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정책 혼선·통상 리스크에 '위기론' 확산용인 산단 이전 논란부터 中 추격·美 관세 변수까지입지·전력·인력 불확실성 겹치며 삼성·SK 부담 가중'성장' 아닌 '생존'의 문적 … 경쟁국과 격차 커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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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 클린룸 전경ⓒ삼성전자
한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위기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기술을 넘어 통상·정책·입지 문제까지 번지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국가 핵심 프로젝트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이전 논란이 불거지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구조적 기술 추격과 미국의 대중 관세 변수까지 겹치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반도체 위기론'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분위기다.'남부 반도체 벨트' 발언에 흔들린 용인 클러스터위기의 출발점은 정책 신호의 혼선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신년사에서 "에너지가 풍부한 남부의 반도체 벨트부터 인공지능 실증도시와 재생에너지 집적단지까지 첨단산업 발전이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산업을 포함한 첨단 산업을 남부 지방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으로 최근 논란이 된 '용인 반도체 산단의 지방 이전'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문제는 발언의 해석 여지다. 해당 구상이 기존 용인 클러스터를 이전하는 것인지, 별도의 신규 산단 조성인지 명확히 제시되지 않으면서 업계와 지역 사회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50년까지 480조원을 투자해 용인에 반도체 공장 10기를 건설할 계획이며 이미 토지 보상 절차까지 시작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입지 변경 가능성이 거론되자 투자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전기가 생산되는 곳으로 기업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언급한 점도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후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새만금 등 지방 이전론이 확산되며 용인 클러스터의 향방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전력·인력·용수 3중고" … 입지 경쟁력 훼손 우려반도체 업계는 이전론을 두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력, 인력, 물류, 용수 등 반도체 팹 운영의 핵심 조건을 고려하면 수도권 입지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수도권은 국내에서 송전·변전 인프라가 가장 촘촘하게 구축된 지역으로 0.01초의 순간 정전에도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전력 안정성과 계통 유연성에서 타 지역과 비교가 어렵다는 평가다. 대규모 발전원과 연계한 HVDC(직류송전망) 구축도 진행 중이어서 장기적 전력 수급 안정성 역시 확보돼 있다.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반도체 산업은 공정 기술, 장비 운용, 연구·개발(R&D) 등 고급 인력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다. 업계에서는 지방 이전 시 석·박사급 핵심 인력의 이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대만 TSMC 역시 대량 생산기지는 남부에 두되 첨단 공정과 R&D는 타이베이와 가까운 신주에 집중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 언급된다.물류와 용수 여건 역시 수도권이 우위다. 국내 반도체 수출의 96%가 인천공항을 통해 이뤄질 정도로 항공 물류 의존도가 높고, 용인 클러스터는 한강 수계를 배후에 둬 대규모 공업용수 공급이 가능하다.지방 정치권도 가세 … '새만금·진안' 주장 확산대통령과 장관이 불을 지피자 지방 정치권의 목소리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전북 진안군의회는 이날 반도체 국가산단을 새만금 RE100 산업단지로 이전하고, AI 데이터센터를 진안에 유치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공급과 탄소중립 목표를 이유로 들며 기존 수도권 중심 입지 전략의 전환을 요구한 것이다.군의회는 장거리 송전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송전선로 건설 갈등을 문제 삼으며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를 동시에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논의가 산업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첨단 반도체 공정은 재생에너지 비중뿐 아니라 전력 품질, 인력 접근성, 글로벌 공급망과의 연결성이 동시에 요구되기 때문이다. -
- ▲ SK하이닉스 HBM3E 12단 이미지ⓒSK하이닉스
통상 불확실성 속 '속도전' … 韓 기업 부담은 여전정책 혼선과 입지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외 환경 역시 한국 반도체 산업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통상과 기술을 동시에 겨루는 속도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한국의 대응 여건은 녹록지 않다는 평가다. 미국의 대중 관세 정책은 유예와 재개 가능성이 공존하는 불안정한 상태를 이어가고 있고,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자금과 장기 전략을 앞세워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일본은 라피더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연합 체제를 구축하고 정부와 민간 출자를 결합해 2027년 2나노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TSMC 역시 일본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확충하며 일본 내 AI 반도체 생산 기반을 확대 중이다. 중국도 미국 제재 속에서도 반도체 자립화 전략을 멈추지 않고 있다. YMTC는 HBM 시장 진출을 추진하며 한국이 주도해온 고부가 메모리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中 기술 추격 가속 … '생존'이 키워드로중국의 추격은 단순한 생산 확대를 넘어 구조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YMTC의 HBM 진출 시도와 함께 화웨이, 캠브리콘 등은 범용 GPU 대신 ASIC 중심의 AI 가속기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단기간에 엔비디아를 따라잡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영역부터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중국 정부의 정책 자금도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은 반도체 산업 보조금과 금융 지원을 포함해 2000억~5000억위안 규모의 추가 정책 패키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와 메모리뿐 아니라 장비, AI 서버, 데이터센터, 전력·네트워크 인프라까지 포괄하는 전방위 지원이 논의되고 있다.기술 유출을 통한 추격이 현실화된 점도 부담이다. 삼성전자 출신 인력들의 기술 유출 사건 이후 중국 CXMT는 10나노대 D램 양산에 성공했고, 이로 인한 삼성전자의 매출 감소 추정액만 5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기술 격차가 줄어들수록 가격과 물량 경쟁 압박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韓 지원은 제한적 … '반쪽짜리 대응' 지적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 대응은 경쟁국과 비교해 속도와 강도 모두에서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특별법에는 클러스터 지정과 인프라 구축 등이 담겼지만 업계가 요구해온 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는 끝내 반영되지 않았다.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이 연구·개발이라는 점에서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입지 문제는 비용이 아니라 경쟁력의 문제"라며 "일본과 중국이 수십조원 단위 지원과 제도적 유연성으로 산업을 밀어붙이는 것과 달리 한국은 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들이 부담을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이제 업계 키워드는 '성장'이 아닌 '생존'"이라며 "기술 경쟁과 통상 리스크, 정책 혼선이 동시에 겹친 지금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 가장 어려운 국면"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