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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기업결합승인을 기다리는 기업들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짧게는 한달, 길게는 2~3년이 넘도록 하염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수백억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굵직한 M&A건만도 10여건에 달하고 관련 기업도 20여개가 넘는다.
어렵사리 이룬 인수·합병 효과가 떨어진다며 기업들은 아우성이지만 공정위는 여전히 신중하다. 대부분 시장점유율이 50~90%에 달해 독과점의 폐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경쟁제한을 해소하면서 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도 함께 높일 수 있는 해법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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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한화, 다음-카카오, 롯데-대우百 '독과점의 덫'삼성-한화, 다음-카카오, 삼양-효성, 롯데백화점-포스코(대우백화점), MS-노키아, AMAT-TEL, 세아-포스코특수강, 현대제철-동부특수강, 동국제강-유니온스틸...목이 빠져라 공정위만 쳐다보는 국내외 M&A 기업들이다.
이중 삼성-한화의 방산·화학 빅딜이 가장 큰 관심사다. 금액만도 2조원에 육박해 외환위기 이후 가장 규모가 큰데다 재벌그룹간에 자발적 인수합병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걸림돌은 삼성 노조의 반발과 공정위의 승인여부다.
한화그룹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 등 화학 계열 2개사를 인수할 경우 EVA(에틸렌 비닐 아세테이트) 시장 점유율이 55%에 달해 공정거래법상 독과점 판단 기준을 상회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공식 출범한 공룡 IT기업 다음카카오도 '독과점의 덫'에 걸려있다. 시총규모 10조, 가입자 3400만명, 메신저 점유율 92% 이상의 거대 공룡기업 탄생이 모든 IT 온라인 산업을 통째로 빨아들일 것이라는 블랙홀 염려가 그것이다. 다음카카오는 지대(Rent)를 통한 '약탈적 경쟁'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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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로부터 인수한 대우백화점을 롯데백화점 마산점으로 바꿔 개점하려던 롯데쇼핑의 계획도 틀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업결합을 신고했지만 역시 독과점 논란에 휩쌓여 있다.
이미 롯데백화점 창원점이 지역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으로 또 하나의 롯데백화점 등장은 경쟁제한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공정위에 숙제안긴 삼양-효성패키징, MS-노키아, 에테리스삼양홀딩스의 효성패키징+삼양패키징 합병은 사모펀드(PEF)를 앞세운 새로운 형태의 M&A로 공정위에 숙제를 안겼다. 업계 3위 업체가 240억원을 들여 5000억원의 1+3위 경영권을 가져가는 독특한 모델로 시장점유율은 45% 수준이지만 내부거래와 협상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매각과 합병, 2단계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모펀드는 곧바로 치고 빠지고 삼양이 SPC 출자를 통해 경영권을 통째로 가져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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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와 노키아 결합건은 스스로 시정조치를 마련하겠다며 동의의결신청까지 했지만 공정위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않는 케이스다. 시장지배력 남용 가능성에 대해 발생 원인과 자율적 통제 가능성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벌써 두 해를 훌쩍 넘겼다.
특이한 것은 국내기업들의 반응이다. 다른 M&A건에 대해서는 승인을 재촉하면서도 MS-노키아 결합에 대해서는 최대한 늦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 1위와 3위 장비기업의 새로운 합병 법인인 에테리스(Eteris) 심사도 길어지고 있다. 두 회사는 시장점유율이 30% 수준이라는 주장이지만 국내 장비업계는 실질 점유율이 50%가 넘는다고 보고 있다. 장비기업 고사는 물론 반도체 제조사의 경쟁력도 약화될 것이라는 주장에 공정위의 고심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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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위 "독과점 우려 해소해야"공정위는 늘 조사와 심사, 의결이 늦다는 지적에 자유롭지 못한 입장이지만 M&A 심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우선 모든 기업들의 M&A가 심사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키고 싶어한다.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대기업군, 그 가운데 특히 경쟁제한적 요소가 많은 M&A가 대상이며 결합 신고전후 보완 보정기간을 두고 기업들과 충분히 협의하고 있다는 항변이다. 심사기간도 법정기일을 준수해 대부분 120일 안에 승인·조건부 승인·불승인을 결정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한해 평균 500~600건씩 접수되는 공정위 결합심사에서 99%가 그대로 승인을 받고 있다. 1%의 덫에 걸리는 기업들은 각종 경쟁제한성 우려를 채 해소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업 맞교환 및 인수합병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빚어지는 독과점으로 공정거래를 해치고 해당 비용을 경제주체에게 부담시키는 것도 막아야 한다.
공정위가 시장경제 파수꾼으로 거듭나기 위해 M&A를 통한 기업들의 혁신도 적극 지원하고 독과점 폐해도 막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펼쳐야 하는 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