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2세 자금 확보 위한 편법 기업 매매에 개미 투자자는 [곡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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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굴지의 레저 회사 <D그룹>.

    이 기업의 가업을 이어받은 세 명의 남매.
    흔히 재벌 2세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세 남매는 지난 2008년 함께 새 회사를 차린다.
    회사의 지분은 아들이 70%, 두 딸이 각각 15%씩 나눴다.

    모 기업의 자금이 출자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계열사로 분류할 수는 없지만,
    오너와 직계가족이 모든 자금을 냈기 때문에 사실상 계열사로 볼 수 있다.

    콘서트 등 컬처테인먼트와 외식-유통-항공 여행 등이 주요 사업이다.
    다양한 사업 분야로 보이지만, 주력 사업은 기업소모성자재(MRO)를 전문으로 거래한다.

    모 기업이 운영하는 리조트에서 마트를 운영(유통)하는 등, D 기업과의 내부 거래가 전체 매출의 62%(2011년)에서 100%(2009년)에 이른다.

    한창 말 많고 탈 많은 대기업 내부거래의 대표적인 사례다.

    자영업자 폐업률이 50%를 훌쩍 넘어가는 요즘 서민들이 보기에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 2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회사를 운영하는 세 남매는 설립 4년만인 2012년 11월 회사를 매각했다.

    3억을 투자한 회사를 무려 198억이라는 거액에 파는 [마술]을 부렸다.
    액면가 5천원에 불과한 회사가 주당 33만원으로 평가됐다.
    무려 66배가 뛴 셈이다.
    모 기업의 계열사에 팔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사를 판 재벌 2세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70% 지분을 가진 아들이 139억원, 두 딸이 각각 30억원씩이다.
    3억원이 4년만에 198억원으로 [뻥튀기] 된 셈이다.

    위 사례는 그동안 대기업 오너가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쓰는 [흔한 편법]이다.


    # 3

    재벌 2세 세 남매가 이처럼 큰 돈을 벌었다면, 누군가는 [손해]를 봤다는 얘기가 된다.
    바로 [놀라운 가격]으로 회사를 인수한 기업에 투자한 개미 투자자들이다.

    세 남매의 지분을 산 회사는 D 그룹에서 유일하게 주식시장(코스닥)에 상장된 회사.
    자사주 비율이 절반이 넘는 곳이다.

    가뜩이나 연속 적자를 기록하던 이 회사는 갑자기 198억원이나 되는 현금을 지불하면서 재벌 2세 소유 회사를 사들이는 바람에 사정이 더욱 악화됐다.
    이것이 주식시장에 부정적 평가로 받아들여지면서 기업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주당 5천원에 육박하던 가격이 3천원대 초반으로 폭락했다.
    4달만에 벌어진 일이다.

    기업 가치를 보고 투자했단 개미 투자자들은 예상치 못한 일에 엄청난 손해를 봐야만 했다.

    지난해 11월 3일 4,990원이었던 주가가 매매 과정을 거친 뒤인 올해 3월 13일 3,250원으로 떨어지는 동안 시가총액 350억원 가량이 공중으로 증발했다.

    자사주 규모가 50%를 조금 넘는 것을 감안하면, 세 남매가 챙긴 198억원의 돈은 대부분 개미 투자자들이 떠안았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이 회사에 투자한 한 개인 투자자는 “3억 주고 차린 회사를 계열사 물량으로 몸집을 키운 뒤 문제가 될 만하니까 배를 불리고 팔아치웠다”며 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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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 경제민주화,

    재벌 횡포 잡을 수 있나?

     

    결론적으로 재벌 2세가 수백억원을 버는 동안 소액 개미투자자들은 수백억원을 잃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사건을 [불법]으로 규정하기 애매하다는 점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운동부터 꾸준히 강조해온 [경제민주화]의 논점은 바로 이런 점에서부터 출발한다.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가겠다.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민주화가 이뤄져야만 한다.
    공정한 시장질서가 확립돼야만 국민 모두가 희망을 갖고 땀 흘려 일할 수 있다.”

        - 朴 대통령 취임사 中

     

    하지만 재벌들의 편법적 자산 불리기는 이미 관행화된 부분이 많다.

    앞서 나열한 <D그룹>이 아니더라도 대기업간 내부거래는 거대 자본의 시장 지배를 [합법화]시켜왔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46개) 내부거래 현황에 따르면 계열사 간 내부거래 규모가 186조원에 달했다.

    특히 삼성(35조원), SK(34조원), 현대차(32조원), LG(15조원), 포스코(14조9000억원) 등 매출 상위 5개 그룹들의 내부거래 금액 합계는 전체의 70.9%에 달한다.
     

  • ▲ 박근혜 대통령 ⓒ 자료사진
    ▲ 박근혜 대통령 ⓒ 자료사진



    새 정부 의지는 높지만…

     

    “그동안 죄를 짓고도 돈이나 권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망을 피해가거나 가볍게 처벌받는 경우가 많았다.”
         - 朴 대통령 5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재벌들의 편법과 횡포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개선 의지는 상당히 높다.

    대선 공약과 인수위 정책백서 등에서도 이런 문제를 꼬집은 정책을 언급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박 대통령 스스로도 취임 후 여러 발언을 통해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를 여러 차례 언급해 왔다.

     

    “앞으로 사회 지도층의 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주가를 조작하거나 회사 돈을 횡령하는 경제사범이 제도나 시스템이 미비해서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큰 문제.”

    “경제사범의 범죄수익은 끝까지 추적해 회수하길 바란다.
    (경제범죄를 저지르면) 확실하게 손해를 본다는 것이 확립되면,
    수많은 잠재적인 범죄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의지에 비해 뚜렷한 정책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는 게 [딜레마]다.

    대표적인 것이 국세청이 추진 중인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세법 개정이다.

    정부는 내부거래의 비중이 전체 매출액의 30%를 넘으면,
    초과분에 대해 증여세를 물리는 현행 상속·증여세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된 것도 아닌데다, 재벌들의 거센 반발로 실현 가능성도 밝지 않다.

    D 그룹에 대한 청와대 경제 참모진들의 의견도 사람마다 달랐다.

     

    “이 사례를 과연 [범죄]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지만,
    대기업의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세법 개정을 통해 개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 청와대 고위 관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