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전망 상향으로 AA- 등급으로 도약 기대해외 자금조달 및 금융시장 외국인 매수세에 긍정적
  •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가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긍정적'(positive)으로 올린 것은 글로벌 재정위기 속에서 한국의 대외 및 재정 건전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등급 전망의 상향 조정에 따라 향후 등급 자체의 한 단계 도약을 기대할 수 있어 국내 기업의 해외 자금조달 여건 개선과 국내 금융시장의 외국인 매수세 유입 등의 긍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대외ㆍ재정건전성 우수…거시지표도 견실해

    이번 상향 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우선 우리의 대외건전성이 강화된 점이다.

    우리나라의 외화보유액은 10월 현재 3천110억달러로 금융 위기 당시 2008년 8월 2천432억달러보다 28%나 늘어나 단기적인 자본 유출에 대응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외채 대비 단기 외채의 비율이 2008년 9월 51.9%에서 올 6월 말 현재 37.6%로 떨어져 구성 면에서도 안정성이 높아졌고, 은행의 단기 외채도 같은 기간 1천594억달러에서 1천161억달러로 27% 감소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10월에 중국, 일본과 연이어 통화스와프의 규모를 확대해 외환유동성을 늘린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아울러 선물환포지션 규제, 외환건전성 부담금 등 우리 정부가 취한 규제방안도 긍정적으로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의 건전한 재정운영도 피치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통합재정수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4% 흑자를 기록, 2009년 재정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 전 세계 6개 국가 중 하나였다.

    향후 재정 건전성도 양호하다. 2011~2015년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보면 관리대상수지 기준 재정수지는 올해 GDP 대비 2.0% 적자, 2012년 1.0% 적자에서 2013년에 재정균형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경제의 회복력도 상향 조정에 일조했다. 2008년 4분기부터 2009년 2분기까지 GDP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으나 2009년 4분기 6.3%, 지난해 1분기 8.5%, 2분기 7.5%로 올라서며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

    피치는 우리 경제가 높은 대외의존도로 인해 글로벌 경제 여건변화에 취약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수출기업의 높은 경쟁력과 탄력적인 환율제도가 취약성을 크게 완화시킨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전쟁, 체제붕괴 등 대북 위험요인이 발생하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겠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전망했다.

    ◇2008년과는 달라진 한국, 등급 상향 디딤돌 되나

    미국의 재침체 우려와 남유럽 국가의 재정 위기 등으로 인해 세계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등급 전망이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대외ㆍ재정건전성이 인정받았다는 방증이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재정 위기국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깎인 상황에서 등급 전망이 상향 조정된 점이 그렇다.

    특히 피치와 '악연'을 떠올려보면 이번 평가의 의미가 남다르다.

    피치는 '리먼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08년 11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내려 우리나라는 위기 우려 국가로 낙인찍혔다.

    이를 전후해 주요 외신들의 '한국 때리기'와 '9월 위기설', '3월 위기설' 등 각종 루머에 시달리며 우리나라의 금융ㆍ외환시장이 요동을 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3년 후 위기 상황이 재차 닥쳤을 때 피치는 우리나라의 펀더멘털을 다르게 평가하며 등급 전망을 오히려 올렸다.

    게다가 등급 전망이 '긍정적'으로 바뀔 경우 이르면 6개월, 통상 1년 내외로 등급 자체도 상향조정되는 전례를 비춰보면 내년께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AA-로 한 단계 오르는 것도 기대해 볼 수 있다.

    피치는 우리나라의 등급 상향 조건으로 내년에 만기 도래하는 657억달러 상당의 외채에 대한 대응, 가변적인 글로벌 경제환경에서 높은 대외의존도, 가계부채 문제 등을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 세 가지가 우리나라의 위험요인이면서도 이를 잘 해결한다면 신용등급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외채 가운데 2009년 당시 적자 국채 발행에 따른 것이 159억달러, 은행 차입이 251억달러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과 은행의 건전성을 볼 때 내년 상환을 걱정할 여지는 없다"며 "다만 가계부채 문제는 단기적으로 개선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차관보는 또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나라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우리는 수출 시장 다변화 등으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피치에 설명했다"며 "세계 경제가 얼마나 안 좋아지고 우리가 이를 어느 정도 소화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피치의 평가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무디스의 향후 평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S&P와는 10월에, 무디스는 지난 5월에 각각 연례협의를 마쳤다. S&P는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며 무디스는 현행 등급을 유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외신인도ㆍ차입금리에 긍정 영향

    피치의 등급 전망 상향은 주식 및 채권시장, 기업의 차입 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8월 이후 재정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채권시장과 달리 주식시장에선 유럽계 자금을 중심으로 외국인 자금이 빠져 증시의 변동성이 높아졌다.

    이번에 국제신용평가사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나쁘지 않음을 국제적으로 '인증'한 셈이니 시장의 투자심리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한ㆍ중, 한ㆍ일 통화스와프 확대에 이은 또 하나의 호재로 기업들의 차입 여건도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한ㆍ일 통화스와프 체결 발표가 있고 나서 석유공사가 10억달러 규모의 해외 공모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8월 이후 글로벌 재정위기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안감 확대로 아시아 시장에서 신규 채권 발행이 없다시피한 상황에서의 성과였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국내 외환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호재가 나와 더욱 긍정적"이라며 "신용등급 전망의 상향 자체는 실물경제보다는 금융시장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