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악당'들의 차로 이미지 메이킹...톰 히들스톤 기용


할리우드 영화 속 악당들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 타도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던 악당들은 언젠가부터 실력 면에서나 매력 면에서 주인공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가 대표적인 예다. 요절한 미남 배우 히스 레저가 맡아 관객들을 매혹시켰던 조커는 미국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하나인 제이리드 리토가 맡게 됐다. 

할리우드가 악당에게 실력은 물론 매력까지 부여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언더독 효과다. 사람들이 강자보다 약자에게 연민을 느껴 마음을 주는 현상이다. 

결국엔 주인공이 승리하리란 걸 관객들이 알고 있는 이상, 주인공은 강자다. 사람들은 강자를 동정하지 않는다. 특히나 주인공이 너무 세련된 모습이면 더 곤란해진다. 러셀 크로, 휴 잭맨, 멜 깁슨 등이 선한 역할을 자주 맡는 덴 ‘촌스러운 호주’라는 편견에 힘입은 바가 크다. ‘영국적’인 것은 반대로 세련된 느낌, 강자의 느낌을 준다. 영화 속 악당들이 괜히 영국 억양을 쓰는 게 아니다. 

사람뿐 아니다. 잘 알려지다시피 재규어는 영국 차다. 본래 영국은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같은 초호화 럭셔리 자동차의 본고장이다. 그 중 ‘비교적 저렴한’ 재규어가 미국 시장을 겨냥, 작년부턴 아예 작정하고 ‘악당 차’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영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편견을 굳이 바꾸려 들지 않고 그대로 브랜딩에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 재규어가 기용한 ‘악당’들은 톰 히들스톤, 마크 스트롱, 벤 킹슬리. 모두가 영국 배우다. 이 중에서 가장 젊은 톰 히들스톤은 ‘어벤저’ 시리즈의 매력적인 악당 로키 역을 맡아 국내에서도 친숙하다. 

    사실 히들스톤은 그야말로 ‘재수 없는’ 인물이다. 영국에서도 최고 명문가 자재들만 갈 수 있는 이튼 스쿨을 다녔고, 캠브리지 대학의 그린록에서 고전학을 전공하며 두 번이나 수석을 차지했다. 재학 중에 텔레비전 극에 데뷔했으며, 오래지 않아 북유럽 신화 속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로키’ 역으로 영화계까지 진출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수상한 물건을 건네는 사람들을 ‘젠틀맨’이라 부르면서 품위 있게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암송하는데 그처럼 적합한 인물도 드물다. 

    사람들은 자기가 갖지 못한 걸 가진 자를 질투한다. 재규어 같이 미끈하게 빠진 악당의 깔끔한 옷차림, 고상한 억양, 유창한 말솜씨에 주도면밀함 역시 모두 다 질투의 대상이다. 재규어는 관객들의 질투심을 있는 한껏 자극하면서 이렇게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딴 건 어쩔 수 없어도 재규어는 돈만 ‘좀’ 쓰면 살 수 있잖아?” 

    광고 속 히들스톤은 지하주차장을 유유히 빠져나오며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의 대사를 암송한다. 영국의 통치권을 칭송하는 부분이다. 리처드 2세가 그랬듯 악당의 권력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결국은 그는 ‘탑독’이 아닌 ‘언더독’이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