을 해왔는지 국제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정치 후진국 필리핀과 방글라데시 인사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걱정한다?
그럼 해당 국가로만 이야기해보자. 필리핀의 경우 한국보다 월등히 앞서있던 경제를 파탄을 내버린 마르코스 독재 정권 이후에 경제와 민주주의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부정축재로 구속되어 종신형을 받은 바 있는 영화배우 출신 대통령 에스트라다가 다시 정계 복귀를 시도할 수 있는 수준의 나라이다. 이런 에스트라다를 군부와 결탁하여 끌어내리며 대통령직을 승계한 현 아로요 대통령은 최근 하원의원직에 도전하겠다고 나서며 필리핀 정계를 흔들고 있다. 6년 단임제인 필리핀의 경우 아로요 대통령은 상원과 하원의원 선거와 함께 치르는 내년 6월 대통령 선거 이후 임기가 종료된다. 야당 측은 아로요 대통령이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역시 군부의 힘을 이용하여 의원내각제로 개헌, 영구집권을 할 것이라 걱정하고 있다. 3권 분립이나 권력분점은 애초에 통하지도 않는 정치 후진국인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1971년 독립한 뒤 1975년 군부가 쿠테타로 집권한 뒤, 단 하루도 정치적으로 조용한 날이 없는 나라이다. 끊임없는 쿠테타가 벌어지고, 선거 때마다 부정이 일어나 권력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대체 필리핀의 허버트 도체나라는 인물과 방글라데시의 바드를 알람이란 인물은 어느 수준의 민주주의를 논하고자 한국을 민주주의 후퇴국가라 비판하고 나섰을까.
이들은 하워드진, 촘스키 등과 함께 발표한 성명서에서 “우리는 이명박 정부와 경찰에게 한국 민중의 민주주의 권리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연행된 촛불 운동의 지도적 회원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 경찰은 즉각 김광일과 강민욱에 대한 수배를 해제하고 진보 단체에 대한 감시도 중단하라”라고 요구했다.
이번 성명서가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벌어진 촛불선동 사태 진압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들의 참여는 넌센스이다. 필리핀의 경우 2007년 모든 월령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가했다. 필리핀의 허버트 도체나라는 인물은 상대적 선진국인 한국의 민주주의를 논하기 전에 필리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부터 펼쳐야했다.
촘스키와 하워드진은 미국산 쇠고기 안먹고 있는가
촘스키와 하워드 진 같은 미국 좌파 지식인의 경우도 넌센스이긴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미국 내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물론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떠나 자유로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민주 국가의 국민의 권리가 박탈당한 것을 문제삼고 있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래도 순서가 틀렸다. 촛불사태의 원인과 시위 주도자나 선동가들이 이로 인해 법적 처벌을 받게 된 이유도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거짓과 과장과 왜곡 때문이었다. 촘스키와 하워드 진이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판단을 내려서 위험하다면 일단 미국 내에서 촛불시위를 일으켜 자국 쇠고기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 남의 나라 일은 그 다음이다. 만약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한국의 친노좌파 측에 “미국산 쇠고기는 나도 매일 같이 먹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알려주었어야 했다. 거짓이든 왜곡이든 모든 집회와 발언은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상식 이하의 주장을 하지 않을 바에는 말이다. 참고로 미국의 촛불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뚫고 백악관으로 진격했다면 죽도록 두들겨 맞고 죄다 구속되었을 것이다.
물론 문제는 이들의 성명서를 메시아라도 나타난 듯 요란스럽게 보도해댄 한국의 친노좌파 지식인과 언론의 수준이다. 촘스키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지식인들은 그에게 한국사회의 시민운동과 진보좌파진영의 나아갈 길을 질문했다. 그는 “그건 당신들의 나라 일이니 당신들이 더 잘알 것”이라 답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촘스키와 하워드 진이 광화문은 물론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확장된 촛불사태에 대해 뭘 알겠냐는 것이다.
한국과 북한을 자신의 미국 공격에 악용하는 촘스키
촘스키와 하워드 진은 미국의 제국주의 팽창을 비판하는 인물들이다. 특히 촘스키는 미국이 무력으로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며 자주 경고를 하고 나선다. 미국의 지식인이 미국을 비판한다는 것은 그의 사상적 자유이다. 그러나 촘스키는 단지 미국 비판에 멈추는 것이 아니고 최근 들어 자주 남한과 북한 등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려 한다. 그것도 일방적인 북한 체제의 옹호이다. 촘스키는 미국에 대한 증오가 너무 지나쳐 한국과 북한을 자신의 미국 공격에 이용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즉 촘스키는 한반도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말든 일단 자신의 목표인 미국에 해만 끼치면 된다고 보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촘스키의 선동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국내 정치와 국제정치에서 발 한번 잘못 디딜 경우 민족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인 반면, 촘스키의 미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지식인의 책임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참고로 하워드 진은 촘스키와 비교하면 북한 체제 비판도 함께 하는 편이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책임감이 없는 촘스키를 마치 메시아로 모시는 친노좌파 진영을 사대주의자들이라 비판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조차 촘스키에 물어보는 수준의 사람들이니 오죽하겠는가.
필자는 친노좌파 진영 전체 정서가 반미라는 데에 그간 동의하지 않았다. 정치적 노선의 측면에서는 반미적 성향을 보일 수 있어도, 문화적, 지식 권력의 측면에서는 미국이라는 권위에 잔뜩 주눅이 든 사대주의자들이라고 늘 비판해왔다. 전체 정서가 반미라면 친노좌파 진영의 지식그룹 중 미국 유학파들은 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 유학파들이 이 진영에 득실거리고 있다.
군면제 위해 미국인 된 박경신의 왕성한 활동, 미국 숭상주의의 대표적 사례
이러한 친노좌파 진영의 미국 숭상주의가 극단화된 사례가 고려대 법학과 박경신 교수이다. 박경신 교수는 군대를 면제받기 위해 대한민국 국적을 버린 미국인이다. 그리고 박교수는 인터넷 정책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한 적도 없고 활동 경력도 없다. 이런 박경신 교수는 국내에서 인터넷정책을 주도해온 젊은 좌파 정책가들을 다 제치고 국회 미디어위 인터넷 위원으로 입성한다. 그가 미디어위에서 주장한 바도 ‘미국’, ‘미국’, ‘미국’이었다. 활동 과정에서 그가 미국인이란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참여연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박경신 교수가 중국인 혹은 일본인이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친노좌파 지식인들과 언론의 지향성은 반드시 미국이라기 보다는 서구이다. 물론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박노자와 같이 “중국경제에 편입되어야 한국이 생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독특한 인물도 있지만, 다수는 아니다. 이들은 유럽이나 미국이 19세기와 20세기에 급속히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부작용을 비판하는 서구 좌파 지식인들의 낡은 주장을 베껴온다. 그리고 이를 이제부터 제대로 된 성장을 시작해야할 대한민국에 적용시키려 한다. 한반도는 물론 중앙아시아로 경제와 문화영역을 넓혀가야하는 대한민국의 젊은세대의 꿈을 “한국이 제국주의화 되고 있다”고 싹을 잘라버리는 선동을 하는 것도 이들이다.
비싼 돈 들여 미국과 유럽에서 유학을 했으면서도, 이들은 좀처럼 미국과 유럽에서는 활동하지 못하고, 오직 한국에서만 미국과 유렵의 낡은 사상을 도입, 한국만을 지배하려 들 뿐이다.
서구 사대주의에 잔뜩 물들어있는 친노좌파 지식인들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는 진실이 있다. 어차피 똑같은 낡은 좌파사상가들인데, 촘스키는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반면, 한국의 친노좌파 지식인들은 국내에서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유 말이다. 촘스키는 미국인이고 친노좌파 지식인들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미국보다 더 크게 성장하면 당신들도 촘스키처럼 멋 부릴 수 있다. 촘스키를 숭배할 시간에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고 있으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