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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사진) 전 한국은행 부총재가 한은 신임 총재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채권시장이 지난 3일부터 이틀 연속 큰 폭으로 상승했다.
채권금리가 오른 것은 이 신임 총재 내정으로 금리 인하 기대감이 낮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장의 기대와 같이 이 내정자가 이끌어 갈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지 주목되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중수 현 총재는 기준금리를 2.50%로 9개월째 동결시키며 '김중수 금리'라는 말을 만들었다.
이 내정자는 김 총재와 사건마다 의견 차이를 보이며, 퇴임식 날 폭탄선언을 하는 등 반기를 들었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이 내정자가 김 총재와 동일한 기조를 보이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김 총재는 세계 주요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전방위 압박에도 불구하고 금리 동결을 이어가는 등 '강성'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이 내정자는 비교적 소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한국은행의 통화신용 정책뿐만 아니라 정부 및 시장과의 소통 문제도 원만하게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통 한은맨'이면서도 그동안 정부와의 정책 조율이나 시장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왔기 때문이다. 부총재 시절 청와대 서별관회의(경제금융점검회의)나 벙커회의(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한은 인사로 참여한 만큼 기획재정부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한은 역사상 가장 독립성을 강조했던 이성태 전 총재 체제 하에서 통화정책 담당 임원으로 정부 및 시장과 소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 지원과 한은의 독립성 확보라는 과제를 떠안은 이 내정자.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금융시장에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한은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 이주열은 '매'일까, '비둘기'일까?
'매파'는 인플레이션 억제에 가치를 두고 금리인상으로 물가안정을 꾀하는 반면 '비둘기파'는 경제성장을 중시해 재정지출 확대 또는 금리인하를 유도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주열 신임 총재 내정자를 두고 매파인지 비둘기파인지 명확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 부총재로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의 궤적을 살펴보면 금리 인상을 강하게 주장하는 매파나 금리 인하를 선호하는 비둘기파로 분류되기보다는 '중도파'의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김상훈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 내정자는 중도파로 분류됐는데, 이는 부총재이다 보니 총재와 뜻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고 소수의견을 안 낸 배경도 있다"면서 "2010년까지는 인하기였는데 이성태 총재는 매파로 인식돼 같은 성향으로 분류됐고, 2011년부터는 인상기였는데 김중수 총재는 인상을 주저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직전,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사례를 소개하며 "과거 이 내정자가 부총재일 당시는 매파로 분류됐지만, 한은 총재와 의견을 같이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주열의 한은은 '매'나 '비둘기'의 입장을 고수하기보단 본연의 임무인 물가안정에 원칙적으로 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동락 한화투자증권 채권 연구원 역시 "이주열 내정자의 통화정책은 특정한 성향을 따르기 보다 객관적인 수치나 증거를 중시할 개연성이 크다"면서 "하반기 경기가 추세 수준의 성장 경로를 회복하면 올해 기준금리는 인상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 빠른 금리인상은 어려울듯
현재까지의 분위기를 봤을 때 금리인상은 '시기의 문제'로 보인다.
문제는 최근 물가상승률이 1%대로 떨어지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오고 있고, 경기가 겨우 회복세에 접어든 상황이어서 금리인상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 내정자가 곧바로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청와대는 한은 총재 인선 배경과 관련, "중앙은행의 전통적 역할인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할을 고집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경제지표가 나아지고 있다며 섣불리 금리인상에 나섰다가 경제를 망쳐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경제전문가들은 국내 경기 상황이나 해외 금융시장, 우크라이나 사태, 가계부채 문제 등을 종합해 금리를 내리거나 올리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진단했다.
이정범 한국투자증권 채권 연구원은 "이주열 신임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가 선명한 성장주의자가 아니어서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가 좀 잦아들겠지만, 누가 온다고 해서 기준금리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며 "청문회의 그의 발언을 우선 지켜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금융연구원 박성욱 박사 역시 기준금리 기조에 변화가 있겠느냐는 질문에 "한은에 총재 한 분 만 계신 것이 아니고 여러 분들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총재 한 명 바뀌었다고 당장 기조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계엽 IBK경제연구소 팀장은 "대외적인 여건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라서 금리를 내리기에는 부작용이 많을 것 같고 하반기로 갈수록 양적완화 축소와 관련해 금리를 올려야 될 상황들이 많다"며 하반기 쯤 금리인상이 단행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기준금리를 25bp씩 한 차례 두 번 정도 인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관련 이 내정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 테이퍼링에 따른 한국 금융시장의 영향과 금리인상 논의 전망 등의 질문에는 "제 한마디가 시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금리정책 등에는 일절 말씀을 드리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한편, 국회 기재위는 오는 19일 이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 계획이다. 이 내정자가 청문회를 통과할 경우 대통령 임명 절차를 거쳐 한은 총재로 최종 임명된다. 이주열의 기준금리는 청문회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