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인들이 한국 관광만 왔다 하면 김을 사가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한국산 김만이 낼 수 있는 부드럽고 짭조름한 ‘감칠맛’ 때문이다.
건어물 전문시장인 서울 중부시장에서 김 하나로 일본 사람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가게가 있다. 33년째 김을 만들어온 ‘성진물산’이다.
오용배 사장은 “김 맛을 결정하는 것은 원재료의 충실함에 있다”고 말했다. “김은 원산지가 가장 중요해요. 밥을 지을 때와 마찬가지죠. 쌀이 좋아야 밥맛이 좋듯이 우수한 김으로 가공을 해야 제 맛이 납니다.”
국내산 김이라도 산지와 생산시기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다.
“서해안은 남해안보다 간만의 차가 심해서 물이 깊고 흐르는 속도가 빨라요. 이런 환경 덕분에 김이 먹고 자라는 영양염류가 많이 들어있어요. 서해안 김이 잘 먹고 잘 컸으니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요.”
오 사장에 따르면 서해안 김도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 남부와 중부, 북부산으로 나뉜다. 서해 남부에 위치한 신안 김이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이 집은 서해안 신안군 김만 취급한다.
“대기업들은 생산량이 많으니 국내산 김이면 따지지 않고 사용하지만 우리 집은 신안 물건이 아니면 들여오지도 않아요. 원산지를 꼼꼼하게 고르는 것이 맛있는 김을 결정하는 첫 번째 요건이죠.”
김의 ‘생산시기’도 중요하다. 김이 나오는 시기는 11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약 5개월. 그 중에서 오 사장은 가장 맛이 좋다는 1~2월에 난 김을 사용한다. “겨울에 난 김이 더 맛있거든요. 저희는 1~2월에 1년 치 팔 걸 모조리 사다놔요. 소금 끼를 머금은 김을 불에 살짝 구워서 수분을 빼놓으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죠.”
아내 김금자 씨는 “남편이 원산지와 생산시기에 맞춰 김을 들여놓는 걸 한해도 빼놓지 않았어요. 이 돌김이 보기에는 똑같아 보여도 먹어보면 금방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바삭바삭하고 식감이 좋아요”라며 자랑도 잊지 않았다.
오 사장이 다져놓은 탄탄한 유통망은 대박집의 두 번째 비결이다. 골목 소매 장사로 시작해서 도매상으로 판매망을 확대시켰다고 한다.
“원래는 가게에서 직접 김을 구워 포장해 판매했어요. 김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10년 전부터는 공장에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
산지에서 김을 가져와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공장에서 가공 생산해 낸다. 공장에서 김을 만드는 과정도 오 사장이 모두 관리한다고 한다.
완성된 김은 명동과 남대문 일대 상점으로 팔려나간다. “일본인들이 우리 김을 좋아한다는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관광 코스에 도매 거래를 늘려갔습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상권은 거의 다 우리 김을 판매할 정도예요.”
김 장사에 잔뼈가 굵은 오 사장은 “일본 김은 두껍고 맛이 없어요. 이 돌김은 적당히 얇고 바삭바삭해서 일본사람들이 좋아한다”며 차이를 설명했다.
김은 포장 4개 묶음에 3,500원. 그는 “가격이 월등하게 저렴하지는 않지만 품질에 비해 싸다”고 덧붙였다. 가게는 작고 허름하지만 매달 3,000~4,000만원의 매출을 낸다.
“골목 뒷켠에 있는 작은 가게지만 동네 주민들뿐 아니라 일부로 찾아오는 단골들이 많아요. 오래 장사를 하다 보니 사이가 가까워졌죠. 저희 집 김이 맛있다고 또 찾아올 때 가장 뿌듯합니다. 이제 다른 욕심은 없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맛있는 김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습니다.”
33년간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온 중부시장 ‘김 대감’의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