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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개봉됐던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노인이 한 병실을 쓰면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간다. 예전 미국에서 교수형을 집행할 때는 사형수가 딛고 있던 양동이(버킷, bucket)를 걷어차서 올가미가 목을 죄이게 했다고 한다. 버킷 리스트는 바로 여기서 만들어진 말이다.
영화에서도 그랬지만, 버킷 리스트에 올렸다고 다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론 돈이, 때론 시간이 부족하다. 거동이 불편해 버킷 리스트를 비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다국적 이동통신 회사인 보다폰이 독일에서 집행한 광고 ‘버킷 리스트’에 나오는 노인이 바로 그런 처지다.
광고가 시작되면 십대 소녀가 사막을 횡단하고, 최고급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며, 카지노에서 거액의 칩을 건다. 소녀는 즐기는 것 같기도, 무서운 것 같기도 하다. 소녀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폭주족 아저씨들과 바이크를 타고, 버기카에 올라 황무지를 달리는 모습을 영상통화로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그 때마다 펜을 들고 목록에서 한 가지 항목씩 지워나간다.
그러나 어리고 연약한 소녀가 할아버지를 위해 ‘증강현실’ 앱(app) 노릇을 한다는 건 무리 아닐까? 소녀와 할아버지는 몸도 마음도 너무 다르다. 차라리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처럼 건장한 남자에게 부탁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사실 버킷 리스트는 추억을 위한 것이다. 영원히 바이크를 탈 수도 없고, 영원히 낙하산을 접은 채 자유낙하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평생토록 해보고 싶었던 일’이란 결국 ‘평생토록 간직하고 싶었던 추억’이란 말과 매한가지다. 그렇게 소중한 걸 생판 남에게 제공하긴 억울하다.
영화 ‘토탈 리콜’에서처럼 추억이나 경험을 나누는 데 꼭 고도의 뇌신경과학과 장비가 필요한 건 아니다. 언어나 영상만으로도 가능하긴 하다. 촉각, 온도, 바람과 같은 세세한 정보는 전달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 손실될지 몰라도,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적 정보는 오히려 증폭될 수도 있다. 특히 그게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이라면 더더욱.
소녀는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예전에 사랑하던 여인을 만난다. 할아버지는 소녀가 이젠 많이 늙어버린 자신의 옛사랑과 뺨을 맞대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광고 말미에 나오는 보다폰의 슬로건은 ‘당신에게 힘을’이다. 사랑하던 여인과 재회한 경험 – 혹은 추억 - 은 할아버지에게만 힘이 되진 않는다. 할아버지의 버킷 리스트를 비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겪은 그 수많은 감정들은, 할아버지에게 전달할 추억을 위해 입출력 장치와 통신장비 노릇을 해낸 소녀에게도 오랫동안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독일의 융 폰 마트(Joung von Matt)에서 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