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제재에도 암암리 수출 … 중고차 시장 혼란일부 팰리세이드 새 차보다 1000만 원 이상 비싸러시아서 더 비싸게 판매 … 韓 중고차 교란 원인
  • ▲ 디 올 뉴 팰리세이드. ⓒ현대차
    ▲ 디 올 뉴 팰리세이드. ⓒ현대차
    최근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일부 차종들의 시세가 뚜렷하게 상승하고 있다. 현대차 팰리세이드 등 일부 모델은 중고차가 신차 출고가보다 높은 가격에 책정되는 '역전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서방의 자동차 수출 제재를 받는 러시아에서 국내 중고차를 '싹쓸이'하면서 한국 중고차 시장의 가격을 교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국내 중고차 거래 플랫폼 엔카닷컴에는 6300km를 주행한 디 올 뉴 팰리세이드 9인승 캘리그래피 가솔린 모델은 7090만 원에 매물이 올라와 있다. 같은 모델·옵션의 신차 가격(6080만 원)보다 1010만 원가량 비싸다. 총 317km를 주행한 디 올 뉴 팰리세이드 2.5 하이브리드 7인승 캘리그래피 모델은 8099만 원에 매물이 올라와 있다. 이는 같은 모델·옵션의 신차 가격(6616만 원)보다 1483만 원가량 비싼 수준이다.

    이 밖에도 팰리세이드는 중고차 시장에서 가솔린·하이브리드 등 파워트레인, 익스클루시브·프레스티지·캘리그래피 등 트림을 가리지 않고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팰리세이드뿐만 아니라 현대차 스타리아, 기아 카니발 등 다수 국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패밀리카의 중고차 가격이 오른 것으로 책정됐으며, 이중 다수는 신차보다 높은 가격을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한국 중고차 시세 상승의 배경에 러시아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에서 사용된 중고차가 러시아에서 인기가 높아 수출이 급증하며 한국의 중고차 시세를 끌어올렸단 분석이다. 

    앞서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등의 완성차 브랜드들은 지난 2021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발발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러시아에서 철수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자동차 생산량은 2021년 140만 대에서 지난해 74만 대로 크게 감소했다.

    경제 제재로 직접적인 자동차 수입이 게 된 러시아는 공급난을 해소하기 위해 중고차 수입을 늘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러시아에서 인기가 많은 현대차·기아 중고차 수입을 비싼 값에 사들이면서 한국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 ▲ 10km를 주행한 팰리세이드 가솔린 모델이 러시아 중고차 사이트에 745만 루블(약 1억2600만 원)에 올라와 있다. ⓒAuto.ru 홈페이지 갈무리
    ▲ 10km를 주행한 팰리세이드 가솔린 모델이 러시아 중고차 사이트에 745만 루블(약 1억2600만 원)에 올라와 있다. ⓒAuto.ru 홈페이지 갈무리
    실제 러시아 최대 자동차 온라인 판매 사이트인 Auto.ru에서 520km를 주행한 신형 팰리세이드 2.5리터 가솔린 모델은 630만 루블(약 1억710만 원)에 거래된다. 일부 신형급 모델은 745만 루블(약 1억2600만 원)에 달한다. 하이브리드 모델의 경우 1000만 루블(약 1억7000만 원)을 넘는 매물도 많다.

    팰리세이드뿐만 아니라 스타리아, 카니발 등 국내 시장에서 높은 중고차 가격을 유지하는 모델들은 러시아에서 비싸게 팔린다. 국내에서 4000만 원대에 팔리는 스타리아, 카니발은 각각 8000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이는 현대차·기아가 러시아에서 특히 큰 인기를 끌었던 것과도 연관됐다. 실제로 전쟁 발생 전인 2021년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은 1위를 차지하는 인기 브랜드였다. 당시 현대차, 기아 두 브랜드가 차지하는 신차 판매 점유율은 24.4%에 달했다.

    현재 자동차 수출 제재 국인 러시아는 제재를 받지 않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인접국을 통해 자동차를 수입하고 있다. 해당 인접국들의 경제 규모를 생각했을 때 러시아 주변국으로의 수출은 사실상 러시아로 우회 수출하는 물량으로 풀이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한국의 중고차 수출액은 47억2966만 달러로 전년 대비 72.8% 증가했다. 이중 아시아 수출량은 24억6144만 달러로 가장 많은데, 이중 다수가 러시아로의 우회 수출을 위한 중앙아시아 수출물량으로 추정된다. 실제 지난해의 경우 국내 중고차 시장 수출 1위 국가는 키르기스스탄으로, 총 8만560대를 수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수출되는 매물들은 사실상 수출을 위한 '세탁' 통로로 활용된다"라며 "이는 한국의 중고차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고차 시장은 특정 차종의 값이 오른다고 해서 해당 차량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라며 "예컨대 팰리세이드를 사려 했던 고객이 싼타페나 쏘렌토 등 다른 모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전체 중고차 시장에 영향을 주는 셈"이라며 "러시아 우회 수출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