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미디어 환경은 정치-경제 선진화의 걸림돌”미디어의 왜곡, 편향 문제에 대한 경험들
  • 뜨거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진 후 미디어의 사회적 역할과 규제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미디어에서 주관적 가치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왜곡과 편견의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관심이다. 대중의 생각과 선택에 대한 미디어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커진 시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 조언을 얻기 위해 트위터팀이 나섰다.

    지난 2월 일부 언론을 통해 영화작가 최고은 씨가 굶어 죽었다고 알려지며 한국의 문화 복지 정책에 뭇매가 가해졌다. 그러나 그녀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기아가 아닌 지병이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여전히 양극화 사회의 증거로 거론된다. <'최고은 작가 요절 - 생활고로 인한 아사 충격>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가자 그녀에게 특수한 지병과 우울증이 있었다는 기사의 일부 내용은 간과되어 버린 결과이다.

    최고은씨 관련 왜곡보도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예술인의 생활을 배려하도록 한국의 문화 복지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에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미디어의 왜곡․편향은 때로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를 가열시켜 국가의 정책까지 뒤흔들었던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미디어는 그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즉각적으로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이에 대한 진위 판별과 허위 보도에 대한 제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에 대한 고소 고발에 무죄판결이 내려지자 미디어의 왜곡․편향 보도를 규제할 방법은 없다며 걱정한다. 그러나 미디어에 대한 사법적 규제에 대한 신중론도 있다. 미디어는 왜 중요한가? 왜곡과 편향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원인과 대책은 무엇인가? 경제-경영 분야 전문가로서 특이하게 미디어 문제에 관심과 애착을 갖고 일하는 중앙대 박찬희 교수의 의견을 여쭈어보았다.

    방송 진행 경험 통해 미디어 고유의 가치에 관심
     
    선진화 홍보대사(이하 <선>) 교수님은 경영학을 전공하셨다고 아는데 미디어를 주제로 인터뷰에 응해주시는 것이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특별히 미디어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찬희 교수(이하 <박>) 어려서부터 신문, 방송을 가까이 했습니다. TV 켜놓고 공부하고, 신문 보면서 밥먹고 그런 식이었지요. 기업과 정부에서 일하면서 미디어의 중요성에 대해서 새삼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제가 대우그룹에 있었는데, 유학파견 기간 중에도 중요한 회사 일들을 좀 했습니다. 이 때 세상을 참 많이 배웠는데요, 특히 미디어가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긴 방송사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도 했군요. 중앙인사위원회 근무할 때나 그 후 여러 가지 정부 일을 하면서도 그랬습니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 역시 미디어와 밀접할 수 밖에 없었고, 심지어 미디어에 휘둘리는 현상도 목격했습니다. 좋은 말 하면 되는 언론, 여기 영합하는 정치인이나 일부 학자, 전문가에 비해서 정부나 기업은 늘 악역이 되곤 하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연히 방송 일을 하게 되면서 미디어 고유의 가치와 보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MBC 손에 잡히는 경제>와 <TBS 박찬희의 생활경제>를 진행하면서 나름 최선을 다해서 기사 선택이나 논점설정에 참여했고, 몇몇 TV 프로그램에 나가면서도 출연 뿐 아니라 기획, 제작에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 정권 초중반엔 사실 경제나 기업정책이 상당히 흥분된 기조로 가서 많은 분들이 걱정하곤 했는데, 작게나마 다른 목소리를 내고 정론을 지켜보려 한 점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즘은 다들 잊었지만 당시엔 제법 용기 있다고 화제도 되고 격려도 받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예상보다 일찍 그만두기도 했지만요. 최근에는 경제-기업관련 다큐멘터리를 직접 기획, 제작하고 있습니다. 저로선 다른 분들 책 쓰는 것과 비슷한 일인데, 세상에 나만 하는 일이라 ‘업적’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없네요.

    단순한 출연자가 아닌 컨텐츠 기획-제작자로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미디어에 대해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하게 된 셈인데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직접 미디어 분야 공부를 해서 MBA과정에 기업전략과 미디어, 정부관계에 대한 과목을 직접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컨텐츠 기획과 제작에 참여하며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직접 몸으로 익히고 여기에 새로 공부를 더했습니다. 느끼고 공부한 내용을 방송 멘트와 신문 컬럼으로 얘기한 것도 많은데요, 제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다 정리되어 있어요.

    사실 우리는 대기업 구조조정본부나 기획조정실의 인력과 예산의 절반을 대언론, 대정부, 대국회 관계에 쓰고 있는데, 경영학 하는 사람이 이런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생소하다는 현실이 더 답답한 일이지요. 미디어나 정치를 경영에서 다루는 것이 생소하다고 여기는 관행은 현실을 모르는 일입니다.
     
    자신의 본래 의도가 왜곡 보도된 사건으로 미디어의 문제도 체험
     
    <선> 2008년 교수님의 개인 강의록이 빼돌려지고 이를 일부 미디어가 기사화하며 곤욕을 치르신 것으로 압니다. 이 사건의 내막이 뭔지, 교수님의 본래 의도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박> 마침 촛불집회 당시에 좀 흥분된 분위기가 보도에 반영된 면도 있다고 봅니다만, 저로선 참 답답한 일입니다. 그 후로 프로그램 출연 섭외가 끊겨서 요즘은 제가 만듭니다. 우리 미디어 환경의 문제를 많이 담고 있는 사례니까 좀 길게 설명해 봅시다.

    우선, ‘공무원 교육자료’라고 기사를 썼던데, 그건 관련 이슈에 대해 수년간 제 생각과 취재결과를 담은 제 개인 파일입니다. 이런 제 개인 파일들이 여러 분야에 2~30개 있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책도 쓰고 강의도 합니다. 혼자 참고하는 내용이니까 여기 저기 들은 얘기나 감상을 담고, 때론 험한 말 그대로 쓰기도 합니다. 잡기장 성격도 있지요. 곳곳에 보듯이 완성된 내용도 아니고, ‘생각해 볼’ 내용들을 그대로 옮긴 부분도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몇몇 직원들과 ‘공공갈등과 정책홍보’에 대해 문제가 무엇이고 홍보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같이 논의하면서 이 개인 파일을 몇 장 열어서 보고 지운 것이 유출된 것입니다. 게다가 당일 Talk에서는 해당 기사에서 문제 삼는 내용들은 말한 적도 없어요. 사회적 의제형성과 논의에 있어 ‘합리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언론에 대한 바른 정보제공과 협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핵심이었습니다.

    사실 문제 삼는 페이지들은 ‘같은 회사도 어떤 말로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는 예를 들 때 쓴 것인데요. 한국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의견이고, 사람들의 마음에 담겨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함께 생각해 볼 얘기들이지 100% 저의 생각도 아니었지요. 제 개인적 의견이 궁금하십니까? ‘대중이 멍청하면 어떤 정파에 의해서건 이용당하기 십상이고 민주주의는 위협 받는다’가 제 소신입니다. 안 그러려면 모두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파일에는 ‘이런 저런 다양한 말들도 있다’는 ‘생각해볼 거리’도 있습니다. 소제목을 잘 보시면 알 수 있는데, 생각보다 파워포인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많더군요. PPT자료는 full text가 아니라서 전달의 뉘앙스나 어투, 인용의 방식 등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논문'과는 다릅니다. ‘김일성 만세’라고 써있다고 합시다. 찬양고무를 한 것인지 이런 이상한 말도 있다는 것인지는 들어 봐야 압니다. 그런데, 마치 밀봉교육장에서 들이대며 '대중은 무식하니 세뇌해야 한다'고 떠든 것처럼 나간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미디어에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분들의 행태에 대한 제 나름의 반발도 들어 있습니다. 반어법적 tone도 있고 ‘위악적’ 표현도 있습니다만, 이것도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멍청한 대중을 조작/영합’, ‘잘 꾸며서 재미있게 꼬드기면 바로 세뇌 가능’과 같은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는 대중이 선동의 먹잇감이 될 수 있으니 경각심을 가지라는 얘기입니다. 표현이 다소 거칠었다는 지적이 있는데, 제가 본래 ‘위악적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하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도 군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실은 백성에게 군주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알리기 위해 쉬운 말로 썼다는 해석도 힘을 얻고 있지요.

    <선> 그렇다면 이렇게 일정 부분 왜곡된 측면이 있는 보도가 왜 발생했으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박> 이 사건에는 미디어 관련 연구자나 실무자에게 생각해볼 점들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편집의 문제입니다. 기자는 해당 기사에 제 반론을 실었습니다. 편집과정에서 제목이 세게 나갔지요. 제목 편집은 언론사 고유의 권한이라고 해서 어지간하면 언론중재나 소송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내용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하는 것도 언론의 권한인데, 당시 상황에서 정파적 의도가 담겼다면 나쁘지만 속사정은 제가 알 수 없네요. 더 큰 문제는 제목만 보고 흥분하거나 네편 내편 가르는 세상입니다. 우리 편 얘기니까 맞다는 진영논리가 작동하면 이건 선동이 됩니다.

    둘째, 제 개인 파일을 어떤 이유에선지 빼돌려서 언론사에 제공한 분이 있다고 합니다. 정부 고위관계자들 얘기에 양념으로 얹었다가 어떤 계기로 제 관련 기사만 커졌더군요. 아무튼 자체 감사에서도 조치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분의 의도와 사정을 잘 모르지만 아무튼 저도 관련된 일이라 착잡한 맘도 있어요. 최근에 심지어 도감청 자료를 보도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는 판결도 있던데...

    의도적 편파·왜곡 보도, 처벌과 자정기능
     
    <선> 현재 언론의 의도적인 편파∙왜곡 보도에 대한 법적 처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는 것인지, 있다면 왜 적용시키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 기본적으로, ‘언론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법적으로 제한하기가 매우 곤란한 부분입니다.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 의도적 편파∙왜곡인지 나름의 편집방향이고 표현의 자유로 보호할 대상인지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처벌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죠. 미디어 생태계에 자정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 다양한 미디어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 설사 조금 잘못된 얘기가 나와도 바로 잡히기가 쉽지요. 그리고 독자와 시청자가 세상 이치와 미디어의 속성에 대해서 제대로 잘 알아야 편파-왜곡을 판단하고 선동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이른바 Media Literacy라는 개념입니다.

    진실을 책임져야 할 전문가 집단이나 사법부까지 미디어에 휘둘리거나 아예 같이 편을 짜서 ‘정치’를 하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최근 사법부에서도 이런 가능성을 막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답니다. 미디어 비평이 중요한 이유기도 한데요, 기업의 제품은 잘못 만들어 팔면 리콜도 하고 소비자 보호제도도 있지만 미디어 쪽은 그렇지 못합니다. 미디어비평은 미디어의 소비자인 독자와 시청자의 판단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일종의 품질보증 과정인데, 미디어 비평 매체나 관련 단체가 편가르기에 나서면 정말 곤란합니다. 회사로 말하면 회계감사나 품질인증의 잣대가 엉망이 되는 셈이거든요. 진영논리가 작동하고 성역과 금기가 생기면 본연의 역할을 못하지요. 신문, 방송의 미디어 비평 코너가 과연 제 역할을 하는지도 반성해볼 시점입니다. 미디어가 현실적으로 역량이나 여건이 부족해서 못하는 면이 있다면 연수기회든 취재지원이든 도움을 제공해도 좋다고 봅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공무원 강의내용도 이 부분이 핵심이었습니다만….

    한국사회에 기득권 구조가 존재하고 권력과 금력, 언론권력의 유착이 존재하느냐? 어려운 얘기입니다. 이런 유착이 존재하므로 이에 맞서는 연대와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부 타당한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연대와 조직이 나름의 정파적 집단성을 갖고 진영논리로 움직이면 이것도 문제입니다. 또 다른 기득권과 유착이 생기는 셈이거든요. 리비아의 카다피가 반미라는 이유로 숭고한 지도자로 묘사되다가 난데없이 민중을 짓밟는 독재자가 되었던데, 실은 반미라는 진영논리적 코드가 시작점이 아닐까요?  북한이나 대기업, 노조에 대한 접근도 비슷합니다. 일단 누구 편인지 금을 긋고 심지어 선악을 나눠서 쓰기 시작하면 사실은 다 사라져 버립니다. 결국 답은 미디어의 다양성, 소비자인 시청자-독자의 인식과 판단, 미디어와 종사자에 대한 바람직한 지원과 비판이라고 믿습니다.

    미디어의 잘못이 밝혀지고 바로 잡히는 합리적 기제(mechanism)가 필요해

    <선> MBC PD 수첩이 의도적으로 허위 자료를 근거로 왜곡된 보도를 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를 가열시켰다, 이렇게 언론이 거짓 정보로 대중을 선동해서 국가적 무질서를 초래하고 정책을 뒤엎어선 곤란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특정성향을 가진 정치 집단이 악의적으로 언론을 조종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박>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의도는 검증이 어려운 속마음의 문제입니다. 나쁜 의도로 행위를 하면 잘 안되거나 오히려 벌을 받는 세상을 만들어야지요. 경제학에서 다루는 메카니즘 디자인의 핵심입니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편은 뉴스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입니다. 특정 논점을 두고 사안을 구성하는 제작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다분히 주관적입니다.

    사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뉴스와 비슷하지만, 제작의도에 따른 구성과 편집이 있기 때문에 객관성, 중립성의 요건에서 다릅니다. 예능이나 드라마가 막강한 영향력을 가져서 하루 아침에 스타를 만들고 역사인식을 뒤흔드는 세상에선 사실 이쪽 분야에서의 아이템 설정이나 구성, 편집도 생각해볼 점이 많고, 뉴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다양성과 중립성에 어려운 점이 있지만, 아무튼 논점을 좁혀 봅시다.
     
    <PD 수첩>은 뉴스가 아닌 다큐멘터리니까 ‘다양한 논점들을 완벽하게 균형 잡지 못했다’는 지적은 무리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한 특정 관점에 따른 내용을 문제 삼는 것은 적어도 다큐멘터리에 대해선 바람직하지 않아요. 언론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다양한 견해 또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다큐멘터리를 뉴스로 생각하는 시청관행이나 분위기입니다. ‘보도’가 뭔지도 정의가 애매한데, PD수첩에 뉴스보도에 주는 상까지 준 것이 타당한지도 궁금합니다.

    다큐멘터리 하나가 정치와 지식사회를 흔들고, 매우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나가게 만들었다? 세상이 그리 만만한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면 다른 미디어는 왜 제대로 견제와 균형을 못했으며, 시청자의 비판능력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그 많은 전문가들은 다 무엇을 했을까요? 내용을 잘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겁이 나서 숨었거나, 공연히 나서서 찍히기 싫었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가 눈치를 보고 미디어도 우왕좌왕 하니까 똘똘 뭉쳐서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 앞에 나설 엄두가 안 났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논란이 된 강의에 간 이유도 도대체 홍보 하는 분들 처지는 어떤가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무엇이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단, 거짓말이면 곤란하고, 정치적 의도를 갖고 정파적 연대의 도구로 쓰면 더욱 곤란합니다. 그런 정치적 의도와 배경이 있다면 그것부터 밝혀야 합니다. 미디어 종사자와 감시자들이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역할을 못했다면 그 원인을 찾아서 고쳐야지, 프로그램 하나 갖고 요란을 떨어봐야 달라지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여론다양성과 ‘잘못이 밝혀지고 바로 잡히는’ 합리적 mechanism이 문제 해결의 핵심입니다.

    ‘1인 미디어 시대’,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감 가져야
     
    <선> 웹 2.0 세대가 되면서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했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1인 미디어’는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활용하여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사회적 논의의 장에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그러나 뉴스편집자가 사회적 기능을 고려해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게이트키핑(Gate keeping) 과정이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때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며, 또 그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 개인의 목소리가 새로운 전달수단을 통해서 대중에게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에 일부 동감합니다. 인터넷에서는 개인의 의견이든 한 언론사의 기사이든 거의 같은 비중으로 검색되기도 하니까요. 물론 포탈의 사업방향이란 변수가 있긴 하지만. 그런데 글 쓰고 말하는 개인이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자각하고 있느냐?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영향력 있는 인사가 블로그나 트위터에 민감한 얘기를 해 놓고는 나 혼자 한 얘기 갖고 왜 난리냐고 한다면 정말 무책임합니다. 자유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남들 앞에 자기 얘기를 하는 일은 원래 매우 조심스럽고 힘든 일이 아닌가요? 신문 칼럼 맡아서 대충 듣기 좋은 얘기를 겨우 1~2시간에 써대는 분들을 저는 경멸합니다. 테러는 세상이 내 얘기를 안 들어줄 때 하는 마지막 방법이란 얘기도 있는데, 수십만 독자들에 대한 자신의 기회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짓이지요.

    이른바 게이트키핑이 없는 공간에서 책임의 문제는 더 중요합니다. 익명성이 약자의 특권이라는 말도 하던데, 아주 무책임합니다. 약자는 아무데나 돌 던져도 된다는 얘기와 같잖아요? 세상에 자기 얘기를 할 때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과 정 반대가 됩니다. 누가 만든 제품인지도 알아야 리콜이든 소비자 보상이든 할 수 있고, 다음부턴 그 사람이나 회사 제품은 조심하게 되잖아요? 미디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1인 미디어 시대를 얘기하면서 간과하는 면이 있습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모든 미디어를 다 접할 수가 없지요. 그러면 자칫 보고픈 내용만 보는 ‘자기충족적 노출경향’이 더욱 강해집니다. 더 폐쇄적 논의구조로 가는 셈입니다. 가뜩이나 진영논리가 작동해서 성역과 금기가 있고, 여기에 정파적 이해까지 얹혀 혼란스러운데, 한쪽 얘기만 듣고 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건 대기업의 홍보자료와 협찬이 담긴 기사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민족 찾고 수출 찾으면, 또 봉사활동 사진 내면 그럭저럭 넘어가는 식으론 곤란합니다. 반대로 무작정 대기업 트집 잡고 별 것 아닌 내용을 요란하게 떠들면 먹히는 식도 곤란하지만요. 바로 스스로가 ‘멍청한 대중’이 되어서 ‘선동의 밥’이 되는 꼴입니다.

    한국사회의 어른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미디어에 대해 잘 모릅니다. 강력한 통치자가 시키는 일을 요령껏 잘 해서 성공했지만 자기 가치와 주장을 세상에 제시하고 힘을 만들어 가는 데는 취약하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물론 요즘 사람들은 말만 많다는 냉소적인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아무튼 9시 뉴스와 1-2개 신문의 기사만 열심히 보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 사람들이 이상해졌다고 놀랍니다.

    국사학계에 문제가 많다고 하는 어른들, 언제부터 국사에 관심을 가졌나요? 몇몇 라디오 프로그램 한탄하는 분들, 사실은 듣지도 않다가 신문에서 뭐라고 하면 그때서야 몇 마디 거들지요. 직접 나서서 바로잡는 사람들에겐 눈길도 안줍니다. 잘 모르기도 하고, 시청률 40%짜리 뉴스에만 익숙해서 가랑비에 옷 젖는 것 모르기도 하고….

    지금의 민주화된 정치-사회구조에서 대중의 마음과 미디어를 모르는 것은 옛날에 군사와 전쟁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 등 새로운 미디어가 특정 계층이나 집단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걱정을 한다면, 먼저 새로운 미디어를 이해하고 그 공간에서 잘못을 바로잡고 자기 의견을 펴는 일이 우선입니다. 옳든 그르든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는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 불편하고 머리 아프다는 식으로 가면 유감스럽지만 늘 한탄만 하다가 끝나게 됩니다.

    미디어 환경과 미디어 리터러시, 경제와 기업에 왜 중요한가?
     
    <선> 미디어환경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그러면 이런 문제들이 왜 경제와 기업에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는지요?

    <박> 큰 나라엔 큰 인물이 많더란 얘기가 있습니다. 큰 인물과 그의 생각이 살아남는 나라가 잘된다는 얘기지요.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정책이 제시되고 논의되는 과정은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사회적 자본’이지요. 미디어는 이 과정의 핵심입니다. 교묘한 논리와 왜곡된 증거로 트집만 잡으면 이건 소통이 아니라 선동입니다. 무책임한 이상론, 반짝 처방은 미디어의 속성에 잘 맞지요. 하지만 문제를 더 꼬이게 합니다.

    제가 방송을 맡았을 때 이자제한법에 대해 문제를 지적한다고 반서민적이란 지적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이자제한을 두면 신용이 축소되어서 어려운 분들이 고통 받는다고 하면, 아무튼 서민 편드는 일에 토를 다니 반서민적이고 방송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던데요. 사실 이런 식의 복잡한 논리를 금기시하는 것이 방송현실입니다. ‘왔다 갔다 누구 편인지 모호하다’는 얘기죠. 그런데, 세상이 그리 간단할까요? 서민을 위해 수능을 쉽게 내달라는 진행자의 당부에 그러겠다는 입시 담당자 얘기도 들었습니다. 입시 문제가 그렇게 간단합니까? 가난한 수재가 과외 받는 부잣집 애들에게 더 불리해지는 면도 있잖아요? 이런 식으론 허공에 침 뱉고 마는 마당놀이판 말뚝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대충 ‘서민을 돕자’는 식으로 가면 약자의 모습을 잘 연출하는 집단만 이득을 봅니다. 바쁘고 힘들어서 모여서 외칠 시간조차 없는 사람들만 골탕을 먹죠. 이런 식의 논의가 미디어를 통해 제기되고 국회를 통해서 증폭되고 있습니다. 국회는 미디어와 표의 현실에 약하니까요. 면책특권이 있어서 어지간한 일엔 부담도 없습니다.

    전문가 집단도 미디어에 휘둘립니다. 아예 미디어와 함께 스스로 정치를 하는 경우도 있지요. 진영논리가 작동하고 성역과 금기가 나오면 모든 일이 정치가 됩니다. 손해는 정보와 밑천이 짧은 사람들만 보지요.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는 정책들이 가난한 사람을 더 어렵게 하는 이유입니다.

    대중매체에서, 경제를 다루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따뜻한 소식, 가슴 뭉클한 사연도 많은데 냉정한 시장의 논리를 얘기하니까요. ‘불편한 진실’이 됩니다. 재래시장의 정감을 얘기하면서도 마트에 가는 허위의식을 건드립니다. 비정규직의 아픔은 없어야 한다.  철거민과 노점상은 어쩌란 말이냐… 얼마나 속 시원한 혹은 아름다운 얘깁니까? 하지만 현실의 더 깊숙한 사연과 여기에 얽힌 이해관계, 그리고 당장 눈에 안 보이는 비용 부담과 배분을 얘기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선동에 불과합니다.

    물론, 당장 답답한 마음에 말이라도 시원하게 해주는 일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당놀이 판에서 나랏일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말뚝이가 내뱉는 짜릿한 말들이 버젓이 ‘정론’이 되고 전문적 정책논의까지 흔든다면 이치에 안 맞는 정책만 계속 나오고 좋은 말로 포장된 집단이기주의는 성역과 금기로 자리 잡아서 권력이 됩니다. 말뚝이는 스타가 되겠지만 잠시 속 시원한 대가는 누가 부담할까요? 대충 민감한 논점은 빼고 그럴듯하게 서민 운운하며 포장만 요란한 방송, 여기 나와서 우아한 얘기만 하는 분들, 곡학아세, 혹세무민입니다. 나라 망치는 역적질이지요. 이런 판에 늘 악역을 맡는 정부 공무원들이 참 대단한데, 불행히도 요즘은 여기도 눈치만 보는 분들이 늘고 있다니 걱정입니다.

    솔직히 이런 얘기는 욕먹기 딱 좋고, 실익이 정말 없습니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마 이런 얘기 함부로 안할걸요? 미디어 동네의 현실적 힘에 맞서야 하고, 막상 뭔가를 고치려면 미디어장악, 여론조작이란 오해를 받기 쉽습니다. 당장 폼 나고 권세가 붙는 일을 떠들어야 한자리 얻지, 이런 사회의 기본 구조를 바꾸는 일은 아무도 안 하려는 한가한 짓이 됩니다.

    신문, 방송의 화려한 경력을 가진 분들에겐 친정집의 고민을 들추는 일이 될 수도 있네요. 저 같은 사람이 하면 넌 경제, 기업 얘기나 하지 뭘 안다고 이런 일에 나서냐는 말도 나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미디어의 가치를 믿고 잘사는 세상을 바란다면 이래선 안 됩니다. 바람직한 정책이 나오고 검증되려면 사회적 논의의 장인 미디어 환경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곡학아세, 혹세무민, 왜곡과 편견은 진영논리가 만든 성역과 금기에 서식하는 암세포입니다. 대중의 무지와 무관심은 그 자양분입니다.
     
    인터뷰: 선진화 홍보대사 김혜선, 김진희, 명화연, 정준호, 지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