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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만든 따끈한 두부가 나왔습니다~!”
하얀 앞치마에 빵모자를 쓴 사장님이 두부 판을 진열대에 내려놨다. 줄을 서 기다리던 손님들은 “저 김이 올라오는 것 좀 봐”라며 탄성을 쏟아냈다.
이른 아침 8시, 이맘 때면 서울시 망우동 우림시장에 있는 충남즉석두부 가게는 손님들로 바글거린다. 갓 나온 두부를 사기 위해 일찌감치 모여드는 것이다.
우림시장에서 15년째 두부가게를 운영해온 서해권 사장 (54) 은 매일 새벽 6시부터 두부를 만든다.
콩을 갈아서 걸러내기까지 약 2시간의 과정을 거치면 먹음직한 두부가 완성된다. 아침 8시에 땡 하면 나오는 즉석두부는 이 집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하루에 찾는 손님만 해도 300~400여명을 웃돈다. ‘한번 먹어보면 잊기 힘든 맛’ 이라는 것이 손님들의 설명이다.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들도 많다. 근처에 살다가 이사를 간 사람들도 충남즉석두부를 사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고 한다.
충남즉석두부의 또 다른 대박비결은 ‘담백함’이다. 서 사장은 두부 본연의 담백한 맛을 살리기 위해 3년 동안 연구에 몰두해왔다. 두부 만드는 데만 하루를 꼬박 보내는 일이 다반사였다.
“두부를 놓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어요. 재료의 양과 농도를 달리하면서 최고의 맛을 연구했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즉석두부다. 식감도 적당히 살리면서 고소함을 극대화 시켜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서 사장은 주방 아래쪽에서 낡은 노트 몇 권을 가져오더니 “두부 맛을 연구하면서 적은 것”라고 설명했다. 손때가 묻어 누렇게 변한 노트는 그의 두부에 대한 애정을 증명해 준다.
“이 노트들이 벌써 15년이나 된 거예요. 두부를 만들면서 혹시 잊어버릴까 하고 이렇게 적어두면서 했어요.”
요즘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트를 꺼내본다는 그는 “이게 저의 가장 큰 보물이예요”라며 웃어보였다.그 동안 그는 두부가게가 아닌 대학 실험실에서 일하는 연구원처럼 15년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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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사장은 ‘두부 연구’를 해오면서 다양한 히트 제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보통 두부하면 네모 반뜻한 하얀 두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서 사장네 가게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두부가 진열돼 있다.
바로 ‘야채 두부’다. 겉은 흰 두부에 색 색깔의 점이 박힌 모습이다. 서 사장은 두부를 썰어 보이면서 “이 안에 보이는 주황색이 당근이고, 초록색은 파예요”라고 설명했다.
단백질 식품인 두부에 20가지 종류의 야채를 넣어 건강을 두 배로 챙길 수 있다는 것이 야채두부의 장점이다.
야채두부는 일반 두부보다 만드는데 1시간 정도가 더 걸린다. 서 사장은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더욱 건강한 두부를 제공하기위해 계속해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야채두부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보통 아이들이 야채를 잘 안 먹자나요. 엄마들이 야채도 먹이고 두부도 먹이려고 이거를 많이 사가요.” 손님들 3명 중 1명은 야채두부와 일반두부를 각각 한모씩 사갈 정도다.
서 사장은 “요즘은 야채두부가 대세죠”라며 호탕한 웃음을 날렸다. 그는 예전에도 뽕잎과 쑥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두부를 만든 바 있다. “손님들의 입맛이 가장 까다롭고 정확하다”는 그는 새롭게 두부를 개발할 때마다 고객들에게 직접 시식을 하고 의견을 청취한다.
입맛 테스트를 거쳐 시판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새롭게 내놓은 두부들은 거의 100% 성공률을 기록할 정도다. 손님의 변하는 입맛을 찾아내려는 서 사장의 노력이 인기상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충남즉석두부의 마지막 대박 비결은 ‘청결’이다. “두부는 잘 상하는 민감한 음식이라 조금만 관리가 소홀해도 안 되거든요.” 서 사장은 매일 영업을 마치고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청소를 한다. 여기서 하는 청소는 단순히 물청소만이 아니다. 식기와 두부 판을 일일이 삶고, 씻고, 증기로 소독까지 해야 끝난다.
서 사장은 “기구에 작은 이물질이 끼어있어도 맛은 쉽게 변질되죠. 만드는 것만큼 청소도 중요한 일이예요.”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가게 안쪽에 있는 두부제조기가 먼지 하나 없이 반짝였다. 무려 15년이나 된 기계지만 새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손님들은 깨끗한 주방을 보면서 안심하고 두부를 사 간다”고 그는 말했다.
귀찮을 법도 한데 서 사장은 지난 1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즉석두부’를 만들고 ‘청소’를 해왔다. 그러다보니 단골들은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두부 만드는 게 내 적성인가 봐요”라고 말하는 서 사장은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