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이사회 다시 열기로… 봉합 여부 미지수
  • ▲ 국민은행 경영진 사이의 내홍은 결국 수습되지 못했다. 사진은 23일 출근하는 이건호 행장 모습. ⓒ 연합뉴스
    ▲ 국민은행 경영진 사이의 내홍은 결국 수습되지 못했다. 사진은 23일 출근하는 이건호 행장 모습. ⓒ 연합뉴스

    국민은행 경영진 사이의 내홍은 결국 수습되지 못했다.

국민은행 이사회는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27일 다시 회의를 열어 논의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사진 갈등 사태의 수습여부도 다음 주로 미뤄질 전망이다.

◇ 갈등 봉합 실패… '27일에 다시'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23일 국민은행 여의도 본점에서 열린 긴급 이사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7일 감사위원회와 이사회를 다시 열어 재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발언이다. 

이 행장은 “감사위원회에서 결론이 나오면 이사회에서 논의해야 하는데, 감사위원회를 다음 주에 다시 열기로 했으니 오늘은 결론이 날 수 없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금융권 안팎에서 최근 사태를 갈등과 분쟁으로 바라본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분쟁이나 갈등으로 볼 이유가 없다. 이사회가 늘 거수기라고 비판하다가 토론이 이뤄지니까 갈등이라고 하느냐"고 반박했다.

이어 "이사들끼리 모여 은행에 가장 좋은 방안이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결론을 도출해 가는 과정이지 갈등으로 보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주 전산시스템 교체 일정에 대해서는 "4월 24일 내린 이사회 결정은 여전히 유효하므로 입찰은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행장이 은행을 나선 뒤 40분쯤 지나 1층 로비로 나온 사외이사들은 이날 논의와 관련해 말을 아꼈다. 김중웅 이사회 의장은 "다음주에 결론이 날 것"이라고만 말할 뿐,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을 꺼렸다. 

이날 긴급 이사회에서는 이 행장과 정병기 상임 감사가 내부 감사보고서 문제로 마찰을 빚은 사외이사들과 합의도출을 위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날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탓에 사태수습은 다음 주 이후로 미뤄지게 됐다.

◇ 노조 "물러나라" 이건호 "지금은 아냐"

이날 오후 이 행장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제1노조) 성낙조 위원장, 노조 간부 30여명과 만나 두 시간 가량 면담을 했다.

노조는 이날 오전 10시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은행의 주 전산기 변경과 관련한 내부 갈등은 내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오히려 갈등을 외부에 표출하는 경영진의 무능력함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 행장의 사퇴를 주장했다.

제1노조와 만난 자리에서 이 행장은 최고경영자(CEO)로서 이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하고, 일선 직원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노조의 사퇴표명 요구에 대해서는 "마음으로는 이해하지만 CEO로서 당장 표명하기가 쉬운 상황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제1노조는 금감원의 특별검사와 별개로 자체 진상 조사단을 꾸리기로 했다. 성 위원장은 "자체 진상 조사단이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날부터 KB금융 지배구조 개선과 자주성 회복을 위한 투쟁체제에 돌입해 지주회사 체제 재정립,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의한 지배구조 확립, 관치 낙하산 문제의 해결방안 마련을 촉구할 방침이라고도 했다.

이에 앞선 오전 8시 경, KB국민은행노동조합(제3노조)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낙하산 인사"라고 규정하고, "이 행장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책임지고 당장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3노조는 농성 과정에서 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진입을 시도하다가 청원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제1노조와 달리 제3노조는 경영진과의 만남을 성사하지 못했다. 제3노조는 "제1노조는 합법이고, 우리는 불법이란 말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 다음주 된다고 갈등 풀릴까

금융권 일각에서는 23일 열린 이사회에서 갈등 국면이 진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다. 갈등 발생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은 데다, 금감원의 집중 검사가 목전으로 다가오는 등, 국민은행을 둘러싼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전날인 22일 이 행장이 이사회와 비공개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갈등 해소 전망엔 더욱 힘이 실렸다.

그러나 다음 주 이사회를 다시 하기로 결정되는 등 이 같은 갈등 국면은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이사회에서 갈등 해소의 실마리가 잡힌다 해도, 이를 갈등의 최종적 해결이라고 보긴 어렵다.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일시적 효과는 있지만 △전산시스템 교체에 문제가 있다는 감사보고서의 진위 여부 △금융감독원의 지주 및 은행 특별검사 △이 과정에서 퍼지고 있는 리베이트 의혹 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병기 은행 감사 주장대로 전산시스템 교체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주가 은행 의사결정에 개입했거나 문서조작 등의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면 지주 쪽에 치명타다. 

반대로 별 문제가 없었다면 이 행장과 정 감사측에 큰 상처를 입힐 전망이다. 전산시스템 교체와 관련한 진실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서 지주·은행 경영진 어느 한쪽은 책임을 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갈등 국면 종료 여부와 상관없이 금융당국은 KB지주와 국민은행에 대한 집중 검사에 돌입할 예정이다. 갈등이 봉합되더라도, 이 같은 갈등이 생겼다는 사실 만으로도 내부통제가 심각할 정도로 안되고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인식이다.

금감원은 원칙에 따라 검사를 진행해 문제가 밝혀지면 임 회장과 이 행장을 제재하겠다는 계획이다. 두 수장의 책임이 밝혀질 경우, 이들은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