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칸 라이언즈 필름 부문 수상작 '난 내 몸을 만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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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수의 크리에이티브 산책] 1990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록 그룹 디바이닐즈(Divinyls)는 '난 내 몸을 만져요(I Touch Myself)'라는 노래를 통해 여성의 자위행위를 묘사했다.
이 노래는 논란과 찬사 속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 여러 가수가 다시 부르고 이런 저런 영화에서도 사용됐다. 이 노래는 마침내 공익광고 필름에도 등장했다. 2014년 칸 라이언즈 필름 부문 동상을 받은 작품이다.
광고 속에 등장하는 것은 그러나 1990년 당시 디바이닐즈 멤버 나이대의 젊은 여자들이 아니다. 분명 아름답긴 해도 40세는 넘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들이 차례로 모습을 보이며 선정적인 노래를 한 소절씩 부를 뿐이다.
이들이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단지 그들의 나이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이들의 다소 슬픈 표정과 어깨를 드러낸 자태가 너무 아름답다. 이윽고 마지막 여성이 노래를 마칠 때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유난히 아름다운 마지막 여성의 모습이 줌아웃되면서 유방암 수술로 망가진 그녀의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유방암은 현대여성들에게 흔한 질병 중 하나다. 섭생이나 유전적 요인, 비만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유방암 발생 확률을 높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원인은 바로 에스트로겐이다. 에스트로겐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여성 생식기인 난소에서 만들어지며 우리가 흔히 여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의 2차 성징을 유도한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둥근 골반이나 도톰한 피하지방 등 여성 고유의 아름다운 모습을 완성시켜준다. 결국 에스트로겐 없인 유방도 유방암도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유방암은 조기에 발견하는 경우 예후가 좋은 편이다. 문제는 초기에 발견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
병원에 가면 한 팔을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 만져서 비정상적인 몽우리가 만져지지 않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해보라는 알림문을 흔히 볼 수 있다. '부부 금슬이 좋으면 유방암이 일찍 발견된다'는 항간 속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사실 중년여성들이 나신으로 거울 앞에 서서 자기 몸을 만져보려는 데는 부지런함 못지않게 용감함이 필요하다. 늘어지고 흩어지기 시작한 자신의 몸을 적나라하게 느끼고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늙어서도 상대방이 자길 사랑해주길 바라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유방암 자가검진은 가장 여성적인 신체의 일부를 스스로 어루만진다는 점에서 나르시시즘이나 자위행위와 유사하다. 그 자위행위가 내 생명을 지켜줄 수도 있다는데 몸이 늙어서 흉해졌다는 이유로 회피하거나 증오할 순 없는 노릇이다.
디바이닐즈에서 이 노래를 불렀던 크리스티나 앰플렛(Christian Amphlet)은 2013년 다름 아닌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중년여성들이 노랫말 그대로 자신의 몸을 스스로 어루만지며 사랑해야 할 이유를 확실히 알려주고 간 셈이다. 이 광고 필름은 오스트레일리아의 JWT 시드니에서 대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