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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저성장 기조 장기화로 위기에 빠진 생명보험업계가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생명·한화생명에 이어 교보생명도 희망퇴직을 접수한다.
교보생명은 23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15년차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시행하고 인력감축은 다음달 말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명예퇴직 대상자는 2300여명으로 교보생명 전체 직원 약 4700명의 절반 수준에 달한다.
교보생명은 매년 말 입사 15년차와 20년차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아 40~50여명 수준의 인력을 감축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은 2002년 이후 12년 만이다.
앞서 삼성생명도 전직지원, 희망퇴직, 자회사 이동 등으로 10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력 감축을 최근 마무리 지었다.
한화생명도 5년 만에 인력을 감축하기로 하고, 전직 지원 프로그램과 희망퇴직 등을 통해 300여명을 줄였다.
◇ 저금리·저성장으로 역마진 심각
생보업계 '빅3'인 이들 동시다발적으로 인력 감축에 나선 이유는 저금리·저성장 기조 장기화에 따른 수익률 부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저금리·저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고금리·장기상품에 대한 부담이 크다"며 "장기적인 대비책으로 구조조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생보업계는 현재 역마진 구조에 빠진 상태다.
지난해 말 국내 생보사의 보험료 적립금 평균 부담금리는 5.2%인 반면 운용자산 이익률은 4.5%에 그쳤다. 0.7%의 역마진이 발생한 것.
보험료 적립금이란 보험 계약자에게 향후 지급해야할 보험금과 환급금 등을 위해 보험사들이 쌓아놓는 책임준비금을 말한다.
보험사별로는 삼성생명이 2013회계연도(2013년 4~12월) 평균 부담금리가 5.31%, 운용자산이익률이 4.6%로 0.71%p의 역마진이 발생했다. 한화생명은 평균 부담금리 5.57%, 운용자산이익률 5%로 0.57%p의 역마진을 기록했으며 교보생명은 평균 부담이율이 5.4%, 운용자산이익률 4.9%으로 0.5%p의 역마진이 났다.
대형 생보사들이 역마진에 시달리는 것은 지난 2000년대 이전 판매했던 연 6.5% 이상의 고금리 확정상품 때문이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적립금 중 고정금리로 돌아가는 비중은 각각 48.5%, 57.1%다. 생보사들은 2000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확정이율상품을, 이후에는 변동이율상품을 주로 판매했다.
조재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생보사의 고금리 금리확정형 비중이 줄고는 있지만 만기 도래를 가정한 준비금이 여전히 지급예정금에 비해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라며 "현 금리가 유지된다면 모르겠지만 하락세가 나타날 경우 수년 내 심각한 역마진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보험사들이 실적악화 및 자산운용의 어려움에 닥치자 업계 내외부에서는 생존을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빅3 생보사들의 인력감축도 이 같은 대책의 하나로 분석된다.
일본 생보업계에서는 지난 1997년 일본 내 자산규모 15위였던 닛산생명을 시작으로 도호생명, 다이하쿠, 다이쇼, 지요다, 교에이 등 7개사가 도미노 파산한 바 있다.
이들은 저금리 현상으로 역마진이 커지고 자산운용에서 손실을 거듭하며 간판을 내렸다.
◇ 중소형 생보사들까지 확산될 분위기
아직까지 중소형 생보사들의 구조조정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미래에셋생명과 동양생명은 당분간 조직개편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ING생명도 내부적으로 조직개편을 계획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역마진 현상이 대형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중소형사들도 인력 감축에 동참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 생보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 구체적인 방침을 발표한 중소형사는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구조조정을 계획 중인 회사들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