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규 칼럼] 예술 민주화 시대... 능력과 도덕성, 비전 갖춘 인물 찾아야
  • 차기 국립오페라단장은 누가 될 것인가?

     

    국립오페라단장은 종합예술인 오페라계에서 ‘꽃 중의 꽃’에 해당하는 자리다. 국내에 수많은 민간오페라단들이 있지만 국내든, 해외든 ‘한국의 오페라단’ 하면 첫 번째로 국립오페라단을 떠올린다. 한국을 대표하는 오페라단이기에 자연스럽게 예술 외교의 첨병 역할도 맡게 된다.

     

    민간오페라단들은 아무리 뛰어난 오페라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도 재정적인 여건 때문에 예술적 양심을 포기하면서 수익적 요소들과 타협을 해나가지 않을 수 없다. 반면 국립오페라단은 정부의 재정, 든든한 후원그룹을 바탕으로 예술성 높은 작품들을 상대적으로 큰 부담 없이 무대에 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임기 3년의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의 일거수 일투족은 오페라와 관련된 성악가, 연출가, 지휘자, 합창단, 무용단 등 수만 예술 종사자들과 국민들이 비상한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올 1월 국립오페라단장에 임명됐던 한예진씨가 각종 논란 끝에 지난 2월말 사퇴한 이후 여러 인물들이 새 오페라단장에 거론되고 있다.

     

    전·현직 오페라단장에서부터 교수, 성악가, 연출가 등 다양한 인물들이 청와대와 국회의원들, 문화체육관광부 관료들을 접촉하고 있고, 이 가운데는 ‘이 인물이 실행력은 부족하지만, 내가 적극 도울 수 있다’며 ‘섭정체제’를 추천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인의 추천으로 단장이 되기만 해도 성악가-연출자 캐스팅, 각종 물품, 의상 납품 등에서 상당한 개인적 이권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적인 인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차기 단장을 선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높다. 하지만 이 경우 타 예술단체장, 다른 부처의 단체장들에 대한 규정도 한꺼번에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기존 방식대로 문화체육관광부의 해당 부서에서 추천해 장관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차기 국립오페라단장은 어떤 기준으로 찾아야 할까?

     

    우선 첫째 기준은 직무 수행 능력이 돼야 할 것이다. 사퇴한 한예진씨의 사례처럼 오페라 한편 무대에 올려보지 못한 사람이 갑자기 단장이 된다는 것은 예술계에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페라 한 편에도 감안해야 할 요소가 수백가지가 되는데 오페라를 무대에 올린 경험이 전혀 없다면 좌충우돌 업무를 익히다 3년을 보낼 수 있다는 얘기다.

     

    국립오페라단장은 검증되지 않은 예술인이 실험적으로 무대를 만드는 자리가 아니라, 충분히 준비가 된 인물이 자신이 준비해 온 이상을 펼치는 자리가 돼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도덕성이다.

     

    정부가 새 국무총리나 장관을 임명할 때마다 비리, 부동산투기, 병역문제로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느라 몸살을 앓는다. 이 과정에서 30~40%가 낙마하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한예진씨의 경우처럼 이제는 정부나 정치인들이 마음에 든다고 낙점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오페라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이제는 예술계도 ‘민주화’ 시대를 맞고 있다.

     

    사생활 문제, 금전적 문제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사람이 국립오페라단장에 오를 경우, 이번처럼 예술단체들이 반발하고 또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한다면 이미 잊혀졌던 자신의 과거까지 모두 파헤쳐져 오히려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예진 씨 처럼 불필요한 욕심을 부렸다가, 앞으로 예술가로서 활동하는데까지 지장을 초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계 지도자들의 세대교체론도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중년이 넘으면 새로운 시도보다는 기존 자신의 습관, 관념대로 일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40~50대 리더들이 신선한 아이디어로 혁신을 주도하는데 60대가 넘은 인사가 국립오페라단장 자리를 맡는다면 예술단체의 발전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시각이다.

     

    물론 젊은층도 개혁을 꺼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노년층도 열린 사고로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하기 때문에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무조건 나이만 보기 보다는 개인의 성향, 업무 추진 스타일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마지막 자격조건은 대한민국 대표 예술단체장으로서의 ‘비전’이다.

     

    막대한 국가예산을 쓰면서 수백년 된 이탈리아의 오페라들을 예술성 높게 무대에 올리는 것이 국립오페라단장의 사명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립오페라단은 우리 창작 오페라를 활성화 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민간오페라단들이 비용 문제로 실험적인 무대를 할 수 없는 반면 국립오페라단은 보다 자유롭기 때문이다.

     

    또한 ‘연예 콘텐츠’로 세계적인 한류 바람이 일고 있는 오늘날 ‘오페라 한류’로 코리아 브랜드를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일본-북한 등 지정학적 긴장 상태에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예술은 정치적 악재들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시장에서 우수한 오페라무대들을 올린다면 코리아 브랜드를 제고하는데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민간오페라단이 우리 오페라의 해외 공연을 주도해왔다는 것은 국립오페라단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