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 불안·자기 계발 한계…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 고용노동부가 부당해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근로자에게 법률상담 등을 해주려고 채용한 노동변호사와 공인노무사들이 지방노동관서를 떠나고 있어 제도 도입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최고 3대1의 경쟁률을 뚫고 채용됐지만, 전문직임에도 불안한 계약직 신분에 임금 체계에 관한 불만 등으로 이들의 이직은 이미 예견됐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총 91명 배치 중 49명 남아 반 토막


    노동부는 2012년 점점 증가하는 임금체납과 해고, 산재보상 등 노동분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근로자의 다양한 행정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노동변호사와 공인노무사를 대거 채용했다.


    각각 50명 모집에 변호사 153명과 공인노무사 95명이 지원해 각각 3대1, 2대1의 경쟁률을 보였고 이 가운데 변호사 47명, 노무사 44명 등 총 91명이 전국 지방노동청에 배치됐다.


    하지만 13일 현재 남아 있는 변호사는 25명, 노무사는 24명으로 절반에 가까운 총 42명이 자리를 떠났다.


    서울권은 서울지방노동청 등 7개 관서에 변호사 9명과 노무사 10명이 배치됐지만, 지금은 변호사 8명과 노무사 5명이 남았다. 변호사는 1명만 그만뒀지만, 노무사는 반 토막이 났다.


    인천중부지방청은 애초 변호사 6명, 노무사 4명이 배치됐으나 현재는 변호사 1명, 노무사 2명만 남았다.

    부천, 고양지청은 남은 변호사와 노무사가 1명도 없다. 경기권 평택지청과 대전권 천안·충주지청도 배치된 변호사·노무사가 1명도 남지 않았다.


    ◇신분 불안·자기 계발 한계…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평균 2.5대1의 경쟁률을 뚫고 현장에 배치한 변호사·노무사가 2년도 채 안 돼 절반 가까이 그만두면서 이들을 채용한 본연의 취지가 퇴색한다는 지적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개별 노동분쟁은 날로 느는 가운데 남은 변호사·노무사는 업무 과중을 호소하고 그 여파는 상담을 받는 노동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평택지청처럼 변호사와 노무사 모두 그만둔 곳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각에서는 이들 변호사·노무사의 이직이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한다.


    일자리 창출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던 고용노동부가 전문직 일자리 창출에 나섰지만, 계약직 신분 등 근로조건이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노무법인 소속 K 공인노무사는 "2012년 현재 매년 250명의 공인노무사가 선발되고 있고 자격증 소지자는 3400명을 웃돈다. 변호사는 로스쿨 졸업생까지 합치면 지난해만 2000명 이상 배출됐다"며 "이들이 갈 데가 없어 노동부 공모에 응했지만, 근로조건이 좋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문자격증 소지자임에도 계약직 신분으로 일한다. 그렇다고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적용도 받지 않는다. 비정규직은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만, 이들은 예산확보 문제로 말미암아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처지다.


    노동부 관계자는 "신분은 기간제 근로자지만, 기간이 지났다고 임의로 내보내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K 노무사는 "사실상 정부가 정리하기로 하고 기간 만료 통보를 하면 끝"이라며 "전문직 종사자지만 신분이 불안한 셈"이라고 귀띔했다.


    임금 수준과 형평성 문제도 제시된다. 이들 계약직은 변호사가 300만원, 노무사가 200만원 선의 월급을 받는다.


    변호사는 소규모 법인의 통상적인 수준이지만,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가 400만~5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로스쿨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셈이다.


    한 노동변호사는 "법률적 지식만 놓고 보면 사법고시 출신과 로스쿨 출신이 실력에서 차이가 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라며 "변호사 월급으로 300만원이 높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노동 관련 법률상담을 하는 업무 특성을 고려할 때 노무사가 변호사보다 적은 월급을 받는 것도 논란거리다.


    K 노무사는 "사안에 따라 노동 관련 전문지식을 갖춘 노무사가 변호사보다 더 나을 수 있다"며 "같은 일을 처리해도 급여 수준은 낮은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자기 계발에도 한계가 있다는 견해다. 노무법인 소속 공인노무사는 상담을 통해 사건을 맡으면 업무처리 과정에서 노하우를 터득하게 되지만, 노동관서 배치 노무사는 상담 후 사건을 노동지청 근로감독관에게 넘기기 때문에 노동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근로감독관 보조 역할에 그칠 뿐 전문성 배양에 한계가 있다 보니 피해는 노동자가 감수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대전권에 배치된 한 공인노무사에게 부당전보와 관련해 상담을 받은 A씨(35)는 "부당전보로 다툴 거면 발령받은 근무지에 안 가도 된다는 조언을 받았다"며 "부당전보라 생각돼도 노동자는 일단은 해당 근무지로 가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판례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자문한 대로 행동했으면 낭패를 볼 뻔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공인노무사 K씨는 "(노동관서 배치 노무사가) 사건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으니 경험 부족으로 판단을 잘못했을 수 있다"며 "일부 노무사는 준 공무원화 되어 상담사건을 일찌감치 근로감독관한테 떠넘기거나 칼퇴근하는 사례도 있어 해당 기관에서도 (이들에게) 책임질 일은 잘 안 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전문자격증 소지자는 기간제법 적용을 받지 않아 신분이 불안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며 "임금 수준은 상향 조정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