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국 등 제조선진국 '파견근무제' 가능… 고용 환경 변화네델란드 노사 스스로 '임금인상 자제, 시간제 일자리' 도입 합의업계 "한국도 노동유연성 정착돼야 다양한 일자리창출 가능"
  • ▲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27일 독일의 제조업 상징으로 꼽히는 베를린 지멘스 가스터빈공장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조 캐져 지멘스 회장과 공장을 시찰하고 한국에 대한 투자 등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연합뉴스
    ▲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27일 독일의 제조업 상징으로 꼽히는 베를린 지멘스 가스터빈공장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조 캐져 지멘스 회장과 공장을 시찰하고 한국에 대한 투자 등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저성장의 늪에 빠져있다. 경제를 이끄는 기업의 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고용 문제'가 거론된다. 고용률이 높아지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기업이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로 가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범한 박근혜 정부도 고용률을 70%까지 높이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고용률이 국가 경제의 기반을 살리는 불씨가 된다는 판단에서다. 기업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시간제 일자리가 대표적인 예다. 경력단절 여성을 다시 사회로 불러들이기 위해 굴지의 기업들은 '시간제 일자리' 운영에 나섰다.

정부와 기업의 '고용률 늘리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고용률은 선진국보다 한참 뒤처진 상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1980년 이후 '5년 이내에 고용률을 5%포인트 이상 끌어올려 고용률 70%'를 달성한 나라는 독일, 네덜란드, 영국,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다. 

이들 6개국의 공통점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있다. 기업이 스스로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를 줄이는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다. 기업도 정규직 고용에 따른 부담이 줄어들자 근로시간 단축이나 기간제·시간제·임시직 등 다양한 고용 형태를 도입하게 됐다. 

다시 뛰는 대한민국으로 가려면 기업의 발전, 그 안에는 고용률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 제조 강국서 찾은 노동 유연성

선진국들의 노동환경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의 고용은 경직돼 있는 반면 미국이나 독일은 기업이 알아서 고용시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줬다. 

미국과 독일은 파견근로가 자유롭게 이뤄지고 기간제(계약직) 기간도 길다. 임금 유연성과 근로시간 유연성까지 보장되면서 기업들은 채용을 늘리게 됐다. 

세계인재서비스연맹(CIETT)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금근로자 중 파견 근로자의 비율은 0.4%다. 2%대 내외의 주요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일본, 독일은 지난 10년간 파견근로자 연평균증가율이 각각 6.0%, 10.9%다. 한국에서 금지해놓은 제조업 파견근무가 미국, 독일, 일본과 같은 제조선진국에서는 가능하다. 

파견 대상이나 기간에 대한 제한도 거의 없다. 일본은 항만운송, 건설 등에 일부 제한을 두지만 그 외에는 독일, 미국만큼 자유롭다. 노동유연성이 살아나자 기업은 파견근로나 기간제 일자리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 

한국의 행보는 1990년대 후반 이후 파견관련 규제를 완화한 주요국들과 상반된다. 한국도 제조업을 제외한 업종 32개에서는 2년간 파견근무가 가능하다. 하지만 제조업에서 파견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업계에서는 현재의 국내 파견법이 국내 노동 시장을 더 경직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도 제조업 파견근무를 허용하는 글로벌 움직임에 맞춰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경련 관계자는 "노동법과 사회제도가 전통적인 근로자 보호 영역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노사대등원칙을 준수해야 고용률이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고용률 70% 달성 위해 '시간제 일자리' 정착 필요

고용률을 끌어올리려면 시간제 일자리 정착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급한 과제다.

  • ▲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27일 독일의 제조업 상징으로 꼽히는 베를린 지멘스 가스터빈공장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조 캐져 지멘스 회장과 공장을 시찰하고 한국에 대한 투자 등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연합뉴스

  • 한국은행 경기본부가 최근 발간한 '경기도 여성 고용의 특징과 정책과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노르웨이와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복지국가 여성 고용률은 70%를 훌쩍 넘는다. 독일과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 등 OECD 국가의 대부분은 여성고용률 60%를 넘어선다. 

    유독 한국 여성 고용률만 50% 전후를 오가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가사와 육아 등의 이유로 30대와 40대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줄어든 탓이다. 

    선진국의 시간제일자리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국 고용시장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네델란드의 주요 고용모델로 성장한 시간제 일자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해외사례 연구'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전체 고용의 37.8%가 시간제 일자리다. OECD 평균 시간제 고용은 16.9%, 한국은 10.2% 정도다. 

    네덜란드의 시간제 일자리는 주 36시간 미만의 경우를 말한다. 짧은 시간제 고용(주 1~11시간)은 호텔이나 청소, 식당 등에 집중돼 있다. 이보다 긴 시간제 고용(주 12~34시간)에는 공공행정, 보건, 교육 등 양질의 일자리가 대거 포함돼 있다. 

    남성 전일제, 여성시간제라는 사회적 분업이 정착돼있는 것이다. 네델란드도 처음부터 고용시장이 유연하지는 못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까지는 남성외벌이 모델이 중심이 된 사회였고. 시간제 일자리의 질도 낮았다. 

    하지만 1980년대 초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은 네델란드는 기업과 근로자들이 스스로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노사정이 바세나르(Wassernar) 협약을 체결하면서 임금인상 자제, 노동시간 단축, 시간제 일자리 도입 등에 합의했다.

    기업은 고용 부담이 줄어들자 시간제 일자리 등으로 고용형태를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네델란드 은행권에서는 전체 직원의 18% 정도가 시간제 일자리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동연구원은 "1980년대에는 사용자측에서 시간제 고용의 도입 확대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면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비생산적 시간을 줄이고 시간제 고용의 사용에 따른 비용 감소 및 내부화, 시간제 고용활용 방법을 개선해 나감으로써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27일 독일의 제조업 상징으로 꼽히는 베를린 지멘스 가스터빈공장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조 캐져 지멘스 회장과 공장을 시찰하고 한국에 대한 투자 등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연합뉴스

  • ▲ 기업 스스로 일자리 만들어내야 

    정부가 기업에 압박을 가해도 일자리 증가에는 한계가 있다. 기업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내야지만 지속가능한 고용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기업에 '시간제일자리를 늘려라'는 주문보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고용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연한 노동시장을 강조하는 선진국의 고용구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한번 고용하면 해고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고용=고정비 지출'로 여기고 있다. 인력을 늘리면 기업 자체는 부담이 늘어나고 경기 침체에도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보니 신규인력 채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고용보호 정책은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막을 수밖에 없다"면서 "선진국의 유연한 노동시장 환경이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